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선택했어요.”
저마다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잊혀진 계절’ 한 자락쯤 추억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10월의 마지막 날,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서 수리기사로 일하던 최아무개씨가 숨지기 전날 동료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엔 생활고와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던 삶의 흔적이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그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는 다음달이면 돌을 맞이하는 딸을 둔 30대 아빠였다. 그가 떠난 날은 마침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가 증인으로 출석한 날이다. 노조원들은 월 100만원이 안 되는 급여명세서를 사장에게 보이며 “이렇게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으나, 사장은 면담 요청을 거부한 채 서둘러 국감장을 빠져나갔다.
최씨 이전에도 같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더 있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삼성전자서비스 아산센터에서 수리기사로 일하던 조아무개씨나 강원도 원주에서 근무하던 김아무개씨 모두 지난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지난 9월27일엔 경북 칠곡 지점에서 일하던 임아무개씨가 뇌출혈로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임씨는 숨지기 약 한 달 전부터 건강에 이상을 느껴 무급휴가를 신청했으나, 회사 쪽이 거듭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위장도급 논란에 휩싸인 삼성전자서비스는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수사를 받기도 했다.
잇따른 불행의 원인은 서비스 경쟁의 최전선에 내몰린 감정노동자들이 겪어야 하는 남모를 고통에 사 쪽의 교묘한 노동통제 전략이 곁들여진 결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뇌출혈로 숨진 임씨는 죽기 얼마 전 동료들에게 “(해피콜에서) 3번 떠서 (대책서를 쓰다가) 밤 11시에 퇴근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의 만족도를 확인하는 해피콜 제도를 운영하면서, ‘보통’ 이하의 평가를 받으면 밤늦게까지 퇴근도 미룬 채 역할극을 시키거나 대책서를 쓰도록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해피콜을 기준으로 실적을 압박하는 회사의 강력한 노동통제가 벌어졌던 것이다.
최근 심상정 의원(정의당)은 삼성그룹이 지난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라는 제목의 151쪽짜리 문서를 공개한 바 있다. 사실상의 노조 파괴 전략을 담은 문건이다. 문건엔 회사 쪽이 비수기에 일감을 줄이고 표적 감사를 진행하는 등 구체적인 방해 행위에 나섰던 정황이 담겨 있다. 회사 쪽의 폭언과 욕설을 녹취해 알리려 한 것으로 전해진 최씨의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올해 손바닥문학상 공모 접수는 11월10일(일요일) 밤 12시에 마감됩니다. 의 손바닥문학상은 ‘문학과 언론의 경계에서 현실을 고발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입니다. 56~59쪽에 실린 ‘초대장’을 참고하세요.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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