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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젠젠젠 젠틀맨 증세를 솔직히 말하다

“증세 위해 국민 설득”을 말하는 유승민에게 육아휴직·저출산 그리고 박근혜·최순실을 묻다
등록 2017-04-04 02:50 수정 2020-05-02 19:28
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를 만났다. 코미디언 김미화씨가 유 후보의 국회의원 사무실을 찾아 숨 돌릴 틈 없이 밀도 높은 꼬치꼬치 인터뷰를 진행했다. 유 후보가 내놓은 저출산·보육 정책부터 교육·증세 문제까지 파고들었다. 경제학자들의 곡학아세, 유승민과 박근혜, 최순실의 존재 등 유 후보가 껄끄러워할 물음도 거침없이 던졌다. 박근혜 정권 때 원내대표에서 쫓겨난 유 후보와 시사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김미화씨는 ‘동병상련’의 심정을 나누기도 했다. 인터뷰 동영상은 페이스북·한겨레TV 유튜브 계정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 후보는 이재명 성남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에 이어 네 번째로 만난 대선 주자다. 유 후보의 개인 일정 등 연출되지 않은 장면을 담은 ‘후보 B컷’, 공약을 까칠하게 톺아본 ‘반대심문’, 후보의 저서로 생각을 짚어본 ‘대선 북리뷰’도 담는다. _편집자




유승민  약력


1958년  대구 출생
1982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7년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1987~2000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
2000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2005~2017년  제17~20대 국회의원
2005년 1~10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
2011년 7~12월  한나라당 최고위원
2012~2014년  국회 국방위원장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2016년 4월  새누리당 탈당, 대구 동구을 무소속 출마 당선
2017년 3월 28일  바른정당 대선 후보 확정


“당시엔 정말 몰랐어요. 정윤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 보좌관 시절에 ‘문고리 3인방’과 서울 강남에서 회의한다더라는 말은 들었죠. 제가 비서실장이었을 때 하도 엄하게 꾸짖었더니 문고리 3인방이 저를 정말 싫어했어요.”

최순실을 정말 몰랐느냐는 내 질문에 유승민 후보가 답한 말이다.

교통방송(TBS) FM 시사 프로그램 에 그가 대선 주자로서 두 번 출연했는데, 나는 바로 앞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터라 담당 PD에게 그에 대해들을 수 있었다. 담당 PD의 평은 젠틀맨 유승민. ‘젠틀하고 열린 사람’이라고 했다. 뭘 물어봐도 담백하고 거침없이 답했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아 멀리서 보던 깐깐할 것 같은 이미지가 아니더라는 말이었다.

3월22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성격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었으니 껄끄러워할 질문도 빼지 않고 쓱 던져보았다. 내 시선을 살짝 피하거나 미세하게 동공이 흔들릴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그는 전혀 피하지 않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조곤조곤 하고 싶은 말을 해나갔다.

일단 그의 핵심 공약 중심으로 물으면서도 최순실을 정말 몰랐는지 정말 궁금했고, 유 후보를 만난 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나가 조사받고 집으로 돌아간 날이었기에 오래 모시기도 한 분이니 마음이 착잡하겠다 싶어 소회를 물었다. 더불어 그가 경제학자로서 정치권에 오랫동안 몸담으며 정책 만드는 데도 관여했을 텐데 왜 우리 경제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모저모가 궁금했다.

“1년 유급, 2년 무급 휴직”

반갑습니다.

네, 제가 김미화씨 시사 프로에 한 번도 나가지 못했네요. 지금 시사 프로는 안 하시죠?

하도 구설이 많아서 지금은 시사 프로 그만하고 있어요. (웃음)

“고생 좀 하셨다”는 얘긴 들었습니다.

잘하려고 한 건데.

저도 (박근혜 정권에서) 고생해본 사람이라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웃음) 나중에 다시 (시사 프로) 맡으면 꼭 불러주세요.

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뉴스를 보니 4당이 법정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기로 잠정 합의했더라고요. 잘됐네요.

