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에 대비해 이 대통령 후보들을 연쇄적으로 만난다.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해온 코미디언 김미화씨가 인터뷰를 맡았다. “내가 이해할 때까지 묻는다”는 인터뷰 원칙을 지켜온 그는, 시민의 눈높이에서 후보들에게 ‘꼬치꼬치’ 질문을 던질 적임자다. 시민의 삶과 동떨어진 정치공학적 질문을 주고받아온 대부분 언론사들의 천편일률적 인터뷰와는 확연히 다를 것으로 기대된다.
인터뷰 주제도 차별화했다. 후보들의 대표 공약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선택과 집중 전략이다. 모든 분야의 공약에 대한 원칙적 견해를 일방적으로 듣는 대신, 한 개의 공약이라도 제대로 파헤쳐보려 한다.
첫 번째로 인터뷰한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예비후보 이재명 성남시장은 모든 아동·청소년 입원비 전액 지원을 비롯한 공공의료 정책, 한국형 재벌 부당이익 환수법 제정을 비롯한 노동권 강화, 기본소득을 통한 생존권 확보 등 세 가지 대표 공약을 보내왔다. 은 그 가운데 시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본소득’을 인터뷰 주제로 골랐다. 그는 지난해 성남시에서 부분적 기본소득 모델인 ‘청년배당’을 도입한 것을 계기로 기본소득을 자신의 브랜드 정책으로 앞세웠다. 대표 공약에 대한 질문 뒤 김미화씨의 ‘자유 질문’도 이어진다. 그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받은 시민들의 질문을 이 시장에게 대신 던졌다. 인터뷰 동영상은 페이스북·한겨레TV 유튜브 계정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재명의 대선 행보를 따라가며 찍은 ‘후보 B컷’, 공약을 검증한 ‘반대심문’, 후보의 저서를 읽는 ‘대선 북리뷰’도 담았다. _편집자
이재명에 대한 기자의 선입견은 두 개의 장면으로 요약된다.
하나는 지난해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의 ‘저잣거리 아녀자’ 발언. “박근혜는 이미 국민이 맡긴 무한 책임에 대한 그 권력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던져주고 말았습니다.” 그는 여성혐오가 극렬한 시대에 성평등 감각이 부족한 정치인으로 비판받았다. 국정 농단의 당사자가 남성이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여성 비하적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장애인을 시장실 밖으로 퇴거 명령한 장면. 지난해 10월 장애인 콜택시 요금 인상을 반대하는 이들이 시장실에 들어갔다. 고성이 오가고 이들은 쫓겨났다. 그가 뭔가 고압적 말을 하는 동영상도 있었다. 시장실에 ‘난입한’, 그래서 ‘들려 나간’ 장애인들은 경기도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람들로 기자로선 신뢰하는 단체의 활동가들이었다.
‘이재명’이라는 하나의 질문연설 중에 드러난 인식과 비교적 공개되지 않은 장소, 거기서 흘러나온 말이 가장 낮은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 아닐까, 싶었다. 물론 청년배당, 무상교복, 산후조리 지원 같은 이재명 시장의 정책을 모르지 않았다. 그가 소년노동자로 절박한 세월을 보냈고, 산업재해로 팔이 불편한 장애인이며, ‘이명박근혜’에 맞선 시장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은 그 뉴스를 표지이야기 등으로 전했고, 동료들이 취재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았다.
대선 정국 ‘이재명’은 하나의 질문이었다. 한국 사회의 평균보다 매우 급진적인 기자의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은 이번 대선에서 내심은 몰라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후보가 없어 보인다. 거의 유일하게 올라오는 열성적인 지지글은 이재명 후보에 관한 것이다. 이름이 알려진 칼럼니스트가 그렇고, 교육운동을 하는 친구가 그렇다. 이들은 민주노동당 당직자를 지냈다. 다른 민주노동당 출신의 정치학자는 이재명이 왜 포퓰리스트인지를 강조하는 포스팅을 올린다.
저들이 저렇다면, 이재명을 조금은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게을러서 모르는 것일 수도 있으니 책이라도 한번 읽어보자. 오해가 없도록 하자면, 민주노동당 당적을 가졌던 이들을 포함해 많은 진보정당 당원과 활동가들 전부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마침 페친 한 명은 촛불집회를 다녀오면서 이재명이 궁금해 그의 책을 여러 권 샀다는 글을 올렸다. 자전적 에세이 (위즈덤하우스 펴냄, 2017), 정책을 요약한 (메디치미디어 펴냄, 2017), 이재명의 구술을 서해성 작가가 정리한 (김영사 펴냄, 2017), 마르크스의 원전을 번역한 최인호씨가 쓴 (이맛돌 펴냄, 2016)가 최근 나온 4권의 책이다.
