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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트윗, <레미제라블> 은 힐링 텍스트인가

등록 2013-01-08 14:44 수정 2020-05-03 04:27

혁명씩이나 했는데 왕을 왕으로 바꾸었을 뿐

중간층의 피로를 야기한 전략에 대한 교훈은 얻을 수 있어
눈물 흘리기 전에 앙졸라가 아닌 장발장의 염려를 껴안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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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인 질문. 영화 은 힐링 텍스트인가. 이 질문은 일단 캐머런 매 킨토시의 뮤지컬·영화 버전에 국한한 것이 다(빅토르 위고의 원작과 뮤지컬·영화 버전 은 매우 듬성듬성한 차원에서의 이야기 얼 개를 제외하고는 같은 텍스트로 엮기 곤란 하다).

확실히 에는 관객의 마음을 고양시킬 수 있는 드라마가 있다. 원전의 내 용을 확대·축소하거나 아예 바꾸고 생략해 버린 뮤지컬의 각색 방향은 애초 그런 감정 의 폭발을 의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야권 지 지층이 에서 대선 패배의 후유 증을 치유받고 있다고 하면 이건 좀 엉뚱한 문제가 된다. 패배 원인을 상대 진영의 거짓 과 기만으로 돌리고 개표부정 같은 음모론 으로 ‘힐링’하며 을 인용한다 는 건 좀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의 주요 이야기는 1830년의 7월혁명 전후에 걸쳐 있다. 이미 프랑스는 1789년의 대혁명과 공화정 수립 이후 제1제 국, 그리고 왕정복고라는 황당한 과정을 고 스란히 겪은 상황이다. 7월혁명은 왕정복고 로 인한 반동의 역사를 되돌리려는 노력이 었다. 수많은 공화주의자들의 피가 뿌려졌 고, 결국 샤를 10세를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 다. 그러나 급진주의를 두려워한 온건 자유 주의자들은 정작 피를 뿌린 공화파의 주검 위에 올라서서 새로운 왕 루이 필리프를 옹 립했다.

그에 대한 공화파의 불만과 경제 악화, 콜 레라 같은 악재가 겹쳐 발발한 것이 1832년 의 파리 봉기, 즉 의 후반 무대 인 6월 봉기다. 영화에서 볼 수 있듯 말 그대 로 처참하게 실패한 항쟁이었다. 민중은 극 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혁명씩이나 해놓고 고작 왕을 다른 왕으로 바꾸었을 뿐 인데다(항쟁씩이나 해놓고 고작 전두환이 노태우로 교체된 데 따른 결과적 피로감을 떠올려보시라), 생활은 전보다 훨씬 형편없 어졌다. 극중 앙졸라는 민중이 당연히 나서 서 도와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민 중의 피로를 상쇄할 어떠한 대안도 비전도 제시하지 못했고 그저 당위에만 골몰해 있 을 뿐이었다.

만약 로부터 대선 패배를 설명하는 유의미한 설명을 끄집어낼 수 있 다면, 그것은 상대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수사적인 품성론에 집중한 전략이 중간층 의 피로를 야기했다는 점일 것이다. 극단적 인 진영 논리로 가능한 최대치를 동원했다. 75.8% 투표율에 과반 지지로 졌다. 그렇다 면 이와 같은 전략은 폐기 처분해야 마땅하 다. 그럼에도 여전히 바리케이드 뒤의 공화 파에 감정을 이입하며 좌절된 혁명과 대선 패배를 같은 층위에 두고 “민중의 노랫소리 가 들리는가”를 음미하며 낭만에의 보상을 찾는다면 이 판에는 영영 답이 없다.

