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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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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품격] 유시민 사과, ‘왜’가 없다

유시민의 통렬한 사과문에도 궁금한 것,
그의 눈을 흐리고 귀를 막은 경로는 무엇이었을까
등록 2021-02-06 01:26 수정 2021-02-07 06:48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노무현, 노회찬을 잃은 유시민(사진)의 트라우마를 이해한다. 검찰의 조국 일가 수사가 한창일 때 그가 ‘참전’을 하고 뒤이어 “정치적 다툼의 당사자처럼” 행동한 과정도 이해 반, 우려 반 지켜보았다. 검찰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은 검찰 스스로 불 지핀 게 분명하나, 그것이 집단적 증오로까지 번진 데에는 유시민의 책임도 없지 않다.

검찰이 노무현재단의 계좌를 들여다보고 본인과 아내의 계좌까지 사찰했으리라는 유시민의 주장을 많은 이가 믿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계속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본인의 주장을 강화했다. 계좌 조회 권한이 있는 모든 기관에서 비공식적으로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으나 대검만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사찰의 주체로 부서와 검사 이름까지 특정했다. 계좌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와 관련한 사업비 지출계좌를 봤다고 추측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저럴까 싶었다. 그는 검찰이 그랬으리라 추정한 시점(2019년 11월 말~12월 초)에서 은행이 계좌 주인에게 수사기관의 조회 여부를 알려줘야 하는 최대 기한인 1년이 지난 뒤인 2020년 12월15일 노무현재단 후원의 날 유튜브 특집방송에서도 “몰래 계좌나 들여다보고”라고 검찰을 조롱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곧 결과가 나오리라고.

그러나 그가 믿은 결과는 없었다. 유시민은 사과했다. 사실의 근거를 갖추지 못한 의혹을 제기했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확증편향에 빠졌다고 시인했다. 익히 예상되는, 그를 향한 비판의 핵심어들까지 나서서 담은 통렬한 사과였다. 누군가는 법적 다툼에 대비한 조율된 문구일 뿐이라고 힐난하고, 누군가는 더 세게 자학해 할 말 없게 만드는 작전이라고 비아냥댔다. 사과할 줄 모르는 정치권 인사들과는 달리 그래도 발군이라는 칭찬도 따랐고 (검찰의) 더 큰 칼날의 예봉을 꺾은 살신성인이라는 음모론적 옹호까지 그야말로 저마다의 감정을 이입한 백가쟁명이 만개했다. 이 와중에 유시민의 서울 방배동 집값과 인세나 벌이를 따지는 식의 물어뜯기도 난무했다. ‘쌉소리’는 귀를 씻어버리면 그만이나 그를 신뢰했던 많은 이의 실망과 비판은 두고두고 그가 감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유시민의 사과문에는 중요한 게 빠졌다. ‘어떻게’는 있는데 ‘왜’가 없다. 그는 “단편적인 정보와 불투명한 상황을 한 방향으로만 해석”했다고 반성했다. 그는 애초 “검찰이 들여다봤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단언했다. 누구보다 민감하게 말과 글을 다루는 그가 대체 왜 그랬을까. 근거 자료에 버금가는, 확인할 만한 위치에 있는 이의 ‘확언’이 없다면 부지불식중에라도 그런 표현을 쓸 수 없다. 백번 양보해 신뢰할 만한 이의 ‘전언’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당시 “어떤 경로인지 지금은 일부러 안 밝히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그의 눈을 흐리고 귀를 막은 경로는 무엇이었을까. 그자는 누구였을까.

유난히 자기 완결성을 중시하는 유시민 본인을 위해서라도, 쓰나미가 덮친 듯했던 정권과 검찰의 맞대결이라는 ‘기이한 내전’이 어떻게 확대됐는지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그 ‘왜’는 대단히 중요하다. 뜨거운 지지로 출발한 문재인 정권이 어디에서 고장 났는지, 어떻게 왜곡된 작동을 했는지 가늠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알 권리가 있다.

만약 그게 ‘사람’이라면 인정에 연연하지 말고 끊어내길 바란다. 유시민과 그가 옹호하고자 몸부림친 세력이 위선의 뻘밭에 빠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공사 구별을 못한 것이다. 그리고 가치와 이념으로 포장한 자신들의 이해와 믿음을 손쉽게 관철하기 위해 음모론을 동원한 것이다. 유시민이 밝히지 않은 ‘어떤 경로’는 여기에 모두 해당한다.

이 진실을 검찰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여러 ‘쌉소리’와 섞어 듣고 싶지 않다. 그에 대한 애정도 고마움도 마음의 빚도 1도 없는 이들이 일부러 그랬네, 모르고 그랬네 뒤지고 판단하게 두고 싶지 않다. 그러니 유시민은 스스로 밝히라.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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