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반짝 호기심 살짝 사명감

라디오방송 시사 프로그램 하차 4년 만에 <한겨레21>과

대선 주자 연속 인터뷰 ‘꼬치꼬치’ 시작하는 코미디언 김미화
등록 2017-02-28 13:50 수정 2020-05-03 04:28
코미디언 김미화씨가 2월22일 서울 여의도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을 인터뷰하고 있다.

코미디언 김미화씨가 2월22일 서울 여의도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을 인터뷰하고 있다.

뾰족한 남색 에나멜 구두가 사무실로 먼저 들어섰다. 10㎝가 넘는 힐이었다. 코미디언 김미화씨는 ‘특별한 날’에만 신는 구두라 했다. “차에서 갈아 신고 왔어요.” 높은 구두가 어색한지 그의 걸음은 전보다 조심스러웠다.

평상시엔 운동화를 신고 자택인 ‘후조당’, 직접 운영하는 카페 ‘호미’, 라디오방송을 하는 (TBS), 여러 행사장을 바삐 오간다. 구두를 신는 특별한 날은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쯤. 텔레비전 방송을 쉬고 있는 그는 주로 강의를 할 때면 구두에 오른다.

2월22일, 운동화를 벗은 이유는 조금 달랐다. 정치인을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공식 인터뷰는 꽤 오랜만이다. “대선 주자들을 만나니까 예의를 좀 갖춰야 하죠. 평소엔 화장도 잘 안 하는데 오늘은 화장과 머리까지 직접 했어요.”

4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매일 정치를 다뤘다. 10년 동안 라디오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지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라며 청취자가 이해할 때까지 정치인과 전문가들에게 정치·사회 현안을 묻고 또 물었다.

다른 시사 프로그램을 맡고 있던 당시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인터뷰하는 사람들이 우리 프로그램에서 말씀 안 하시던 걸 김미화씨 프로그램에서 시원하게 하시는 걸 보면서 진행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할 정도로 유능한 진행자였다.

신나게 방송하던 그는 2010년 KBS, 2011년 MBC에서 차례로 마이크를 빼앗겼다. 몇 달 뒤 CBS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으로 복귀했으나 2년을 채우지 못했다. 일부 보수 언론·정치인이 ‘친노’ ‘좌파’ ‘종북’ ‘반미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수년간 흔들어댄 결과였다. 연예계 ‘블랙리스트’의 원조 격이다.

시사 프로그램과 멀어졌던 그가 다시 ‘여의도’로 돌아왔다. 대선 후보들을 차례로 만나는 의 ‘김미화의 꼬치꼬치’ 인터뷰를 맡았다. 첫 번째 순서로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이재명 성남시장의 캠프 사무실을 찾았다. 이 시장과 인터뷰하고 나온 그를 이 인터뷰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덤덤한 얼굴이었다.

시사 방송도 ‘사회복지’라는 꼬임에 넘어가정치인 인터뷰는 오랜만이시죠.

그럼요. 시사 프로그램을 그만둔 지가 얼마인데요. 지금은 말랑말랑한 예능 라디오방송을 하고 있어요.(웃음)

재밌으셨어요.

네네. 괜찮았어요. 오늘 인터뷰를 하기 전, 제 트위터에서 질문을 받았거든요. 이재명 시장에게 대신 꼬치꼬치 물어봐주겠다고요. 그런데 이 시장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기도 했고, 다른 당을 지지하는 분들끼리 (트위터 안에서) 다툼도 있었어요. 그런 현상이 재밌었어요.

선뜻 인터뷰를 맡아주셨어요.

이번 대선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저도 유권자로서 한번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후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내가 뽑아도 될 사람인지. 눈빛을 보며 이야기 나누다보면 진심이 보이니까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많은 분이 후보들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게 방송인이고 진행자인 제 일이니까요.

2000년대 초반에는 코미디언이 시사 프로그램을 맡는 일이 파격이었죠.