이 제시하는 이슈는 정의의 궁극적 승리 따위가 아니다. 장발장과 자베 르가 벌이는 신념에의 대결, 장발장과 코제 트, 마리우스의 마지막 해후는 무엇을 의미 하나. 혁명이라는 거대 서사의 소용돌이 안 에서조차, 서로 다른 가치관과 계급과 세대 에 속한 이들을 공히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개인의 평생에 걸친 자기 비판과 성찰, 그리고 그로부터 얻어지는 박애뿐이라는 사 실이다. 우리는 이 숭고한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기 이전에 앙졸라가 아닌 장발장의 염려 를 껴안아야만 한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허지웅 문화평론가

영화  끝부분, 바리케이드에서 ‘내일’을 다함께 노래하는 장면은 감동을 자아낸다. 하지만 좌절된 혁명을 대선 패배에 등치시킨 해석이 정세 판단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유아이피코리아 제공

영화 끝부분, 바리케이드에서 ‘내일’을 다함께 노래하는 장면은 감동을 자아낸다. 하지만 좌절된 혁명을 대선 패배에 등치시킨 해석이 정세 판단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유아이피코리아 제공

라마르크는 박정희, 민중은 김종필일지도

문재인 지지자만 영화를 정치적으로 전유하진 않을지니…
‘위안’과 별개로 ‘정세 판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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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 대선에서 패배한 이 들을 ‘힐링’했다. 영화를 보며 그들이 어디에 서 위안을 느꼈을지가 궁금했다. 아마 영화 마지막 장면 바리케이드의 희생자들이 장발 장과 함께 ‘천상의 노래’를 부르며 ‘내일’을 말 하는 곳에서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군사정 권 시절 ‘장발장’은 이러한 ‘혁명’의 서사를 거 세해서 소개했단 식의 루머도 떠돌았다. 하 지만 영화의 기반이 된 뮤지컬 역시 에 대한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아동용 혹은 청소년용으로 편집된 ‘명작동화’ 버전을 이것과 비교해서 군사정권의 의도를 추론하 는 것은 별로 신빙성이 없다.

이른바 ‘산업화 세대’가 이 영화를 보고 어 떻게 느낄지 상상해보았다. 영화 초반, 빈민 과 창녀들의 비참한 삶을 보며 그들은 박정 희와 자신들의 노동이 한국 사회를 저런 처 지에서 끌어냈다 생각할지 모른다. 영화 중 반, 청년학생들이 ‘민중을 사랑하는 라마르 크 장군’을 말할 때 그들은 박정희를 떠올렸 을지 모른다. 장군의 죽음을 통해 봉기하는 청년학생들이, 그들이 보기엔 박정희와 함께 봉기한 김종필 등의 청년들로 여겨졌을지 모 른다.

물론 이 역시 무리한 상상이다. 기성세대 라고 해서 자신이 살아낸 한국 현대사의 단 면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지는 않다. 가장 높은 가능성은 그들이 영화 속에서 펼쳐내 는 사건들을 한국 사회와 연결짓지 못하리 란 것이다. 영화 를 보는 이들이 철 거민 투쟁이나 용산 참사를 떠올리지는 못 할 것처럼. 다만 영화의 내용을 정치적으로 전유하는 것이 ‘문재인을 지지한 이들’에게만 가능한 일이 아니란 건 분명하다.

장발장은 혁명에 동참했다기보다는 수양 딸의 장래를 위해 한 청년을 구하러 갔을 뿐 이다. 부모들은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일단 자신의 자녀에게 무언가를 물려주려고 한다. 박근혜의 승리도 기성세대가 청년세대를 핍 박하려 했기 때문에 나타난 게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자신과 자녀의 삶을 챙기려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의 총합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야권의 문제는 그러한 ‘자연 스러운 선택’의 과정에 자신들을 ‘선택지’로 제시하는 것에 실패했다는 데 있다.

위안이 필요할 때는 위안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세 판단은 또 별개다. ‘문재인 지지 자’의 처지와 그들이 패배한 이유는 바리케 이드의 학생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대체로 가난한 민중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차마 봉 기할 수 없는 그들을 일부 활동가가 대변하 는 ‘전위’의 시대와,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 하고 그들의 모든 정치적 선택의 총합으로 통치자가 결정되는 민주주의 사회 사이에는 결정적 간극이 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중 인물들에 대한 동일시가 아닌, 우 리 시대에 존재하는 ‘비참한 이들’에 대한 새 로운 관심일 것이다.

한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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