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부글부글] 배트맨과 견마 혈서

등록 2009-11-10 11:41 수정 2020-05-03 04:25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소위에 임관하기 직전인 1944년 6월 말, ‘견습 사관’으로 있을 때의 모습.  자료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소위에 임관하기 직전인 1944년 6월 말, ‘견습 사관’으로 있을 때의 모습. 자료사진

배트맨의 실제 모델은 박정희다. 방금 만들어본 이 가설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우선 영화 을 잠시 다시 보자. 사람들은 배트맨을 의 보안관쯤으로 기억하지만, 영화를 띄엄띄엄 봐서 그렇다. 자세히 보면 배트맨만큼 이중적 캐릭터도 없다. 밤에는 짐짓 슈퍼히어로인 체하며 온갖 폼을 다 잡지만, 맨얼굴의 배트맨은 언제나 쭉쭉빵빵 여자를 옆에 끼고 파티를 일삼는 속물이다. 침대 친화형 캐릭터라는 점에 착안해 ‘베드맨’(bedman)으로 불릴 법도 하다. 사람들이 배트맨의 업적으로 떠올리는 ‘친서민’ 이미지도 허구다. 영화 속 배트맨의 활약을 꼼꼼히 살피면 배트맨만큼 대책 없는 캐릭터도 없다. 한 번 출동할 때마다 악당을 잡겠다며 온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 장면에서는 입이 딱 벌어진다. 도대체 그 뒤치다꺼리는 누구의 몫인가. 배트맨이 파괴한 건물과 도로는 결국 시민의 ‘혈세’로 보수해야 하는 것 아니던가. 배트맨은 영락없는 나쁜 남자 ‘배드맨’(badman)이다.

‘베드맨’과 ‘배드맨’의 속성이 공존하는 캐릭터라는 측면에서 배트맨과 ‘박통’은 판박이다. (박통의 눈부신 여성 편력과 인혁당 사건 등은 따로 이야기하지 않겠다.) 두 번째 공통점은 두 사람의 뿌리다. 영화 속 배트맨은 이렇게 ‘커밍아웃’한다. “아임 브루스 왜인.” 여기서 배트맨의 출생의 비밀이 하나 드러난다. 그는 다름 아닌 ‘왜인’(일본인)이었던 것이다. 박통은 어떤가. 그냥 다음의 편지를 보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중략) 멸사봉공,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박통이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 군관으로 지원하기 위해 썼다는 혈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부분은 ‘견마’다. 견마란 곧 개와 말을 가리킨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적대적 관계였던 일제 괴뢰국 군관이 되기 위해 ‘일본인’을 자처한 것도 모자라 아예 ‘개나 말’이 되기를 서슴지 않은 사람이 박통이었던 것이다. 어이없다 못해 ‘박통 터지는’ 소리로 들리는 이야기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뭐, 그렇다고 ‘박통 까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견마 박정희’ 기사를 보며 안 돌아가는 ‘박통’을 굴려봤을 뿐이다.

다시 ‘떡값’을 생각한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봉투에 돈을 넣어 기자들에게 돌렸다. 50만원씩 8명에게, 모두 400만원을 돌렸다. 봉투에는 ‘격려’라는 두 글자를 적어넣었다. 이 돈은 검찰총장이 수사팀이나 내부 직원을 격려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특수활동비의 일부로 알려졌다. 특수활동비는 영수증 처리가 필요 없는 예산 항목이다. 검찰총장이 언제부터 출입기자를 ‘내부 직원’으로 생각했는지, 검찰총장의 뇌 구조를 파악할 길은 없다. 만약 출입기자 신분이 검찰 내부 직원이 아니라면 검찰총장이 검찰 예산, 즉 국민의 세금을 엉뚱한 곳에 썼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떡값’이 ‘뇌물’이냐 ‘선물’이냐 하는 대목도 설명돼야 한다. 뇌물과 선물을 구별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언론에 보도됐을 때 문제가 될 것으로 판단되면 뇌물이다. 직책을 옮길 경우 줄어들 것으로 판단되면 뇌물이다. 받고 잠이 오지 않으면 뇌물이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건넨 ‘떡값’은 이 세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 자, 검찰은 돈 세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미수에 그친) 검찰총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밝혀줄 것!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