최초였어요. 굉장히 창의적인 아이디어였죠. 저도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래서 안 맡으려고 도망 다녔어요. 정치를 모르니까요. 또 대중 연예인으로서 부담스러웠어요. ‘지금은 모두 날 좋아해주는데 앞으로 절반이 나를 반대하면 어쩌지?’ 결국엔 PD의 사탕발림에 넘어갔죠.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사람이 좋은 뉴스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사회복지 아니냐”고요. 생각해보니, 나중에 정치 코미디를 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도 같았고요.

새로운 일이 어떠셨어요.

처음엔 엄청 떨고 잘 못했어요. ‘주 리비아 대사’를 ‘주식회사 리비아 대사’라고 잘못 말하기도 했죠. 적응하기까지 박사 공부 하는 것만큼 어려웠어요.

10년간 진행하고 4년간 쉬셨죠.

뭐, 저는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나운서처럼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에요. 코미디언이 제 뿌리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코미디언이 국민들이 속 시원하도록 어떤 문제에 희극적 요소를 넣어 통쾌하게 말하는 것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정말 웃긴 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카더라’라는 소문만으로 김미화가 좌파니, 빨갱이니 하잖아요. 그래서 이 사회에 대고 크게 한번 외쳤는데 그 일이 심각해졌죠. 그때는 제 밥그릇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일이 커지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때 너무 젊어서 욱했나’ 이런 생각도 한 번씩 해요. 결코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더 성숙하게 대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거죠.(웃음)

2010년 여름, 그의 짧은 트위터 글이 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김미화는,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존재하고 돌기 때문에 출연이 안 된답니다.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밝혀주십시오.’ 곧바로 KBS는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넉 달 만에 KBS가 먼저 소송을 취하했지만 그는 친정인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일은 MBC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퇴출의 빌미가 됐다. 방송 초기부터 지속된 보수 정당·언론의 ‘편파 방송’ 공격에도 8년간 굳건히 지켜온 프로그램에서, 그는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쫓겨나야 했다. CBS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으로 자리를 옮긴 뒤인 2012년에는 청와대와 사정기관의 ‘좌파 연예인’ 사찰 논란에 휘말렸다. 한 해도 조용하게 지나간 적이 없었다.
왜 타깃이 됐다고 생각하세요.

그러게요. (MB 정부의 김재철 사장 체제에선) 사실 강성인 MBC 노조가 타깃이었죠. MBC 노조가 눈엣가시였던 사람들이 (노조가 아니라) 만만한 저를 건드린 거죠. ‘을’이고 잃을 것도 많은 코미디언이니까요. 거기다 간판 시사 프로그램도 하고 있었고요. (다른 시사 프로그램을 하고 있던) 손석희 선생님은 건드리지도 못하면서.(웃음)

10년째 보수·극우 언론과 싸우고 있으시죠.

2007년 와의 ‘정정보도’ 싸움이 시작이었어요.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 적이 없어요. 제가 사회를 정말 잘 봐요. 전국노래자랑부터 대통령 행사까지 돈 많이 받고 팔려 다녔어요. 재능을 판 거죠. 그런데 (그동안 맡았던) 보수 정당 행사는 다 묻혀버리고 노 대통령 행사만 문제 삼는 거예요. 7년간 참았는데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거예요. 주위에선 “가만히 있으면 넘어가”라고 하는데 제 성격이 그래요. 기질적으로 아닌 건 아닌 거예요.

보수·극우 언론은 그에게 ‘친노’ ‘종북’ ‘좌파’의 색깔을 덧씌웠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4주년 행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친노’ ‘노빠’라는 식의 억지 주장이었다. 수년간 반복된 악의적 보도는, 그가 방송에서 퇴출되는 빌미가 됐다.
물론 의기소침할 그가 아니었다. 그는 지금까지 팟캐스트, 길거리 콘서트, 인문학 강의 등으로 더욱 바쁘게 살아왔다. “마이크를 뺏으면 ‘인생 끝’이라고 생각하는 권력자들에게 멋지게 한 방 먹이며 잘 살고 있다. 광대는 입만 있으면 어디든 무대가 될 수 있으니까.” 물론 법적 응징도 잊지 않는다.
“난 정치를 다루지만 정치적이진 않다”
2월22일 이재명 성남시장 인터뷰에 앞서 김미화씨가 준비해온 질문을 다듬고 있다.

