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먼저 느껴지는 것은 기시감이다. 우리는 정확히 이와 똑같은 논쟁을 이미 몇 년 전에 온몸으로 겪었다. 논쟁이 오래됐고, 주제 자체가 각자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기 때문에 주장의 근거는 점점 더 정교해졌다.
근거만 놓고 보면 사실 어느 쪽이 옳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공정한 평가를 거쳐 점수를 냈다고 하지만, 심지어 점수를 내는 기준에까지 서로 문제 제기를 했으므로 애초에 평가 자체가 불가능했을 수 있다. 평가를 떠맡은 쪽이 산 넘고 물 건너 프랑스에 사는 사람들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어찌됐건 부산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걸로 결론이 난 것은 다행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지적한 대로 애초에 김해공항 확장이 답이 아니라는 것에서 이 논쟁이 시작됐다는 걸 기억할 필요도 있다. 그간의 과정을 열거해서 지금 상황을 이해해보면 다음과 같다. 김해공항은 포화 상태인데 확장은 안 되고, 그러므로 경남 밀양이나 부산 가덕도에 공항을 지어야 하는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으니 결국 애초에 답이 아니었던 김해공항 확장으로 가자….
모든 선택지가 답이 아니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모든 선택지가 답이라는 말이나 똑같다. 사실 영남권 또는 남부권 신공항은 아무 데나 지어도 큰 차이가 없는 것일지 모른다. 나름의 장단이 있을 뿐이다. 흔히 사람들은 정치 논리로 공항을 지어서는 안 되고 오로지 경제적 타당성만 따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건 반대로 경제적 타당성이 비슷한 경우 남는 게 정치 논리밖에 없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니 지금은 다들 아니라고 해도 결국 신공항은 정치 문제일 수밖에 없는 거다.
자기 의지가 분명한 문제, 그러니까 예를 들면 배신의 정치를 응징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책임지고 결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박근혜 정권이 김해공항 확장으로 이 문제를 결론 낸 것은 별로 새로운 일이 아니다. 김해공항 확장의 결과가 무엇이든 결정 과정이 이런 식이었다는 건 두고두고 비판받을 만하다. 대통령이 정치를 책임 있게 할 의지가 없는데 지역 갈등이 합리적으로 풀릴 리 만무하다.
여기서 애초 필요한 게 무엇이었는지 되새겨보는 것 역시 필요하다. 공항을 만든다는 것은 단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장소를 결정하자는 게 아니다. 경제성을 따지는 걸로 끝내는 게 아니라, 정권이 일종의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 자기 로드맵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어야 했다. 예를 들면 참여정부에는 지방분권이 있었고 이명박 정부에도 하다못해 광역화와 수도권집중 전략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정부는 즉자적 대응을 반복하는 것 말고 별다른 전략이 없어 보일뿐더러 신공항과 마찬가지로 지난 정부부터 계속 미뤄온 행정구역 개편 문제 같은 것도 소신 있게 결정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부담스러운 복지정책은 모조리 지자체에 책임을 미루고 심지어 지방재정 개편안을 통해 자기들끼리 싸우도록 부추기고 있다. 이런 식이니 지방이 공항에 목숨을 걸겠는가 안 걸겠는가.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편집장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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