이 책들을 읽으며 정리한 메모의 첫 줄은 이렇다. ‘스웨그(Sweg·힙합에서 쓰는 자기만의 멋과 도취, 자신감)란 단어가 떠올랐다.’ 자신을 ‘이성남’(이재명+성남)이라고 하는 이 상남자의 태도에 관한 메모다. 모든 책에서 강조되고 강조되어 마침내 외우게 되는 성남시의 3대 무상정책. 청년배당, 무상교복 그리고 산후조리 지원. 두 번의 민선 시장을 거치며 이뤄낸 성과에 대한 자부가 글에서 넘친다.
반복해서 읽어도 ‘이명박근혜’ 정부의 집요한 방해에 맞서서 이뤄낸 성과는 ‘자랑질’할 만하다. 그에겐 ‘실물 자산’이 있다. 무상복지 시대의 아이콘 자격도 있다. 독후감 정서로 ‘스웨그’가 남은 것은 시정의 영향만이 아니다. 소년노동자에서 인권변호사, 민선 시장, 대선 후보로 성장한 과정에 대한 그의 자부가 더해져서다. 그 스웨그는 공허한 제스처가 아니다.
‘끝내 이기리라’의 결정판한국 사회는 자수성가한 남성 정치인을 ‘편애’한다. 이명박만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민주 대통령도 그렇다. 유년의 가난과 정치적 시련을 두루 이겨낸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성남에서 중앙으로 진격하는 ‘변방의 장수’ 이재명은 지금껏 들어본 ‘저 들에 푸르른 솔잎’ ‘끝내 이기리라’의 결정판이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소년공으로 취직했다. 미성년이어서 다른 성인의 이름으로 ‘위장 취업’해 월급 1천원, 일당 100원, 400원 받는 소년공으로 살았던 이야기는 지금도 절절하다.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그냥 아픈 정도로 알았다가 나중에 팔의 성장판이 손상돼 굽은 팔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에 이르면 ‘전태일의 친구’를 떠올리게 된다.
그의 절절한 구술과 서해성의 절묘한 문장이 만난 을 읽다가 눈앞이 흐려져 한두 번은 독서를 멈췄다. 책에서 노래가 들렸다. 존 레넌의 (Working Class Hero). 그는 가사처럼 노동계급 청년 누군가 되어야 하는 무언가(Working Class Hero Is Something To Be) 중 하나가 되었다.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도 혼자서 패러디했다. “너는 자신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결함을 지적하려다가도 뜨겁게 살아온 사람을 함부로 발로 차는 것 아닌가, 자의식이 발동했다. 하나 어쩌랴, 기사는 써야 하고 그는 검증을 당할 운명에 처한 대선 후보다.
사실 4권의 책에는 반복되는 이야기가 많다. 숱한 밑줄이 있지만 이것만은 옮겨본다. “내 선거를 위해 야쿠르트 배달을 하며 고객을 설득했고, 내가 당선된 뒤에는, 야쿠르트 배달이 힘들어 하기 싫었지만 ‘오빠가 시장 되더니 좋은 데 가는 거냐?’ 하는 오해를 받기 싫어 그 일을 계속하였다. 2014년 청소회사 미화원으로 일하다 새벽 화장실 청소 중 내출혈로 죽었다. 자식은 아들딸 하나씩이다.”()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다. 그에게 가난은 지나간 추억이 아닐지 모른다. 형제자매를 통해 지금도 현재형인 가난이다. “아버지가 오래도록 해온 인연 때문일까. 우리 식구들은 여전히 청소일을 가장 많이 하고 있다.” 다른 형제들도 청소일을 하고 있다고 그는 밝힌다.
그의 가족이 체험한 가난은 정말 지독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상대원시장 화장실을 지키면서 돈을 받았다. 성남시 화장실 이용료는 소변 10원, 대변 20원이었다. 사춘기 여동생은 소녀의 손으로 오줌값을 받고 화장지를 쥐어줘야 했다.”