2월22일 이재명 성남시장 인터뷰에 앞서 김미화씨가 준비해온 질문을 다듬고 있다.

승소율은요.

다 이겼어요. 언론중재위원회 정정보도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요. 직접 다 했어요. 모르면, 아는 변호사한테 전화해서 원포인트 레슨 받아가면서요. ‘친노 종북’이라는 기사를 반복해서 올리는 (미디어워치 전 대표인) 변희재씨한테는 (기사) 건건이 소송을 걸고 있어요. 이제는 법원 앞길, 뒷길 어디에 차를 세워놔야 법정까지 빨리 가는지도 다 알아요.(웃음)

왜 피하지 않으세요.

제 이름이 미화(美花)예요. 아름다운 꽃. 그런데 입 나온 여자, 게다가 쌍꺼풀도 없이 콧구멍도 막 벌렁벌렁 커져요. 예쁘다는 소리 한 번도 듣지 못한 이 얼굴로는 코미디가 가장 맞다고 어릴 적부터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남자들하고 당당하게 뭐로 겨루나? 나에겐 아이디어가 있다, 그랬어요. 순악질 여사도 어릴 때 ‘일자 눈썹을 나중에 해봐야지’ 한 아이디어에서 나왔거든요. ‘여자들이 고무신 신으면 남자들도 나이키 말고 고무신 신어. 그럼 동등하게 달릴 수 있잖아’ 그랬던 거죠. 그렇게 늘 문화를 바꿔보고 싶었어요. ‘정치를 희화하면 안 된다’ ‘나이 들면 밖에서 활동하면 안 된다’라는 문화를 바꾸는 것도 제 꿈이었죠.

그래서였을까. 그는 일이 터질 때마다 주저 없이 거리로 나갔다. 2002년 미선이·효순이 사건에서 비롯한 소파(SOFA,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개정 시위, 2003년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 처리 반대 시위, 2003년 호주제 폐지 활동 등에 참여했다. 그만큼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 갖는 호소력과 파급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동시에 연예인에게 허용되는 사회 활동의 ‘선’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정치를 다루지만, 그렇다고 정치적이지는 않다. 코미디언 심형래가 영구와 땡칠이 역할을 하지만 바보가 아니듯.”‘정치를 다루는 사람’과 ‘정치적인 사람’은 어떻게 다른가요.

정치적인 연예인과 사회적인 연예인은 다르게 봐야 해요. 정치적인 사람은 뭐냐면, 내가 정치 쪽으로 가서 내 생활에 어떤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들인 거죠. 전 ‘정치인 행사에 얼굴을 내밀어서 코미디언 생활에 덕을 봐야지’라는 생각을 한번도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기쁨을 찾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코미디언으로 자리잡은 뒤부터 꾸준히 사회복지나 NGO(비정부기구)들과 일해왔어요. 홍보대사만 몇십 군데 하고 있고요. 그런 사회적 활동조차 정치적 활동이라 치부해버리면 정말 할 말 없어요.

정치적이진 않아도 정치 성향은 있으시죠.

당연하죠. 국민으로서 정치에 관심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어려운 사람, 약자에게 더 마음이 끌리는 건 사실이에요. 그게 비판받을 일인가요. 그런데 지금은 (코미디언) 후배한테 “세월호 가족 여러분 위로하러 가자” “위로하는 의미에서 우리 같이 노란 리본 달자” 자신 있게 독려를 못해요. 왜냐. 그 친구들까지 사회적으로 매도당하고 욕먹을까봐. 서글퍼요, 서글퍼.

블랙리스트 원조로서 최근 블랙리스트 논란을 어떻게 보나요.

아니, 왜 문화체육관광부가 자기들 잣대로 재단해서 ‘너는 착해. 재정을 이만큼 많이 줄게’ 이럴 수 있습니까. 그야말로 돈으로 문화를 길들이려 한 거잖아요. 진짜 민주주의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어요. 10년 넘게 이런 일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이어져온 거잖아요.

이번에도 광장에 나가보셨죠.

