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008ABD">이명박 대통령의 ‘오기 인사’를 보며</font> 문득 시드 마이어의 를 생각한다. 강한 중독성으로 유명한 는 한번 빠지면 모든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을 포기할 정도로 몰입하게 된다 하여 “▶◀문명하셨습니다”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냈다. 의 두 번째 유행어는 “순순히 ~하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이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를 선택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문명을 개척한다는 의 이야기 구조 탓에, 인도의 지도자이자 비폭력 평화주의자 마하트마 간디는 종종 세계적인 악질 깡패로 나타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바로 이 대사. “순순히 옥수수를 금으로 교환해주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말이 안 되는 협상 요구인데다 ‘간디=비폭력’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 초보 유저의 경우 간디의 요구를 무시하기 십상이다. 그러면 대가가 아주 참혹하다. ‘패왕 간디’ 혹은 ‘정복왕 간디’는 인도의 핵폭탄으로 상대 유저의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기 일쑤다.
핵무기를 등에 업고 ‘협상’이라는 이름으로 ‘협박’해오는 패왕 간디의 요구를 수용하면 멸망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간디에게 다이아몬드 5개를 넘기고 달랑 옥수수 1개를 받아왔다는 눈물의 증언이 줄을 잇고 있다. 그리하여 간디가 만들어낸 유행어 “순순히 옥수수를 금으로 교환해주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은 곧 ‘금을 내놓지 않으면 당신 입안의 옥수수를 털어버리겠다’는 말로 통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에서 등장하는 극강 캐릭터 간디는 비폭력주의자가 아니라 ‘Be폭력주의자’라는 말도 있다.
<font color="#008ABD">10월29일치 1면에</font> 민동석 외교통상부 제2차관의 늠름한 사진이 실렸다. “‘오기 인사’ 첫 출근”이라는 사진 설명도 함께 붙어 있다. 2008년 4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이끌며 검역주권 포기 등 굴욕적인 협상을 한 사실이 드러나 물러난 인사를 다시 기용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오기’라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의 이번 인사를 버전으로 해석하면, 사진 설명 자리에는 “순순히 차관 자리를 내놓으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문장이 적절하다. 사실 이 대통령이나 민 차관도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에서는 간디가 패왕의 지위를 갖고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2008년까지 ‘패왕 부시’가 있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협상장에서 패왕 부시 쪽에서는 이런 요구를 해오지 않았을까. “순순히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를 쏘나타와 교환해주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font color="#008ABD">문명의 손이 닿지 않는 DMZ를 다시 생각한다.</font> DMZ는 흔히 비무장지대를 가리키지만, 종종 ‘단무지’(단순·무식·지×)의 줄임말로도 통한다. 군이 통제하는 DMZ는 문명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다. 국방부 단무지도 가끔 DMZ에 갇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문명과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이는데,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경제학 서적 등 23권의 책을 북한 찬양·반정부·반미 서적으로 분류해 군내 반입을 금지한 것이 국방부 단무지의 대표적 업적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헌법재판소마저 과 는 괜찮고 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국방부의 손을 들어준 것인데, 한 가지 부러운 것은 이제 곧 의 판매부수가 또 한 번 급격히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사실이다. 2008년 7월 국방부가 등 금서 목록을 각 부대에 내려보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침체에 빠진 출판계는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던 것이다. 따라서 은 국방부에 아래의 내용을 비공식적으로 요구한다. “순순히 대신 을 금서 목록에 올려주면,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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