잘됐죠. 근로시간 줄이기는 제 공약에 다 있는 거니까. 이제는 회사나 정부도 인식을 바꿔야 해요. 지금처럼 일하면 언제 집에 오고, 아이는 언제 낳고 또 놀아주겠어요. 그러니 결혼해도 아기 가진다는 소릴 못하는 거죠. 그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세종시 출산율이 1.8~1.9명이에요. 국민 평균 출산율이 1.2명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아주 높죠. 세종시엔 공무원 가족이 많아요. 공무원은 육아휴직 3년을 해요. 직장이 안정되니까 공무원, 교사 합계 출산율이 1.4명 정도입니다. 시간, 돈, 안정적 일자리가 마련되고 일과 가정을 양립하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있는 거죠.

그래서 육아휴직을 3년까지 할 수 있도록 공약을 내놓으신 거죠?

네, 지금 민간기업 종사자는 법적으로 육아휴직이 1년이에요. 이렇게 한 지도 30년이 됩니다. 그런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최근 직장에서 젊은 엄마들이 1년씩 육아휴직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쓰기 시작하면 퍼집니다.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 쪽에선 아직 아니지만, 어지간한 직장에선 1년 육아휴직 하는 분위기가 최근 몇 년 사이 많이 퍼졌어요.

그동안은 왜 못 했을까요?

육아휴직을 하면 직장에서 자기 자리가 없어지거나 눈치를 받았죠. 경제적 이유도 있고요. 육아휴직을 하면 통상임금의 40%밖에 안 주고요. 저는 그것도 60%로 올리자고 했습니다. 최고 상한액도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올리자고 했죠. 그리고 엄마·아빠 양쪽 다 쓰게 하자.

3년이 급진적이라고 하는 분들 있어요.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3년이 과연 되겠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1년 유급휴직을 쓰는 건 현재와 같아요. 3년 중에 1년은 유급, 나머지 2년은 무급으로 하자는 겁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비율이 확 증가해요. 경력이 단절되는 거죠. 저는 아이가 고3 될 때까지 세 번에 나눠 쓰라는 법을 내놨어요. 아이 낳았을 때 1년, 초등학교 들어갈 때 1년, 고3 입시 때 1년 이렇게 쓸 수 있죠. 기업들만 협조, 이해해주면 대기업에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공무원, 교사들은 하고 있잖아요. 못하는 민간기업도 그렇게 해주자는 거죠. 육아휴직 3년을 쓰더라도 그걸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하는 거예요. 보통 유럽에선 국공립 보육시설이 발달해서 1년만 육아휴직을 쓰는데요, 우리는 그렇지 못해요. 그리고 직접 양육을 선호하죠. 그래서 우리는 3년 육아휴직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30년이 지나면 한국이 없어져요”방금 ‘회사가 이해해준다면’이라고 했는데, 민간기업에 강제할 방법은 없잖아요.

없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기업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야기한 ‘칼퇴근법’도 마찬가집니다. 보통 블루칼라 직종은 근로시간이 있죠. 요즘은 포괄임금이라고 해서 근로시간에서 2~3시간 더 일해도 야근수당같은 걸 안줍니다. ‘PC 오프제’라고 더 일하고 싶어도 못하도록 직장 컴퓨터가 꺼지는 제도가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도 바뀌고 있어요. 기업은행은 8년 전부터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금융기관 등에선 빨리 문화가 바뀔 수 있어요.

중소기업은 어떻게 해요.

중소기업에선 현실적으로 육아휴직을 쓰기 쉽지 않다는 것은 이해해요. 진짜 어려운 곳은 중소기업 중에서도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곳이에요. 그런 곳은 앞으로 일부 선진국에서 하는 ‘부모보험’이란 것을 도입하려 해요. 정부, 기업, 근로자가 조금씩 부담해 첫 1년 육아휴직 수당을 주는 제도예요. 또 중소기업에선 육아휴직을 할 때 대체 인력 문제가 제일 커요. 국가가 ‘인력뱅크’를 만들어 도울게요. 중소기업은 정부가 도와줘야 합니다.

