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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품격] 테스 형 대신 상정 언니에게 물어봐

한국 정치 심상정 덕에 덜 쪽팔린다… 정의당 대표 퇴진 뒤 그의 정치도 시즌2
등록 2020-10-10 16:56 수정 2020-10-12 17:14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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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이다. 이 와중에 왜 꼭 임대소득은 보장돼야 할까. 방역 지침 따르느라 너나없이 영업의 자유를 제한받고 소득 손실을 감수하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말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9월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사진)에서 “누구는 전시 통제의 의무로 살고 누구는 평시 자유의 권리로 산다”고 일갈하며 감염병 대유행 등 재난 상황에서 피해 단계에 따른 국가 지원을 매뉴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지루한 재난수당 논쟁이나 언 발에 오줌 누는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시스템으로 구축하자는 것이다. 임대료를 감면하고 그만큼 연말에 소득공제를 해줄 것과 재난 특수를 누리는 통신사들의 수익을 통신료 감면에 쓰도록 하는 내용도 언급했다.

우리 정치가 무엇을 ‘기본값’으로 설정해야 하는지를 일깨운 연설이었다. 노동운동 20년, 진보정치 20년의 무게와 힘이 느껴졌다. 개인이 빚을 지게 하느니 나라가 빚을 지라, 모두가 안전하기 위해선 누구도 위험해선 안 된다, 기후위기 시대 정부는 시장 개척자이자 투자자가 돼야 한다…. 진짜 이 시국에 그가 없었다면 우리 정치는 얼마나 앙상하고 초라했을까. 심상정 덕에 덜 쪽팔린다.

온 국민이 숨죽이고 코로나19 2차 대유행을 건너는 내내 정치권이 몰두한 일이라고는 민생과는 하등 관련 없는 장관 아들의 군복무 특혜 논란과 장관의 태도 시비였다. 말끝마다 붙이는 ‘내로남불’과 검찰개혁은 각자 입맛에 맞는 조미료로 전락했다. 그러는 동안 심상정과 정의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이해충돌방지법 등 지금 여기 꼭 필요한 법안들을 내놓았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퇴임 뒤 인터뷰에서 지난 총선 직전 급조했던 위성비례정당에 대한 반성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실망스럽다. 결과적으로 고작 예닐곱 석 더 얻자고 촛불대선 이후 정책 공조는 물론 정치개혁을 위한 선거법 개정을 함께 해온 정의당을 사정없이 짓밟은 꼴 아닌가. 자신이 보는 세상만 중요하고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는 안중에 없는 게 총선 압승 뒤 줄곧 민주당이 보여온 모습이다.

그들에게 미래를 맡기면 위험하다. 이건 내 주장이 아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에 따르면 직전에 큰 성공을 거둔 이들은 본능적으로 안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성공을 지키는 손쉬운 방법은 아무 변화도 없는 것이니, 미래의 변화량도 극도로 작게 추정한다. 큰 성공을 거둔 이들일수록 두 번째 성공을 못 하는 이유이자 수많은 기업의 고민이기도 하다. 정치라고 예외는 아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위협하는 대상에 대한 ‘회피 동기’(그것을 하면 나쁜 일을 막는다)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 이것이 바로 기득권이다. 지금 민주당을 둘러싼 진영 논리는 이에 기반하고 있다. 이른바 ‘저놈이 더 나빠요’ 논리이다. 기득권의 성채를 지키는 정치는 영원하지 않다. 발전도 없다. 쇠약은 필연이다. 새로운 생각과 변화를 향한 ‘접근 동기’(그것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를 활성화하는 정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미래와 경쟁하겠다”는 정의당의 길이기도 할 것이다.

대표가 바뀌며 정의당 시즌2가 시작됐다. 퇴임 기자회견에서 심상정은 “그동안 높은 산 정상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굴러 내려가는 돌덩이를 떠받쳐 올리고 또 올리며 버티는 모습이었다. 심상정의 정치도 시즌2다. 그의 앞으로 20년이 몹시 궁금하다.

올해 아흔두 살인 그의 노모는 국선도를 오래 수련했다. 누구보다 고단한 세월을 보냈으나 얼마 전까지 물구나무서기를 할 정도로 몸을 잘 돌보았다. 특별한 날이면 ‘헤어롤’ 곱게 말고 절에 다녀온다. 꿋꿋이 혼자 살며 이웃 노인들도 두루 챙긴다. 생김도 성정도 심상정은 어머니를 꽤 닮았다. 사는 게 왜 이런가 테스 형에게 물어봤자 위안은 될망정 답을 듣진 못한다. 나는 상정 언니에게 물으련다. 언제든 필요하면 달려오는 언니니까.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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