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는 사람이 있고, 잘하는 줄 착각해 오버하는 사람이 있다.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사진)은 후자에 가깝지 싶다. 선거 책임이 있는 그를 돌려세워 ‘모신’ 당도 이해하기 어려우나, 계속 ‘매도’ 없이 ‘호가’를 올릴 수 있다고 여기는 김종인도 딱하다.
사실상 ‘영남강남당’으로 줄어든데다 지도력 공백은 길고 지지율은 더 떨어졌다. 그런데도 당에서 들리는 목소리들은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지 잘 모르는 기색이다. ‘응당 내 몫인 밥그릇을 빼앗겼다’는 집착이랄까 고집만 도드라진다. 태극기 부대에 이어 아스팔트 개신교에 휘둘리더니 이제는 극우 유튜버들과 논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주류인 줄 착각한다. 우리 정치 기반이 바뀌었다는 것을 정녕 못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21대 총선은 유권자가 세대교체된 상태에서 치러졌다. 50대는 더 이상 보수 우위가 아니다. 최다 유권자 블록은 만 45~49살이다. 30년 전 3당 야합 이래 고착된 인위적인 정치 지형이 한 세대 만에 바로잡힌 선거라고도 할 수 있다. 20대 총선에선 이미 ‘재정렬’ 조짐이 보였고 이번에 마무리됐다. 진짜 실력은 이제부터다. 그런데 여전히 의석수 100석 넘는 미래통합당은 노선투쟁은커녕 진로도 없고 전망은 오리무중이다. 그저 김종인만 있다. 8월31일 전당대회까지 새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겸하자, 김종인 말고 다른 비대위원장으로 조기 전당대회를 하자, 김종인이 원하는 대로 권한과 기한을 주면서 대권 준비로 가자 등 그야말로 ‘아기염소들이 푸울 뜯어먹는’ 소리만 메아리친다.
김종인은 ‘70년대생 경제전문가 대통령 후보’라는 화두를 갑자기 툭 꺼냈다. 전후 맥락이 없다. 그냥 던진 말이다. 누굴 낙점해 지도자로 키운다는 발상부터가 시대착오적이다. 아무리 작은 단위 지도자라도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박근혜·문재인이라는 막강한 대권 주자가 있는 당에서, 구도나 이슈에서 훨씬 유리한 총선을 앞두고 공천 칼자루를 쥐어봤다 해서 본인이 대통령을 두 번이나 만들었다고 진짜로 믿는 건, 대단한 착각이다. 왜 이 당 저 당 본인에게 비대위를 맡겼는지 모르시나. 그 이상의 힘은 없어서다. 그런 그가 만들어낼 ‘70년대생 지도자’라니, 참으로 기괴하다. 한 가지는 알겠다. 그에겐 뭔가를 할 수 있는 가장 젊은 나이가 70년대생이라는 거. 그것이 최대치의 개혁인 모양이다.
비상등을 조명등으로 오해하는 그에게 주민등록상 최다 인구인 71년생의 한 명으로서 말씀드린다. 우리는 고도성장기 풍요를 누리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교복을 입지 않았고 두발도 자유로웠으며 격한 입시도 치르지 않았다. 덕분에 비교적 멀쩡한 정신으로 성인기에 진입했는데, 정치사 전무후무한, 여당과 제2, 제3 야당이 한 몸이 된 민주자유당의 등장을 스무 살 새해 벽두부터 목격했다. 혼미한 상태로 바로 윗세대가 ‘승리’(라 쓰고 ‘정신승리’라 고쳐 읽는다)로 기억하는 87년 체제의 정치적 그늘에 내던져졌다. 강경대가 맞아 죽었고 김귀정이 밟혀 죽었다. 데모한다고 박수는커녕 욕만 먹었다. 돈을 좀 벌어보나 했더니 아이엠에프(IMF)가 터졌고…(이하 생략). 한마디로 어느 날 갑자기 그 당에 가서 김종인의 지도편달을 받을 멀쩡한 70년대생은 없다는 이야기다. 70년, 71년생 개돼지들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제멋대로 하는’ 원조 신세대니까. 우리 뒤의 70년대생들은 더할 것이다. ‘어른들은 모르는’ 바로 그 X세대다.
미래통합당 걱정을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이대로면 당이 더 쪼그라드는 건 시간문제다. 내 비록 소수당 애호가이지만 그대들은 아직 소수당 목록에 올라선 안 된다. 덩치 때문이 아니다. 가치와 이념이 모호해서다.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기 위한 반대 말고 무엇을 내세울 수 있나. 김종인 뒤에 숨어 뭉개지 말고 진짜 정체를 보여주면 좋겠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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