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4일은 한국 정치사에 좀처럼 지워지지 않을 진한 자국을 남긴 날이 될 듯하다. 물론 모두의 축복을 받는 희극보다는,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비극으로. 국가정보원 쪽이 통합진보당 소속의 현역 의원인 이석기 의원을 상대로 구인영장을 집행하던 그날 저녁 7시28분을 전후로 펼쳐진 드라마는 이번호 22~25쪽에 실린 기사에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그날 오후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했다. 새누리당을 비롯해 민주당과 정의당 등 논란의 당사자인 통합진보당을 뺀 모든 정당이 똘똘 뭉쳤다. 국정원에 의해 ‘내란 음모 세력’이란 딱지가 붙여진 이 의원 중심 세력의 주장에 동의하느냐 않느냐와는 무관하게, 피의사실 공표 금지 등 그간 한국 사회가 힘들여 쌓아온 인권의 원칙이나 사상의 자유가 허무하게 내팽개쳐지고 만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어설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정작 한국 사회의 헌정 질서를 무참히 유린해버린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 이슈가 온데간데없이 허공에 사라져버린 건 물론이다. 지난 대선 다음날, 댓글 공작에 나섰던 국정원 여직원에게 댓글 활동 실무 책임자였던 심리전단장이 보냈다는 문자메시지의 그 간결한 문구는 영원히 우리 역사에서 사라져버리고 마는 걸까? “김○○씨 덕분에 선거 결과를 편히 지켜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철없는 광기를 비난하는 또 다른 광기가 차분한 성찰과 기억의 싹을 짓밟아버린 꼴이다. 9월4일 하루는 그렇게 우리 곁을 흘러갔다.
이런 가운데, 최근의 공안 정국을 계기로 권력기관 내부의 무게중심이 급속도로 국정원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흔히 국정원과 검찰, 경찰과 국세청은 최고권력자와 정권을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으로 비유된다. ‘4대 사정기관’이란 용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만 해도, 국세청이 명실상부하게 새 정부의 최고 파워 집단이 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를 유달리 강조했던 만큼, 대기업과 재벌을 옥죌 수 있는 카드로 국세청만 한 조직이 없는 탓이다. 국세청의 뒤를 이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조직은 검찰이다. 때마침 CJ 등 재벌 총수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업무 속성상 대기업과 ‘일상적으로’ 조우할 수밖에 없는 국세청은 하루아침에 ‘디스’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드라마는 여기서 막 내리지 않았다. 불법 댓글 수사에 나선 검찰을 향한 국정원의 ‘분노’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이번 ‘이석기 녹취록’ 사건은 아마도, 현시점에서 승부가 확연하게 국정원 쪽으로 기울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지 아닐까 싶다.
권력기관들 사이의 힘겨루기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그 자체로 나쁘게 볼 만한 건 아닐 게다. 힘겨루기의 모티브가 최고권력자의 총애와, 그 총애를 바탕으로 자신의 권력을 누리기 위함에 있지 않다면야. 9월4일 국민의 대의기관이라는 국회가 보여준 초라한 몰골은, 결국 이번 사건이 국정원의 ‘최종 승리’가 아니라, 고삐 풀린 권력기관을 통제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실패로 끝날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하는 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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