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되려면 ‘불어’에 능해야 한다. 아, 물론 지금 그렇다는 소리가 아니라 과거에 그랬다는 이야기다. 정권으로부터 ‘물어’ 사인이 떨어지면 경찰은 용맹하게 달렸다. 그러니까 그때는 칠성판, 통닭구이, 관절 뽑기, 볼펜 고문이 흔한 시절이었다. 당연히 ‘불어’ 한마디면 수사는 거기서 끝이었다. 칠성판 위에 서면 “간첩 맞잖아. 당장 불어!”라는 경찰의 호통을 이겨낼 사람은 많지 않았다. ‘주뗌므’ ‘뚜레주르’는 몰라도 경찰이라면 다들 ‘불어’는 입에 달고 살던 시절이었다. 민주화 이후 경찰의 ‘불어’는 위력을 잃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에 대한 민주노동당 가입 여부 수사를 보면 알 수 있다. 교사와 공무원의 민노당 가입이 전두환 정권 때 대학생의 조선노동당 입당만큼이나 ‘엄청난 조직사건’이자 ‘심대한 국기문란 범죄’라고 여기는 분들이 있어, 경찰 수사는 탄력을 받았다. 교사와 공무원을 앉혀놓고 열심히 ‘불어’를 떠들었다. 하지만 칠성판 없는 ‘불어’는 통하지 않았고, 관절 하나 마음대로 못 뽑는 세상에서 ‘불어’는 그냥 제2외국어였다.
경찰은 대신 새로운 수사 기법을 도입했으니, 그건 바로 ‘졸라’였다. 교사와 공무원이 ‘불어’를 못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답답하게 여긴 경찰은 ‘졸라’를 외쳤다. “아, 당신 민노당 가입한 사실이 있잖아, 졸라!” 이것은 시작이었다. 교사와 공무원의 묵비권에 막힌 경찰은 검찰의 힘을 빌려 법원을 ‘졸라’ 압박했다. 우선 민노당 투표 사이트와 웹사이트 서버를 보게 해달라고 했다. 비밀투표 원칙과 정당 활동 보호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지만 교사와 공무원의 정당 가입, 특히 민노당 가입은 ‘심대한 국기문란 범죄’라고 믿는 검경은 일단 졸랐다. 8차례나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며 법원을 ‘졸라’댔던 검경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으로 검경은 민노당의 CMS 당비계좌의 입출금 명세 ‘전체’를 보게 해달라고 졸랐다. 법원은 이 역시 입금 명세 조사는 수사 대상자 293명의 것에 한정하라며 영장을 부분적으로 기각했다. 법원을 통해 교단과 공직 사회에 ‘암약’하고 있는 민노당 ‘세포’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경찰은 선관위를 ‘졸라’대기 시작했다. 선관위에 민노당 당원명부를 조사해달라고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중요한 건 ‘영장도 없이’ ‘졸라’댔다는 사실이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바람아 불어다오, 졸라!”를 외치는 형국이었다. 선관위 대답은 당연히 ‘노’였다. 영장도 없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졸라’대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물론 아직도 ‘불어’를 ‘졸라’ 외쳐대는 경찰과 검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건 이들 탓만은 아니다. ‘일부러’ 사건을 키워주는 와 가 있기 때문이다. 민노당에 가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교사와 공무원이 ‘왜 불어’ 전술을 구사하자 는 기자 칼럼을 통해 ‘불어’를 외쳤다. 칼럼은 1970~80년대 국가보안법 위반 및 집회·시위 사범은 자신이 한 일에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었지만, 최근 공안사범은 자신이 한 일을 부인하거나 아예 입을 다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공안검사’ 출신 검찰 고위간부의 말을 소개했다. 전교조와 전공노 조합원의 민노당 당원 가입 수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해당 기자는 “수사 대상자들은 경찰이 당원으로 가입해 당비를 낸 사실까지 확인했는데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썼다. 그런데 기자는 1970~80년대 공안검사가 뭐하는 사람들이었는지, 묵비권이 왜 피의자의 당연한 권리인지 모르는 건가? 졸라!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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