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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여, 도대체 어디로 가시나이까

등록 2010-10-22 14:24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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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지저스!

10월14일 취업 희망자를 향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예수님 말씀을 닮았다. 대기업에 들어가면 한 부분의 일만 배우지만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일을 많이 배울 수 있으니 오히려 더 큰 기회가 된다는 말씀이었다. ‘네 친구의 대기업 취업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MB십계’에 들어갈 만한 말이다. 야근수당 없는 철야근무를 월·화·수·목·금금금 해봐야 업무 파악도 빨라지고, 사무직이라도 옥장판 100개 정도는 팔 수 있어야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제아무리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 근무하는 친구라 해도 내가 3명의 회원만 모집하면 그 3명이 다시 각각 3명을 모으고 각각의 3명 아래에 또다시 3명씩 붙어서 수당이 수당을 부르는, 최첨단 네트워크 마케팅 시스템을 따라오지는 못할 것이다. 대기업 친구가 대리·과장에 머물 때, 이 대통령이 강조한 ‘적극적 사고’ ‘도전정신’만 있으면 당신도 ‘골드’가 되고 ‘다이아몬드’도 되고 ‘플래티넘’을 넘어 피라미드의 최고봉에 오를 수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문구지만 어쨌든 그분의 말씀은 언제나 틀리는 법이 없다. 뜨거운 사막에서 옥장판을 팔 수 있다는 적극적 사고만 있다면 당신은 이미 국민성공시대의 주인공! 우후훗!

MB십계가 있다면

이 대통령이 이날 남긴 또 다른 말씀 “남의 탓만 하는 사람, 성공 못한다”도 마땅히 반영해야 한다. 자신이 일자리를 못 구했다 해서 ‘나라(정부)는 뭐하나’ ‘학교는 뭐하나’ ‘우리 부모는 뭐하나’ 등 남의 탓을 하려면 끝없이 할 수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취지였다. 따라서 MB십계 두 번째는 ‘취업 실패는 내 탓이오’가 되시겠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합리적 비판’이고 어디까지가 쓸데없는 ‘남의 탓’일까. 사무실에서 종종 벌어지는, 또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실화를 통해 가려보자. 편의점에서 사온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요구르트를 먹고 설사를 했을 경우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상품이었다면 당연히 편의점 주인에게 따질 수 있다. 반면 앞사람 자리에 놓인 요구르트를 몰래 훔쳐먹다 설사를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날짜가 지난 줄도 모르고 남의 요구르트를 탐한 이 죽일 놈의 식성을 탓하는 게 옳지, 요구르트 절도범을 색출하기 위해 상한 요구르트 떡밥을 던져놓은 사람을 탓한다 해서 설사가 멈추진 않는다.

‘귀신은 뭐하나.’

MB십계를 전해들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춘남녀라면 ‘귀신 탓’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임기 초 지지층 결집을 위해 ‘남의 탓’을 핵심 국정철학으로 추진한 정부가 MB 정부였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 직후였다. 미국산 쇠고기를 월령 제한 없이 수입하기로 결정해 촛불의 분노를 부른 이명박 대통령은 열기가 잦아들자 ‘참여정부 설거지론’을 제기했다. 이 대통령이 직접 종교계 지도자를 만나 “그때 (노무현 정부) 처리했으면 이런 말썽이 안 났지”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이동관 당시 청와대 대변인과 한나라당 핵심 인사들은 좀더 노골적으로 한-미 쇠고기 협상의 ‘참여정부 설거지론’을 주장했다. ‘설거지’ 표현은 직접 거론한 게 아니므로 ‘떨거지’의 말실수라고 축소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취임 직후

청와대에 들어간 뒤 열흘간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한 사례를 간증하며 참여정부의 인수인계 소홀을 탓한 사람은 누구인가.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끌어들인 사람이 누구였나. 비밀번호를 몰라 사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됐지만 어쨌든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둔다. “남의 탓만 하는 사람, 성공 못한다”는 발언을 전하는 기사에는 벌써 그의 말씀을 좇아 “남의 탓만 하는 정부, 성공 못한다”는 말이 나오나니, 오 쿠오바디스! 도대체 당신은 어디로 가시나이까.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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