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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품격] 민주당, 언제까지 뼈만 깎고 있을 텐가

기득권 민주당의 요즘 모습, 얼마나 덜 수구적이냐로 자신을 증명하기를
등록 2020-07-18 13:37 수정 2020-07-19 12:07
한겨레 백소아 기자

한겨레 백소아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민주화를 위해 싸우며 희생해온 약자 진영이 더는 아니다. 이미 최고 권력을 쥔 기득권 집단이다. 그 위치와 처지를 본인만 모르는 것 같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 의혹과 서울시의 은폐·방조 논란에 이해찬 대표가 “통절한 사과”를 했다.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한 모양새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책임지는 모습은 없다. 진상조사는 서울시에 미루고 피해자에게는 위로만 했다. 그의 ‘버럭’ 호통(사진)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위협일 수 있는지, 대변인의 “(고소인의 주장과) 전혀 다른 얘기도 있다”는 언급이 얼마나 잔인한 2차 가해였는지에 대한 성찰도 찾을 수 없다. 민주당 여성 의원들의 성명에도 이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이런 감수성도, 책임감도 없는 거대 여당이라니.

걸출한 사회운동가를 잃은 슬픔이 민주당만의 것은 아니다. 애도 속에서도 고통스러운 판단을 해야 하는 게 정치의 몫이다.

민주당이 제대로 책임지는 길은 2021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부산시장과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이다.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게 될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 규정을 지키면 된다. 이 대표가 말한 “당 소속 주요 공직자들의 기강을 세울 특단의 조치”에도 들어맞는다. 뼈를 깎는다고만 하지 말고 자리를 내놔야 한다. 국민에 대한 책임 운운하며 주판알 튀기는 것은 속 보이는 짓이다. 영 걱정되면 당 밖의 괜찮은 후보를 도와주면 된다.

진상규명에도 “협조”(이낙연 의원)만 할 게 아니라 두 팔 걷어붙여야 한다. 최측근 인사 상당수가 박 전 시장의 사망과 함께 자동 면직돼, 서울시가 이들을 조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대부분 당 안팎 인사들이니 혹시라도 은폐나 방조가 있었는지에 대한 조사는 당에서도 하는 게 옳다. 그럴듯한 백 마디 말보다 제대로 된 한 번의 진상규명이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의 시작이다.

권력의 자리에 올라가면 왜 자꾸 지분대고 괴롭힐까. 그래도 되니까 그러는 거다. 우리 사회가 그 많은 일을 겪고도 적절한 단죄와 처벌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권력자는 자신을 향한 두려움이나 존경을 성적 호감으로 쉽게 믿어버리고 측근들은 이를 인지하고도 모른 척하거나 때론 인지조차 못하는 직무유기를 한다. 피해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번 박 전 시장의 경우도 시스템으로 막기는커녕 시스템으로 묵인한 면이 보인다. 봐주기와 카르텔(담합)이 작동한 탓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모친상 장례식장에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서고 민주당 유력 인사들이 줄줄이 조문하는 모습을 보며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인정과 온정에 따른 상례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떠들썩했다. 소모임도 자제하자는 코로나19 재난 중에 굳이 이런 규모의 상을 치른 안 전 지사의 단견에는 그를 감싸‘주는’ 민주당 인사들의 ‘우정’도 한몫했을 것이다. 당에서 비판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민주당은 자기 객관화 기능이 현저히 망가진 모습이다. 진영논리에 갇히고 이중 잣대를 대면서 제대로 성찰하지도 판단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행동도 없다. 개원 협상 과정에서 누가 봐도 ‘쭈글’ 상태인 미래통합당을 상대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정의당이 앞장선 포괄적 차별금지법에는 초선 비례의원인 권인숙·이동주 단 두 명만 이름을 올렸다. 차라리 차별금지법 만들겠다는 말이나 하지 말지. 잇따른 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의 성범죄와 비위에 당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안일과 오만 때문이다.

지난 세월 덜 나쁘게 처신했고 덜 가지며 살아왔다는 것으로 언제까지 ‘자뻑’할 것인가. 민주당은 자신의 기득권부터 인정하면 좋겠다. 이제는 얼마나 진보적이냐로 스스로를 설명하려 해선 안 된다. 얼마나 덜 수구적이냐로 자신을 증명하기 바란다. 그게 솔직하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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