네. (광화문광장) 무대에 올라가서 촛불 들고 나온 분들의 결연하고 절박한 표정을 봤어요. 사실 저도 코미디 경력이 몇 년인데 김제동씨처럼 농담을 섞어 말할 수 있었죠. 그런데 (시민들 얼굴 보니) 마음이 참 갑갑해지면서 ‘우스갯소리 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딱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내려왔어요. “검찰이 바로서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결론이 날 수 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방 빼라!” 제 유행어예요. (예전 방송에서) 순악질 여사로 할 때 “방 빼!” 하고 끝나거든요.(웃음)

그래서 대선이 중요하다고 하신 건가요.

그럼요. 그렇다고 제가 ‘누가 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라고 확고하게 얘기할 수는 없어요. 여당이 못했으면 야당은 잘했나. 그건 아닌 상황이잖아요. 과연 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잘할 수 있느냐. 그에 대한 확고한 믿음도 들지 않고요. 이렇게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해야만 하는 국민들의 간절한 마음을 (정치권이) 잘 알고 있을지 의문이에요. 유권자들의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번 ‘꼬치꼬치 인터뷰’에도 살짝 사명감 같은 걸 가지고 있습니다.(웃음)

지금까지 대선에서 누구에게 투표하셨어요.

보수정당 후보를 뽑은 적도 있어요.(웃음)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적은요.

당연히 없어요. 다만 말해두고 싶은 게 있어요. 남편이 30년 넘게 스포츠학계에 몸담아 학생들을 가르쳐왔어요. 이번 정유라 사태를 보면서 스포츠계의 적폐에 대해 느낀 바가 많았나봐요. 제자들을 위해서라도 뭔가 바로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마침 대통령 후보 중 한 분이 우리나라 스포츠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조언해달라고 요청해왔는데, 남편도 돕고 싶다고 해요. 당연히 전 아내로서 남편이 가려는 길을 지지하고요. 물론 김미화가 그 후보를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고요.

(‘김미화의 꼬치꼬치’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결정한 이후, 김씨는 남편이 어느 대선 후보의 자문가 그룹에 참여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에 알려왔다. 그 일이 인터뷰에 누가 되지 않을까 그는 걱정했다. 부부이지만 각자의 길이 있고, 정치적으로도 서로 독립된 존재이기에, 그 일이 그가 진행할 인터뷰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고 은 판단했다.)

따로 마음에 둔 후보가 있나요.

아직 없어요. 아마 탄핵이 결정되고 나서 마음을 다잡으면 보이겠죠. 지금은 여론조사 지지율을 봐도 ‘정말 지지율인가?’라는 의심이 살짝 들기도 해요.

투표 전 어떤 기준으로 후보를 고를 생각인가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저 사람이 얼마나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그렇다고 리더가 불의와 손잡으라는 건 아니에요. 다만 한쪽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 함께 사는 사회를 저 사람이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살짝 보수적인 거죠.(웃음) 그래서 이번 인터뷰에서 (후보들에게서) 좀 뜯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아는 척 안 하는 게 나의 무기”과거 시사 프로그램 진행하실 때 동시간대 청취율 1위를 기록했어요. 이번에는요.

그때는 제가 몰라서 그런 거예요. 몰랐던 게 비결이죠.(웃음) 왜냐면 손석희 선생님은 너무 많이 알 것 같잖아요. 그런데 ‘김미화는 모르니까 차분차분,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해줘야 해.’ 그게 오히려 저에겐 엄청난 무기가 된 거죠. 제 수준이 보통 청취자나 시청자 수준이거든요. 사실 기자, 앵커들도 쪽팔려서 몰라도 아는 척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물어보거든요.

그래서 이번 인터뷰 콘셉트도 ‘꼬치꼬치’로 한 거군요.

사실 콘셉트라 할 수도 있고, 진짜 모르는 것도 있고요.(웃음)

생활인의 눈높이에서 꼬치꼬치 캐묻는 ‘김미화의 꼬치꼬치’ 인터뷰는 다음호부터 본격 연재된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정리 이은주 교육연수생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참고 문헌
, 김미화 지음, 메디치 펴냄, 2012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