왜 저출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거죠?

지난 11년 가까이 100조원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썼어요. 그런데도 출산율이 1.2에서 꼼짝도 않고 있어요.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거죠. 일자리나 주택 문제도 있는데 정부가 경제적 부담과 시간 문제는 최소한 해결해줘야 해요. 그래서 제가 육아휴직 3년, 최소 휴식시간 보장, 정시퇴근제를 내놨고요, 돈 문제로는 아동수당, 양육수당 인상을 내놨어요. 저는 여기에 돈 쓰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30년이 지나면 한국이 없어져요. 인구구조가 이젠 역삼각형을 넘어 T자예요. 10년, 20년 지나면 어르신들밖에 없는데 어떻게 봉양할 거냔 말이죠. 이건 진짜 심각한 문제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말기부터 저출산위원회를 만들었는데 백화점식으로 대책을 내놔서 별 효과가 없었어요. 제가 대통령이 되면 획기적으로 바꾸겠습니다. 이 분야 공약은 제일 먼저, 제일 많이 내놨을 겁니다.

그럼 육아휴직 3년을 모두 보장하겠다는 건가요?

쓰고 싶은 사람은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죠. 3년으로 해놔도 여성이나 남성 스스로 ‘나는 육아도우미를 구하더라도 내 경력을 위해 육아휴직 쓰기 싫다’고 하면 안 써도 돼요. 지금은 어느 직장이나 육아휴직 3년을 다 쓰면 자기가 감수해야 할 일의 단절이나 승진 불이익은 있어요. 분위기는 바뀌고 있지만 어느 정도 기업 문화가 따라줘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남성들은 감수 않고 여성들은 감수하잖아요. 그래서 여성이 더 높은 자리에 못 올라가는데, 어떻게 법을 잘 만들어서 여성을 보호할 건가요?

그런 차원에선 근로 감독이 필요하고, 기업 인식도 바뀌어야 해요. 기업 처지에선 남자든 여자든 집에 가서 아이 낳고 돌보고 행복한 시간을 갖는 것에 관심 없어요. 퇴근한 뒤에도 전화하고 카톡하고 문자 보내서 일 시키죠. 그걸 잘하고 토요일·일요일에도 나와서 일하는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으로 통하고요. 이런 인식을 바꿔야 해요.




유승민의  저출산·육아  공약


육아휴직 기존 1년에서 3년으로 확대
육아휴직 급여 통상임금 40%에서 60%로 인상, 상한선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인상
육아휴직 대상을 만 8살 이하 자녀 둔 부모에서 만 18살(고3) 자녀 둔 부모까지 확대
육아휴직 최대 3회까지 분할 사용(1년 유상, 2년 무상 휴직)
공공보육시설 현재 28%에서 70%까지 확대
초등~고등학생 자녀 1인당 10만원 아동수당 도입, 가정 양육수당 2배 인상
초등학생 하교 오후 4시까지 연장, 돌봄교실 확대
초등학교 취학 전 부모에게 최소 12시간, 임산부에게 최소 13시간 연속 휴식 보장
칼퇴근법, 돌발 노동 금지


“이건 예산이 좀 듭니다”그래서 퇴근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업무 지시를 하는 걸 ‘돌발 노동’으로 보고 할증임금을 지급하게 하겠다고 하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그런 노동은 1.5를 곱하고 야근수당을 다 줘야 합니다. 다른 세상 이야기 같지만 프랑스는 아예 돌발 노동을 금지하고 있어요. 독일은 1.5를 곱해서 야근수당, 오버타임 비용을 주도록 법에 규정돼 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납니다.

유럽은 워낙 복지가 철저하잖아요. 차별도 없고. 우리나라에선 돈만 더 주면 근절이 될까요?

