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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체제 세력은 누구인가

등록 2013-10-12 15:47 수정 2020-05-03 04:27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두 회사는 스마트폰과 자동차라는 대표 상품을 만들어 내다팔아 돈을 번다. 두 회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제조업체다. 흔히 경제 영역을 비금융 부문(산업)과 금융 부문으로 나누곤 하는데, 사실 이런 구분은 일종의 가상모델에 따른 것일 뿐이다. 산업혁명을 이끈 주인공이 기술과 몸뚱이를 댄 쪽과 밑천(돈)을 댄 쪽으로 크게 갈렸던 역사적 경험도 한몫했을 수 있다. 어쨌거나, 산업과 금융은 우리의 의식 속에선, 엄연히 서로 다른 영역이다. 삼성전자를 금융회사라고 부르지 않듯이.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구분선이 흐트러질 수도 있다. 대기업이 일정 기간 거둔 전체 이익 가운데 전통적 의미의 제조활동뿐 아니라, ‘금융활동’을 통해 거둔 이익의 몫이 추세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방증일 수 있다. 제조업체들도 물건을 만들어 이문을 남기는 것 외에도 금융자산 투자를 통해 이자 및 배당소득을 거두거나, 환차익을 올리기도 한다. 이런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중요성 또한 점차 커지는 중이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기업(제조업체)들 입장에서 더 이상 ‘생산적인’ 투자 대상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점을 꼽아야 할 게다. 쌓인 돈을 굴릴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사실 ‘돈놀이’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각국은 산업 부문과 금융 부문 사이에 일정한 수준의 ‘칸막이’를 쳐두는 편이다. 다양한 제도를 통해서다. 현실적으로 두 영역을 넘나드는 것은 받아들이되, 어느 선 이상의 ‘융합’은 제동을 거는 식이다. 왜일까? 여러 이유를 찾을 수 있겠으나,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산업활동의 산물은 각 제조업체들이 만들어낸 사적 재화인 반면, 금융 부문이 취급하는 것은 화폐란 이름의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해, 제조업체가 사업을 하다 망할 경우 손해를 보는 범위는 총수 일가와 종업원 등 어느 정도 제한돼 있다. 이에 반해 금융 부문은 속성상 리스크를 사회 전체로 한순간에 확산시키기 마련이다. 금융 부문에서 문제가 불거졌을 경우엔 피해자가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가늠하기 힘들다. 단지 투자자뿐 아니라 이자소득으로 생활하는 금리소득자, 심지어 연금생활자 등 겉으론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리스크 전파 경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일부 재벌 총수들이 금융계열사를 곳간 삼아 자금을 빼돌린 다음, 이를 총수 일가의 사적 재산을 불리는 데 사용한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그 의미는 단순히 총수 일가의 횡령이나 탈세 행위에 그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이해를 채우기 위해 사회 전반으로 리스크를 확대재생산하는 행위야말로, 체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범죄나 마찬가지다. ‘반체제 세력’이란 용어야말로, 이럴 때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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