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분노에 밤잠을 설쳤다. ‘배신의 정치’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를 내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였는가. 그것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은 정치적 손해를 보았는가. 그럼에도 TK(대구·경북) 하늘 아래 왕이 둘일 수는 없다고 몇 번이나 힘주어 강조했던 나날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범인이 정진석으로 의심된다는 것도 한 맺힐 일이었다. 한때는 충신이라던 PK(부산·경남) 유기준을 주저앉히다시피 해서 탄생시킨 충청도 원내대표 아닌가. 혁신위원장에 김용태를 내정했다고 할 때는 어리바리해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의 잘못된 선택을 실력행사로 고쳐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양반도 ‘자기 정치’를 꿈꾸거나 최소한 정의화류라는 게 드러났다. 자신이 휘두르던 도끼에 자기 발등이 찍힐 때가 가장 아프다.
대통령은 왜 하필 ‘정씨’들이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지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새로 국회의장이 된 정세균은 연일 개헌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개헌은 블랙홀이니 얘기하지 말라고 했거늘…. 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또 다르다. 따지고 보면 개헌 이야기를 할 때도 됐다. 분권형 개헌인지 뭔지를 해서 ‘반기문 대통령-친박 TK 총리’를 세운다는 구상을 작동시킬 좋은 기회다.
물론 개헌 논의는 양날의 검이다. 쓸데없이 정계 개편 같은 것을 촉발해서 TK가 고립될 수도 있다. 과거 정세균은 야당 대표이던 시절 ‘동진 정책’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지금 그렇잖아도 PK들이 들고일어나는 시점이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을 몇 명 당선시키더니 이제는 신공항 갖고 시위하기 시작했다. 퇴임 이후를 위해선 TK의 절대적 지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숙원을 좀 풀어주겠다는데, 이것에 거역하는 PK들이야말로 불충한 자들 아닌가. 얼마 전 PK 현기환을 내쫓고 TK 김재원을 불러들였지만 아직도 성에 차지 않는다. 온 사방을 아버지 TK와 어머니 충청으로 채우고 있으나, 믿을 사람이 별로 없어 고통스럽다.
예를 들면 정진석이 청와대의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거사를 치렀겠는가. ‘배신의 정치’가 판치는 마당에 이제는 TK라고 다 믿을 일이 아니다. 다행히도 ‘리틀 김기춘’ 우병우는 재산은 많아도 사심이 없고, 검찰총장 김수남도 자기 역할을 묵묵히 다 하는 것 같다. 대우조선해양 문제 책임을 뒤집어쓸 것 같으니 ‘야당지’에 대고 술술 불어버린 서울 깍쟁이 홍기택과는 아주 다르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닿았다. 김수남이 큰 칼을 휘둘러 대우조선해양과 롯데를 쥐 잡듯 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생각한 대로만 잘되면 눈엣가시 같은 사이비 TK, 전임 정권의 손발들을 다 잡아내고 묶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롯데도 대우조선해양도 PK 아닌가. 묵은 숙제들은 이렇게 시원하게 정리하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거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은 불안은 없어지지 않는다. 사실 지금까지 일어난 ‘사고’들은 결국 자신의 능동적 판단과 결정에 의한 것이다. 뭐가 어떻게 꼬일지,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뒤에서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 대통령은 오랜만에 남동생과 통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편집장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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