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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 취소

등록 2015-06-15 19:05 수정 2020-05-03 04:28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세긴 세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취소해버린 것이다. 한국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다. 최근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동아시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어 한-미 정상회담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됐다. 미국은 일본과 신밀월관계를 맺고 중국과도 새로운 양자관계를 만들기 위해 잇따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이 판국에 미국 방문 일정을 박근혜 대통령이 취소한 것은 상당한 외교적 리스크를 감수하는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일정 취소에 대해 청와대는 국민의 안전을 챙기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메르스 사태가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판에 대통령이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부담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해외 순방 일정을 그 어느 것보다 먼저 챙기는 것처럼 보였던 과거와는 달라진 행동이다. 메르스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고방식을 바꾼 것일까.

일부에서는 청와대의 이런 설명이 전부가 아닐 거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동·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일본, 미국과 중국이 영토 문제 등을 놓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주변국들에 자신들의 행보에 간섭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고 미국은 한국에 중국의 편에 서기보다는 자신과 일본의 편에 서야 한다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그간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으로 표현되는 외교 노선을 따라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오히려 부담스러웠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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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국내 이슈로 돌려볼 수도 있다. 메르스 사태가 이처럼 확대되기 직전까지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것은 국회법 개정안 문제였다. 모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 시행령에 대해 입법부가 정부에 수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 청와대가 ‘위헌’ 논란을 제기하며 반발한 것이다.

청와대는 이런 내용의 개정안을 야당과 합의하고 연일 자신들과 각을 세우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지도부를 ‘아웃’시키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피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사이 비주류 출신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가 어떤 ‘작당 모의’라도 하게 되면 아주 골치가 아파진다. 이런 점을 보면 메르스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미 정상회담 일정은 지켜야 한다는 외교 라인의 경고도 무시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결단’한 주요 이유 중의 하나가 이 문제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아니겠느냐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를 비우더라도 믿을 만한 사람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면 근심이 덜하겠지만 국무총리 자리가 여전히 공석인 것도 문제다. 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일단 정해진 일정까지 마무리됐는데 황교안 후보자가 자료를 불성실하게 제출한데다 세금 탈루, 병역 기피 의혹에 더해 ‘사면 로비’에 관련됐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어 야당이 인준에 동의해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어쨌든 국회 다수당은 새누리당인데다 야당이 그렇잖아도 수난사로 얼룩진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의 역사를 다시 쓰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어서 황교안 후보자가 결국 총리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한 것은 사실이다. 한쪽에서는 황교안 후보자가 전관예우, 종교 편향 등 낙마한 후보자들의 나쁜 점을 다 갖고 있으면서도 메르스 사태라는 ‘천운’과 특유의 ‘로키’(low-key)만으로 내각을 통할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은 ‘블랙코미디’라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어디 그것뿐이랴. 국민은 이제 애초에 박근혜 정부에 무엇을 기대했는지조차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아직 임기의 반환점을 돌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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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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