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우탄 취재하러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에 간 적이 있어요. 지구상에 오랑우탄이 사는 곳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과 보르네오섬 단 두 곳뿐이에요. 한참 숲길을 걷다가 최홍만급 덩치의 수컷 오랑우탄과 길 한가운데에서 마주쳤어요. 오랑우탄은 눈빛을 마주치면 거칠게 공격해와요. 중학생 시절 우리 반 싸움짱처럼 말이죠. 어려서부터 눈 내리까는 법을 터득했기에, 조용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어요. 나의 동물적 본능이란!
수마트라섬에는 ‘오랑우탄재단’이라는 곳이 있어요. 이곳은 제인 구달(침팬지 연구), 다이앤 포시(고릴라 연구)와 함께 세계 3대 영장류 학자로 불리는 비루테 갈디카스 박사가 운영해요. 밀렵꾼에게 부모를 잃은 어린 오랑우탄을 구조해 보호활동을 하죠. 모두 다 여성인 세계 3대 영장류 학자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사람은 제인 구달 박사예요. 최근 구달 박사가 한국을 찾았어요. 11월16일 출범을 공식 발표하는 ‘생명다양성재단’이 ‘제인구달연구소’(JGI) 한국지부의 역할도 함께 맡기로 했대요. 지금은 환경운동가로 일하는 구달 박사는 오래전 탄자니아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며, 무리들 사이에서 ‘동족 살해’ 사례를 처음 발견해 충격을 주기도 했죠. 그는 인간처럼 어두운 면을 가진 침팬지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우리 인간을 닮았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요즘 국내에는 구달 박사에게 연구 의뢰를 맡겨야 할 프로젝트가 생겼어요. 아마도 쉽지 않은 도전일지 몰라요. 서울을 거점으로 전국 각지에 흩어져 촘촘히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이 종족은 5년마다 변화무쌍한 태도 변화를 보여요. 우선, 린네의 생물분류표, 종속과목강문계를 따라 나눠봐요. 동물계→척삭동물문→포유강→영장목→사람과→사람속→사람종. 그 밑에 ‘대한민국 검사’라는 종족을 추가해요. 요즘 대한민국 검사는, 같은 영장목인 침팬지와 다르게 ‘동족 보호’인지 ‘동족 살해’인지 구분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거든요. 최근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씨 측근과 유진그룹 등에서 내사·수사 무마 청탁과 함께 8억여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로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받은 김광준(51ㆍ사진) 서울고검 검사를 둘러싼 모습을 보면 그래요. 이 검사님, 여기저기 먹잇감을 부지런히 활용하시긴 했어요. 사업가한테서 명의를 빌려 차명계좌를 만들어 뒤탈을 줄인 뒤 돈을 받고, 비리 정황을 내사하던 유진그룹에서 돈을 받아냈어요.
그런데 더 희한한 건, 검찰의 반응이에요. 맨 처음 경찰이 김 검사의 비리를 포착하고 수사망을 좁혀오자, 김수창 특임검사는 “검사는 의사, 경찰은 간호사”라는 발언을 내뱉으며 이 사건을 검찰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 뒤에는 아예 검찰과 경찰이 한 사건을 따로 수사하는 해괴한 모습까지 보였어요. ‘스폰서 검사’ ‘그랜저 여검사’ 사건을 거치며 그동안 ‘동족 보호’를 위해 애쓰던 검찰에게 갑자기 ‘동족 살해’ 본능이 생겨난 걸까요? 도저히 이해 못할 ‘대한민국 검사’ 조직의 맥락 없는 행동의 원인은 구달 박사가 알지도 몰라요. 그를 위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 연구용 텐트라도 쳐드려야 할까요?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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