최소한 그는 자신의 역사를 배신하진 않았다. 가난한 이들을 의식하는 성남시의 무상 시리즈가 증명한다. 굳이 성남시 청소용역을 직영으로 전환해 ‘빨갱이 사냥’을 당했던 일도 가족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성남시와 계약한 청소용역 업체에 통합진보당 당원이 있었다는 이유로 그는 보수언론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렸다.
이성애자 남성만 감정이입하기 좋은 표현퇴행적 감각은 자수성가한 이들의 불행 중 하나다. 그는 자주 ‘머슴’을 말한다. 대통령이, 시장이, 선출직 공직자를 ‘머슴’이라고 한다. 머슴처럼 국민의 뜻에 따르고 시민을 위해 복무하겠단 뜻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의 책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 중 하나인 ‘머슴’은 이런 의문을 품게 한다. ‘아니, 선출직 공직자가 모두 남자도 아닌데, 왜 자꾸만 ‘머슴 머슴’ 하는지 모를 일이다.’
의 저자 최인호씨는 이재명의 촛불집회 연설에서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연설문 중 핵심이라고 꼽은 표현은 누군가에겐 오히려 문제적이다. “우리가 힘이 없고 돈이 없지만 가오가 없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 이재명은 이렇게 자꾸만 이성애자 남성만 감정이입하기 좋은 표현을 쓴다. 남성을 보편적 시민으로 전제하는 한국 정치인의 한계를 반복한다.
가족사를 설명하는 방식도 최근 저서인 에서 보편적 가족주의 코드에 맞춰 ‘살부의식’을 누그러뜨린다. 가난한 시절 생계를 책임졌던 어머니의 부르튼 손을 가장 가슴 아파하고, 아들의 주경야독마저 탐탁지 않게 여긴 아버지를 원망하던 상남자 이재명은 에서 아버지와 화해를 시도한다. 대학 시절 만난 운동권 친구와 의리로 진정성을 증명하려 한다. ‘어머니는 다 알고 있었다’는 모성신화는 대부분 책에서 강조된다. 이것과 관련된 독서 메모는 이렇다. ‘오빠는 필요 없다. 머슴도 필요 없다.’ 현대사회에서 누구든 모시지 않고 평등한 관계면 족하다.
지면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독서 메모의 ‘몰랐던, 놀랐던 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정치인으로) 소비된 말보다 정책이 새삼스러웠다.’ 노동자 경영 참가, 근로감독관 강화를 통한 50만 개 일자리 창출, 지역 검사장 직선제 같은 정책이 그랬다. 짐작보다 급진적이고 구체적이었다. 뉴스는 새로운 이야기를 뜻하지만 알았던 사실도 자세히, 정확히 앎으로써 뉴스가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청년배당, 무상복지 시행 과정에서 자원을 확보한 이야기는 새삼스러운 면이 있었다. 다만 “쓸데없는 간접자본 투자를 좀 줄이고” 재원을 확보한다는 부분에 의구심이 남았다. 그 간접자본 투자가 ‘우리 집 앞의 방음벽’ ‘우리 동네의 지하철’ 같은 것이 되기도 해서다. 이에 대한 그의 실증적 반박도 준비돼 있을 것이다.
그의 저서엔 가슴 아픈, 가슴 뛰게 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변화를 말할 때는 광주민주항쟁 최후의 시민군 윤상원의 이름이 나오고, 통일정책에선 문익환 목사가 언급되며, 변방의 반란을 말할 때는 버니 샌더스가 호출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전통적 사회운동의 정서와 가깝고, 그 성과들을 가장 잘 반영한 후보란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 면에서 그는 민주-반민주 구도의 1987년 체제가 아직도 미완성이라면 그것을 종결할 완성자로 가장 적합해 보인다. 더구나 그는 가끔 과하긴 해도, 드라마를 만들 줄 아는 자질을 지녔다. 성남시장으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해 전임자들의 과오를 드러내고, 3대 무상복지로 화제의 전투를 만들어 이미지를 각인하는, 그는 집중과 주목의 기술자다.
지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망설여지는그는 자신이 지구적 기준에 비추어 진보가 아니란 사실을 아는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보수 정치인이다. 극우도 아닌 ‘가짜 보수’에 맞서 ‘진짜 보수’ ‘보편 보수’를 자처하는 그는 헌법 제34조 2항(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의 수호자가 되고 싶어 한다.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하는 후보이기도 하다. 기자는 차별금지법이 이번 대선을 가르는 최후의 바로미터라고 생각한다. 지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망설여지는 이재명, 자신의 운명을 바꾼 그가 한국 사회의 미래도 바꿀까.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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