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006699"> S:</font> 안녕하십니까. 시간입니다. 이런 세상 기억나십니까?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더니 ‘용모단정만 뽑는다니까’ 하고 문전박대를 합니다. 백화점 의류 매장에 갔더니 ‘손님 사이즈는 시장에 가셔야죠’라고 쫓아냅니다. 결혼정보회사에 사진을 보냈더니 ‘칼 좀 대셔야겠네요’라며 성형외과 전화번호를 줍니다. 불과 3∼4년 전이죠? 우리 사회 외모지상주의를 없애려고 정부가 ‘외모부’를 설치하기 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동안 정말 옥동자가 정우성이 되는 듯한 변화가 있었는데요. 오늘은 초대 외모부 장관을 지냈고, 현재 동반외모위원회를 이끌고 계신 빈현원 위원장님과 말씀을 나눠보겠습니다.
<font color="#991900"> B: </font>반갑습니다. 아무쪼록 살살 다뤄주시기 바랍니다.
잘생겨 누리는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라
<font color="#006699"> S: </font>빈 위원장님께서 처음 외모부 장관으로 발탁될 때 여러 논란이 있었습니다. 외모에 따른 차별을 없애야 하는 자리인데, 장관의 외모가 너무 준수한 것 아니냐 이런 것들이었죠. 청문회에서는 빈 위원장님이 젊은 시절 가리봉 4대 얼짱으로 뽑혔던 과거를 밝혀내기도 했고요. 부인께서도 미스코리아 출신이시지요?
<font color="#991900"> B:</font> 어허, 아직도 오해가 안 풀린 것 같네요. 가리봉에서는 얼굴 크기로 짱을 뽑는 전통이 있습니다. 제가 꽤 대두거든요. 에 또, 저희 안사람은 보좌관이 포털 사이트에 정보를 잘못 전했던 겁니다. 미스코리아가 아니라 미스경북 결선에서 미끄러졌고요. 오징어 아가씨 선발대회에서 입상했지만 외모보다는 그 개인기로다가…. 왜 오징어 타는 흉내 아시죠?
<font color="#006699">S:</font> 그렇군요. 하긴 위원장님이 TV 화면에 나오자마자 논란이 사그라지기는 했습니다. 젊을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아주 후덕하시잖아요. 이마도 볼품없게 벗겨지셨고, 뱃살도 지나치고, 치열도 돌아갔고… 외모 때문에 덕 본다는 인상은 들지 않습니다.
<font color="#991900">B: </font>하하, 과찬의 말씀이지만…,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font color="#006699"> S: </font>외모부 설치 이후 우리 사회가 정말 놀랍게 바뀌었습니다. 예전, 그러니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외모차별지수 최하위를 기록할 때는 국민적 위화감이 굉장했습니다. 키가 작거나 외모가 떨어져서 취업을 못했다는 청년들의 자살이 이어졌고,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성형계를 들었는데 계주가 해외 도주를 해서 두바이의 빌딩을 산 사건도 터졌고요. 심지어 ‘21세기 빨간 마스크’라는 테러 조직도 생겼습니다. 압구정동 성형외과의 시스템을 해킹해 시술자들의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었죠. 코 세우러 갔더니 광대뼈가 히말라야가 되고, 허리살 빼러 갔는데 A컵 가슴이 흔적기관이 되는 사고가 이어졌죠. 정치권도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되겠다며 나서기 시작했고요.
<font color="#991900"> B: </font>그렇습니다. 그때 제가 속해 있던 평등외모당이 총선 공약으로 ‘외모 평등 7정책’을 내걸었죠. 그중 핵심이 ‘미인세’(美人稅) 신설이었습니다. 외모로 덕 보는 사람은 그만큼의 이익을 세금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거죠. 돈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듯이요.
<font color="#006699"> S: </font>반대 의견이 많았습니다. “말도 안 된다. 예쁜 게 죄냐? 남들 한 그릇 먹을 때 반그릇 먹었다. 피땀 흘려 돈 모아 전신 성형했다.” 저희 방송사에서도 여론조사를 했죠. ‘본인이 미남미녀라고 생각하는가? 미인세가 신설되면 불이익을 당할 거 같은가?’ 그렇다고 답한 이가 65.7%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투표를 하고 나니 수치가 정반대로 나왔습니다. 평모당 후보 지지율이 68%에 달했습니다.
<font color="#991900"> B: </font>그게 본심인 거죠. 겉으로는 ‘나 정도면 잘생겼지’ 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잖아요. 정부에서도 어정쩡한 미남미녀들에게 미인세를 걷겠다는 게 아니었고요. 상위 10% 혹은 5%에 해당되는 진짜 미남미녀들이 외모로 누리는 혜택을 사회로 환원하겠다는 거였죠. 부유세는 이중과세의 우려가 있지만, 미모세는 이로 인해 별도의 세금을 내는 게 없습니다.