그렇게 하는 것은 돌발 노동을 아예 시키지 말라는 거죠. 업무 지시할 게 있으면 근무시간에 하라는 거죠. 우리나라는 퇴근하라 해놓고 갑자기 상사가 생각나면 자기 편할 때 전화해서 업무를 지시하잖아요. 그렇게 하지 말고 일을 체계적으로 시키라는 거죠. 퇴근 뒤 일을 시키면 초과근로수당을 줘야 하니까. 이건 하기 나름입니다. 옛날 휴대전화가 없을 땐 어떻게 살았나요? 프랑스와 독일 기업들은 우리보다 더 칼같이 쉬고 따질 거 다 따지면서도 더 경쟁력 있고 세계 1등 기업이 많잖아요.

프랑스는 낮술도 먹더라고요. 와인 문화가 있어서. (웃음)

(웃음) 점심, 저녁 때 꼭 먹죠.

우리도 그런 문화는 안 될까요?

우리도 점심에 낮술 먹는다고 누가 뭐라진 않잖아요. (웃음)

법은 많이 만들어지는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법이었으면 좋겠어요.

과거에 주 6일 일하다 주 5일 근무로 갈 때 어땠나요. ‘과연 가능하겠느냐’ ‘월급 줄어들지 않겠느냐’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법으로 강제해서 됐어요. 근로시간 줄이는 건 회사 처지에선 ‘인건비 더 들어가겠구나’ ‘야근수당 줘야겠구나’ 하는 선입견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고 봐요. 돈 부담 말고 문화를 바꾸는 거예요.

출산을 기피하는 건 교육비 부담 때문이기도 해요. 그래서 아동·양육 수당 올리겠다고 하셨죠.

양육수당은 0~2살 아이를 집에서 키우는 분들에게 더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집에서 키우면 0살 아이의 경우 20만원 줍니다. 어린이집에 보내면 간접 지원 받는 것을 합해 80만원이 됩니다. 집에서 키우면 20만원인데 어린이집 보내면 80만원이 지원되니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 집에서 키울 수 있는 부모들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냅니다. 그래서 0~2살 양육수당을 2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리자고 했죠. 그러면 자신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음에도 일부러 어린이집 보내는 수요는 줄어들 겁니다.

아동수당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3까지 12년 동안 매월 10만원씩 드리자는 겁니다. 0살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양육수당이 나오니까요. 자녀 기르는 부모한테는 뭔가 국가에서 성의로 보태드리자는 취지입니다. 이건 예산이 좀 듭니다.

발음 주의, ‘국민개세(皆稅)주의’

어떻게 예산을 마련하죠?

기초생활보호제도에 부양의무자라는 게 있죠. 내가 소득 없이 가난한 할머니인데 용돈을 안 주는 아들이 소득 있으면 기초소득보장을 못 받습니다. 빈곤의 가족 연대 의무를 강화한 건데 우리나라 같은곳이 없어요. 서울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대표적 예입니다. 빈곤 대책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는 데 8조~10조원이 들어갑니다. 아동수당을 제가 말한 방식대로 하는 데도 6조~7조원이 듭니다.

제가 말한 복지, 보육, 교육 등의 공약을 다 지키고 싶지만 돈이 제법 들지 않겠습니까. 그걸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1년 자신의 대선 공약을 발표하면서 130조원이 들어가는데 5년 동안 지하경제를 양성화한다 어쩌고 하면서 세금을 더 안 올려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했는데 실패했죠. 제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할 때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중부담-중복지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수준의 중복지로 가려면 세금을 중부담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증세를 이야기합니다.

증세를 한다면 어느 부분을 염두에 두세요?

소득세, 법인세, 부가세 등 여러 가지가 있죠. 증세를 어느 하나에 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법인세와 소득세는 골고루 올리되 더 부자인 사람이나 대기업은 더 내도록 해야 합니다. 거기서 많이 거두도록 해야죠. 지금 근로소득세를 보면 46~47%가 면세자입니다. 세금을 1천원도 안 내는 이가 그 정도라는 겁니다. ‘국민개세(皆稅)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욕하시는 거예요? (웃음)

발음을 잘해야 하는데. (웃음) 모든 국민이 1천원이든 1만원이든 세금을 내게 하자는 것입니다. 늙으면 국가가 도와주자는 게 제 주장입니다. 제 공약을 실천하는 데 5년 동안 200조원이 들어간다고 하면 5년동안 1년에 40조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제가 밝혀야겠지요. 이제까지 대선 후보들은 세금을 올린다는 걸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어요.

