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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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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트윗, 2012 문화 결산, 복고 vs 힐링

등록 2013-01-01 15:49 수정 2020-05-03 04:27

복고로 등장한
세대의 희비극

복고 흐름 타고 대중문화 주류 된 이말삼초…
끝내 “형, 출세했다” 말하지 못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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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란 단순히 돌고 돌아 과거의 어느 자리로 돌아온 상황을 일컫는 말이 될 수 없다. 옛것을 불러내 최첨단 유행을 만들어낸 것은 철저하게 주체의 의지고 당대의 필연적 결과다. 특히 2012년 대중문화를 규정하는 ‘복고’, ‘과거로의 여행’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2012년 한국 사회의 복고는 정확하게 ‘1997년’을 호명해 ‘강남’으로 불러낸 뒤 ‘오빠 스타일’로 소비했다.

1997년에 ‘응답’을 요구한 이들은 세대적으로 균질하다. 그들이 호명하지 않았더라면 그저 서태지 이후의 문화적 하위에 머물고 말았을 H.O.T와 젝스키스 ‘빠’들은 이제 화려했던 1990년대, 그 문화의 시절을 상징하는 어떤 ‘원조’로 떠올랐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엇비슷한 때 에 열광했다. 당대 아이돌 취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배나온 아저씨, 쌍둥이 아빠는 2012년 지구 전체를 씹어 삼킨 가장 잘 노는 ‘오빠’가 됐다.

2012년의 가장 기념비적 대목은 바로 이 복고를 불러낸 집단적 주체의 등장이다. 이말삼초,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베이비들이 바야흐로 대중문화의 전위, 가장 적극적인 소비력을 지닌 집단으로 떠올랐다. 이건 드라마틱하다. 사회적으로 이들은 잉여적 세대였다. 이들을 바라보던 기존의 시선은 ‘얼치기 취급을 받으며 죽기 살기로 살아야 하지만 막상 두려워하는 세대’라는 것이었다. 대유행했던 ‘88만원 세대’가 이들을 비켜 바로 그 뒷세대의 문제에 꽂혔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2012년에 도래한 복고적 흐름은 이제 바야흐로 대중문화의 주류는 우리가 됐음을 선언하는 이말삼초 세대의 선포식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이 세대는 아직 어떤 의미에서도 황금기를 맞지 않았지만, 이른 예감으로 자신들의 황금기가 끝내 도래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의 황금기였던 1997년을 불러내고, 지금 이순간을 즐기는 네가 챔피언이라는 강남 오빠의 가르침에 충실히 복무했다.

더 이상 잘 논다고 할 수 없지만, 이 세대는 분명 놀아봤고 지금 놀고 있는 아이들이 향유하는 거의 모든 원형질을 창조해낸 첫세대이기도 했다. 그나마 앞세대의 조력을 조금 더 받으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지만 앞세대의 성취에는 끝내 이르지 못할 것이다. 이제 서른 줄에 접어들며 본격적인 소비사회의 주류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불안한 세대다. 이들의 꿈은 싸이처럼 “형, 출세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해보는 것인데, 그럴 수 없으니 1997년을 불러내 추억을 향유하고, 그냥 강남 스타일로 집단을 과시했다.

계속될 변화겠지만, 그래서 이 변화의 끝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1990년대 중반 학번 이후의 오빠들이 강남역을 중심으로 한 소비문화와 접속해 끝내 자신들의 첫 소비를 ‘복고’란 이름으로 호명해낸 것은 그 세대의 일원으로 보기에 어떤 ‘정체’의 징후라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들이 지지했던 그이가 정치적으로 패배한 것 역시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김완 기자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인기는 2002년 대중문화의 복고 코드를 대표했다. tvN 제공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인기는 2002년 대중문화의 복고 코드를 대표했다. tvN 제공


힐링 없는
힐링 문화

악한 사회에 대한 직시 없는 힐링…
힐링을 상품으로 파는 자본의 ‘이중-막장’ 착취 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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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마음의 치유가 간절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상처받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처받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 살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 사람을, 세상을 힘들게 만들까? 극심한 경제 양극화, 중산층 붕괴와 장기 불황 사회로의 진입, 비정규직 양산과 치솟는 전셋값, 희망 없는 청년의 삶, 그리고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우울증. 이런 것들이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힐링은 이런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2012년 대표적인 문화 트렌드로 부상했다. 김난도의 책 는 200만 부가 팔렸고, 혜민의 도 올해 서점가를 강타하며 100만 부가 팔렸다. SBS 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연예인들과 사회 유명 인사의 솔직한 마음을 전해준다. 공연계에서는 여기저기서 ‘힐링 콘서트’ ‘힐링 뮤지컬’을 표방하며 관객을 끌어 모으려 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강연, 명상프로그램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사회 유명 인사들이 저마다 힐링 전도사를 자처하며 아픈 청춘, 아픈 서민, 아픈 동물을 치유하겠다고 나섰다.

혜민 스님의 책 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힐링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KBS 화면 갈무리

혜민 스님의 책 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힐링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KBS 화면 갈무리


그러나 이런 문화 유행으로서 힐링이 우리 시대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진정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김난도와 혜민의 책에서는 자신의 관점에서 현실의 아픔을 달래고 이겨내라고 한다. 는 유명 연예인과 인사들의 마음을 치유하려든다. 진솔한 이야기도 있지만, 그마저도 어느 순간 개인적 홍보 수단으로 나쁘게 활용된다. 힐링 영화, 힐링 콘서트, 힐링 뮤지컬은 힐링을 상품 형식으로 판매하는 전형적인 문화 마케팅의 산물이다. 어떤 점에서 힐링이란 문화 트렌드는 기만적이다. 왜냐하면 힐링의 원인을 상품 코드로 전환시켜 아픈 마음을 상품으로 치유받으라고 권유하기 때문이다. 힐링 문화는 힐링이 필요해진 원인을 제거하길 원치 않는다. 원인을 제거할 의지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힐링 문화가 지속되려면 그 원인이 제거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힐링의 문화 트렌드는 역설적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아지길 원한다. 힐링은 그런 점에서 감정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자본의 ‘이중-막장’ 착취 기제다.

우리 시대의 힐링 문화에는 힐링이 없다. 힐링에는 말과 상품만 존재한다. 힐링은 착한 가면을 쓴 비겁한 자들의 선한 유혹이다. 악한 사회의 현실에 대한 대면과 직시 없는 착한 가면은 힐링 없는 힐링으로 만들어버린다. 공정무역이 중산층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의 산물이고, 사회적 기업이 기만적인 비정규직을 정당화하는 기제이듯이, 힐링은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악한 유대인을 이기라는 종교적 정언명령의 문화적 버전에 불과하다. “악한 자들을 그냥 인정하고 너는 꾹 참고 착하게 살아라, 내가 위로할게”라는 힐링은 아마도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를 사는 사이비 선지자들의 명령이 아닐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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