‘못짱’들에게 기회를<font color="#006699"> S:</font> 상위 5%, 10%로 거르니 아무래도 연예인이 많았죠? 유명 탤런트, 영화배우, 걸그룹이 소속된 기획사에 미인세 납부 통지서가 줄줄이 도달했고요. 아무래도 공인들이라, 대놓고 세금 납부를 거부하지는 못했죠. 결국 ‘국민요정’ ‘국민남동생’이 ‘국민납세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외모를 통해 소득을 올리는 경우는 미인세를 걷는다고 해도, 애초 미모 덕분에 얻게 되는 이익이라는 게 무형의 것이 많지 않습니까? 잘생겼다고 식당에서 창가 좋은 자리를 얻고, 클럽이나 워터파크에 공짜로 들어가고… 그래서 외모부가 미인세와 더불어 미남미녀를 대상으로 한 역차별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font color="#991900"> B: </font>역차별이라기보다는요. 이 사회가 미모를 가진 사람에게 너무 많은 혜택을 주었기 때문에, 그걸 반대로 돌리려 적극적인 정책을 폈다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른바 ‘못짱’ 살리기 정책이죠.
<font color="#006699"> S: </font>못짱이라는 게 ‘얼짱’의 반대말, 예전에는 추남추녀라고 불리던 사람들이죠?
<font color="#991900"> B: </font>네, 그렇습니다. 외모지수 하위 20%의 못짱을 고용하는 사업장, 특히 레스토랑·백화점·항공사 등 대민 접객 부문에 못짱 직원을 채용할 때 세제 혜택을 주었습니다. 미남미녀를 하나도 출연시키지 않는 영화나 TV 프로그램에 지원금을 주었지요. 이 대표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font color="#006699"> S: </font>박지성·류현진 등 스포츠 스타들도 큰 수혜를 보았죠. 예상하신 결과인지 몰라도 이 정책 실시 이후 TV 시청률과 국내 영화 관객 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대신 라디오나 소설처럼 주인공의 외모를 상상할 수 있는 쪽으로 관심이 커졌고요. 아무리 말려도 꽃남꽃녀는 못 끊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미남미녀를 몰래 출연시킨 연극이나 유흥업소가 적발됐고요. 게다가 드라마나 영화의 한류 열풍에 쓰나미급 찬물을 끼얹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대폭 줄었고요.
<font color="#991900"> B: </font>어떤 정책이든 약간의 부작용은 있죠. 그래서 저희 동반외모위원회는 정부가 강제할 수 없는 민간 차원의 외모지상주의 타파 운동을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이미 교과서에 신윤복의 나 보티첼리의 처럼 외모에 대한 편견을 더할 작품을 싣지 못하게 했고요. 여러 대학에서 못짱 학생들을 홍보 대사에 임명하는 등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font color="#006699"> S: </font>외모부는 제2기를 맞아, 더욱 혁명적인 정책을 실시하려 한다는데요.
<font color="#991900"> B: </font>현재 정부와 여당이 협의 중인데요. 조만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미인등급제가 실시될 것입니다.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주민센터에서 사진을 찍지 않습니까? 그때 저희 동반외모위원회가 개발 중인 ‘3D 미모도 측정기’로 전신을 스캔합니다. 그래서 키·체형·얼굴 등에 따라 미모 급수를 나누는 것이죠. 총 7단계 중에서 2급 이상의 미인으로 지정되면 세제 등 불이익을 얻게 되고, 6급 이하면 공공시설 무료 주차 등 혜택이 주어집니다.
미모등급제 실시, 역성형 붐 일기도
<font color="#006699"> S: </font>그렇다면 등급을 낮추려 애쓰지 않겠습니까? 일주일 동안 머리를 안 감는다든지, 보철기를 끼고 나타난다든지, 여드름을 일부러 폭발시키는 등 진풍경이 연출될 것 같은데요.
<font color="#991900"> B: </font>하하, 그 정도로 감춰질 것 같으면 진짜 미인이 아닌 겁니다. 어떤 수를 써도 감출 수 없는 미모는 돼야 2급 이상이 될 겁니다.
<font color="#006699"> S: </font>미인세에 이은 미인등급제. 이것이 오히려 외모중심주의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우려되는군요. 벌써부터 미남미녀를 평범한 외모로 바꾸는 역성형이 붐을 일으키고 있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몇 등급의 미인으로 분류될까요? 미인세가 두려우십니까?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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