표 떨어지는 소리니까요.

그렇지요. 대통령이 되면 국민에게 복지, 교육, 보육, 서민 주거 하기 위해서 돈을 이 정도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동의를 받아서 증세해야 합니다. 저는 부가세를 건드리는 건 조심스럽습니다. 1∼2%만 올려도 세금이 왕창 들어오지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구분 없이 세금을 똑같이 내는 제도니까요. 불공평한 거지요. 그러나 필요하면 건드려야죠.

지금까지 보수 쪽 분들은 부자 증세에 신경 안 쓰고 관대하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유 후보님은 좀 다르신 듯한데요.

저는 다릅니다. 지금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18~19%인데 OECD 평균은 26%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5년 안에 현 조세부담률을 22~23%로 올려야 복지예산이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일 국민 대부분이 ‘복지 안 해도 좋으니 증세하지 말라’고 하면 저출산 대책 이런 건 하기 힘듭니다.

국민을 설득할 수 있나요?

설득해야죠. 솔직한 게 중요해요. 대선 후보들이 증세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문재인 후보를 포함해서 다들 지금은 이야기하지 않잖아요. 저는 증세 계획을 아예 공개하려 합니다. 부양의무제 폐지하는 데 8조원, 아동수당에 6조∼7조원 등 큰 정책에 대해 “제가 5년 하면 지금보다 얼마 더 들어간다, 이걸 위해 세금을 이렇게 건드리겠다”고 말씀드리려고요.

“지금 아이를 키우는 줄 알았어요”초등학생 돌봄 강화를 위해 하교 시간을 오후 4시로 단일화하겠다고 하셨죠. 그럼 선생님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선생님을 더 고용해야죠.

아이들 사교육 부담을 덜어주는 건가요?

기본적으로 초1부터 고3까지 학원에서 할 수 있는 교육 수요를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맞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처럼 영어를 엉터리로 배우느라고 돈 많이 쓰는 나라가 세상에 없어요. 영어든 수학이든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맞죠.

이렇게 재미없는 학교도 세상에 없어요.

4시 하교라는 게, 맞벌이 부부들이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이유 중 하나가 사립학교가 하교 시간이 더 늦어요.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은 유치원보다 하교 시간이 더 빨라요. 유치원은 오후 3∼4시까지 맡기는데 초등1학년은 어떨 땐 12시에 집에 와버려요.

어떻게 잘 아세요?

여기저기 알아보니까 알지요, 뭐. (웃음)

지금 아이를 키우는 줄 알았어요.

저는 둘 다 키웠고요. 초등 1학년 들어가서 엄마들 경력 단절 많은 게 일단 아이가 빨리 집에 옵니다. 초등학생은 부모가 돌봐줘야 할 게 많죠. 숙제도 해야 하고 학교에도 가야 하고. 그런 거 안 해주면 왕따당하고.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힘들겠지만 학교에서 교육 기능을 강화해 오후 4시까지 돌봐줘야죠. 맞벌이 부부 같은 경우 아이를 학교에서 안전하게 오래 봐줄수록 좋아요.

선생님은 어떻게 충원하죠?

선생님들이 몇 년째 대기발령자가 많아요. 초등학교 하교 시간을 늦추면 거기에 필요한 선생님과 예산을 늘려야죠. 부모 처지에선 태권도, 피아노 등 학원으로 계속 아이를 뺑뺑이 돌리는 건 안 할 테죠.

비정규직에게는 칼퇴근, 육아휴직 등이 해당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어요.

아니요. 해당은 되는데, 어려움이 있죠. 지금 비정규직은 육아휴직 1년 적용받으려면 최소 1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고 돼 있어요. 계약 연장이 안 되면 혜택이 끝나고.

지금도 연장을 안 해주려 하는데요.

비정규직 저출산 대책을 아무리 잘해놔도 적용은 되지만 방금 말한 경우처럼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겪는 설움이 있긴 합니다.

비정규직을 줄일 방법은요.

오늘도 한국노총 행사를 다녀왔어요. 지난 10년 동안 비정규직·정규직 차별 말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하라고 하는데 기업들이 귀신같이 피해가요. 제가 급진적인데, 대기업이나 금융회사, 공기업처럼 형편이 되는 기업은 정규직을 써야 하는 상시적·지속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을 금지해야 해요. 그게 사유 제한입니다. 비정규직 채용 사유를 제한해서 정규직이 해야 할 일을 비정규직으로 하는 걸 금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 하나는 비정규직 수가 업종별로 달라요. 업종별로 차이를 두면서도 비정규직 총량제를 도입해 비정규직을 한도 이상으로 못 늘리게 하는 거죠. 이런 제도도 중소기업에는 쉽지 않아요. 재벌들이 하청 단가를 쥐어짜고 착취하는 구조에서 중소기업들이 숨 쉬게 해줘야 합니다.

“그때 왜 대통령에게 얘기 안 했어요?”

유 후보는 경제학자로 유명하시잖아요. 그렇게 공부 많이 한 경제학자가 정치권에 들어오는데 왜 우리 경제는 나아지지 않죠? 가계부채에 하우스푸어에, 경제학자들 책임은 없나요.

제가 유명하진 않고요. (웃음) 정치권에 들어온 경제학자 엄청나게 많죠. 책임 크기로 따지면 역대 장관 책임이 제일 크고 그다음으로 경제학자 관료들 책임이 큽니다. 표현이 조심스러운데, 하여튼 엉터리가 너무 많아요. 대통령부터 문제를 똑바로 알아야 해요. 박근혜 전 대통령도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해서 빚내서 집 사라고 했는데 가계부채가 늘었죠.

그때 왜 대통령에게 얘기 안 했어요?

제가 대통령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예전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을 했는데.

12년 전에 10개월 했어요. 제가 새누리당 원내대표 연설에서 말했죠. 박 전 대통령 집권 2년2개월 땐데 “이 방향으로 가면 실패다. 경제든 교육, 보육, 안보 등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했어요. 외환위기 때인 1997~2000년 국책연구소에 있었는데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어요. 문제는 경제인데 최종 결정은 다 정치에서 해요. 그래서 정치를 하게 된 거예요.

대통령이든 장관이든 가계부채, 조선이나 해운같이 부실 기업 문제 같은 걸 근본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단기적 성적표에만 집착하다 경기를 띄우려 미봉책으로 해요. 역대 정권이 다 그랬어요. 이명박 정부는 4대강사업을 하다 끝났고 박근혜 정부는 가계부채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었죠.

우리나라 경제 시한폭탄이 가계부채 아닙니까. 지금 1997~98년 경제위기가 다시 온다는 이야기도 하잖아요. 대우해양조선은 어정쩡하게 봉합하고, 사드로 중국 리스크 있고, 일본과는 ‘위안부’ 재협상 과정에서 통화스와프가 중단됐고. 사실 어떤 도화선에 불이 붙을지 몰라요. 위기가 오면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내려갈 수 있어요. 1998년엔 성장률이 -5.5%까지 내려갔죠. 다음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가계부채가 경제위기로 안 번지도록 관리해야 해요.

유 후보님은 “경제를 전공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내가 슬기롭게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말하시는 거죠?

저는 이야기하는데 많은 분들이 안 들어주시니까. (웃음) 하지만 진짜 걱정이에요.

보수 후보 단일화를 말씀하시는데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자유한국당 후보가 돼도 할 건가요?

후보 단일화는 반기문·황교안을 전제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지금 그 후보들 없잖아요.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아직 재판 중인 홍 지사 같은 분과 과연 단일화를 해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고민입니다.

“지금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요”곁에 계셨던 분으로서 박 전 대통령이 겪는 모든 일을 어떻게 보세요.

인간적으로는 안됐죠, 안타깝고. 그렇지만 저는 그분과 일로 만난 사이고, 특히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국가 최고의 공인이죠. 저는 공인 박근혜에 대해서는 늘 엄격했습니다. 그러다 원내대표 때 탄압도 받았고. 새누리당 출신 중에선 제일 고생했으니까요. 박 전 대통령은 지금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요. 집 앞에 온 지지자들 해산시키고 국민 통합을 위해 뭔가 역할을 해야죠. 좀 늘 답답하지요.

제가 받은 트위터 질문이에요. 보수정권 10년동안 나라가 어려워져서 사람들 사이에 외환위기가 다시 올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그런데 왜 보수 후보를 뽑아야 하죠?

무슨 염치로 그러냐는 건데… 저는 오래 전부터 그동안 보수가 해온 방식으론 안 된다고 이야기했어요. 개혁적 보수를 이야기한 게 그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심판받겠다는 거지 이명박·박근혜처럼 똑같이 하면서 뽑아달라는 건 아닙니다.

이른바 ‘원조 친박’인데, 정말 최순실 몰랐어요?

진짜 모르죠. 제가 원조 친박 했던 게 2004~2005년이에요. 그때 정윤회라는 사람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보좌관이었어요. 제가 박 전 대표 비서실장 할 때 그가 3인방(정호성·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 친구들 데리고 강남 사무실에서 밤에 회의하고 중요한 결정을 한다는 소문은 있었어요. 역대 비서실장 가운데 저만큼 무섭게 3인방 통제를 한 사람이 없어요. 청와대 비서실장들도 그 친구들 엄하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3인방이 대통령 귀를 잡고 있었어요. 그게 ‘문고리 권력’이죠.

그 뒤에 최순실이 있지 않았냐고 하는데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정윤회와 둘이 부부라는 건 다 알았지요. 최순실 관련 루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간 뒤 나왔어요. 최순실이 저녁에 청와대 출입한다더라는 이야기 등은 정윤회와 이혼하면서 나왔지요.

인터뷰를 끝내며 앙다문 그의 아랫입술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더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이회창·박근혜 대표 모시고 돕느라 아랫니가 거의 없어졌어요. 임플란트를 했더니 이래요. 그때 이가 많이 상했어요. 문재인 후보도 비서실장 시절 이가 많이 빠졌다 하더라고요.”
나는 우주소년 아톰이라는 인형을 좋아해서 남편이 생일에도 아톰 인형을 사다줄 정도다. 내가 아톰을 좋아하는 이유는 앙다문 입이 야무져 보여서다. 정의를 위해 주먹 쥔 한 팔을 쭉 뻗고 날아갈 때 야무지게 입술을 앙다무는데 위로 치켜뜬 눈동자와 입술이 너무나 결연해서 웃음이 나올 정도다. 유승민 후보에게 “입술이 매력입니다”라는 뜻으로 말했던 것인데 의외의 답이었다. 그의 책임감, 그의 성실함, 그의 고충이 느껴진 대목이다.
그 집에 좋은 일만 있으려나?

사족 하나,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데 옆방에 이혜훈 의원이 와서 기다리다가 나와 구면이기에 반가워하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다 그만 문 앞 발아래에 있던 난 화분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발로 건드리고 말았다. 유 후보가 일촉즉발 위기에 “아이고, 이 의원님~” 하였건만 동시에 와장창 화분이 산산조각이 났고 난초 따로 흙 따로 바닥에 쏟아졌다.

이 의원은 당황하며 사진기자에게 “이건 찍지 마세요”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속담을 떠올렸다. 옛날부터 이사할 때, 이삿짐을 다 싸고 떠나기 직전 옛집 문 앞에서 바가지를 밟아 깨는 관습이 있다. 옛집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훼방 놓는 귀신들이 바가지 깨는 소리에 놀라 겁먹고 따라오지 않도록 해 새로 이사 간 집에선 좋은 일만 있기를 발원하는 것이다. 바가지 일부러 깨듯 화분이 오지게 깨졌으니 그 집에 좋은 일만 있으려나?

김미화 코미디언
정리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김서진 객원기자
사진 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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