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부터 웬 꼬부랑말을 턱 제목으로 내놓는가라는 생각이 드실지 모르겠다. 정초부터 상황이 황당해 그렇다. 클렙토크라시(kleptocracy)란 ‘강도’(klepto)들의 ‘정치’(kratein)라는 그리스어 조어다. 번역을 해놓으면 너무 어감이 센 듯해 그냥 발음 그대로 적어놓는다. 국가 권력을 장악한 이들이 정치적 과정을 자기들 뜻대로 이용해 자신들과 자신들의 동류들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 국가 재산을 마음대로 ‘털어’가는 상태를 말한다. 자연 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 등의 나라에서 나타나는 형태로 많이 알려져 있다. 정권을 잡은 자들은 마땅히 나라 전체의 부로 여기고 관리해야 할 광산이나 여타 자원들을 마치 자신들의 개인 재산인 양 전용하기도 한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관련된 정치적·법적 절차를 거침없이 밟아나간다. 그들이 장악한 국가이니까.
숱한 공청회와 토론으로 만든 현행 방송법
정부·여당은 백 몇 개의 법안을 한꺼번에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대부분 공청회 등의 의견 수렴이나 토론도 제대로 거치지 않아 여당 의원들조차 법안 내용도 제대로 모르고 서명한 것들이 많다고 한다. 이 숱한 문제들 중에서 단 두 가지만 생각해보자. 은산(銀産)분리 완화 법안과 재벌 및 신문사의 방송 겸영 허용 법안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은행과 방송은 한국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 국민의 물질적·정신적 안녕에 중대한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 자산의 성격이 강하다. 우리나라는 대단한 광산이나 유전 따위를 가진 나라도 아니다. 재산이라면 그저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저축을 많이 한다는 것,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소통망이 굵고 빽빽해 지식 집약적 가치 창출이 용이하다는 것 정도다. 그래서 은행과 방송은 한국 경제의 부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리고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는 이 두 가지 자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가에 크게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국회의사당은 쑥밭이 되었다. 전기톱과 가스분사기가 동원되는 등 일대 공사판 같은 모습이 되었다가 얼마 전까지는 여러 국회의원들의 합숙소의 형국이 됐다. 이러한 난리가 벌어지는 이유 중 중요한 것이 몇몇 재벌 기업들과 정부·여당에 우호적인 신문사들에 은행과 방송사를 넘겨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은행과 대재벌의 소유·경영 분리라는 원칙은 거의 전세계 모든 나라의 금융 체제에서 교과서적인 상식이 돼 있는 원리다. 신문사나 재벌 기업이 방송업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현행 방송법은 600번이 넘는 공청회와 무수한 토론을 거쳐 어렵게 완성된 체제다. 그런데 이것들에 대해 그 숱한 반대와 반론을 무릅쓰고 그저 국회의 머릿수 우위 하나만을 내세워 법을 바꿔버리겠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권을 장악한 이들이 자기에게 우호적인 세력들에게 은행과 방송을 넘기겠다는 몸부림 이외의 무엇인가. ‘클렙토크라시’라는 이름 말고 현재 정권의 작태를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무엇인가.
도대체 어떤 경로로 나라가 풍요로워지나이러한 생각이 지나친 논리 비약이라고 주장할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은산분리 완화와 방송 겸영 허용이 어떻게 해서 단지 소수 재벌들과 신문사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장기적 이익에 합당한지를 밝히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밝힌 논리라는 것은 단 하나뿐이니, 그것이 더 많은 경제적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경제 논리’다. 재벌이 은행을 소유했을 때 그것이 어째서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나라를 풍요롭게 한다는 것인가. 재벌 기업들과 신문사들이 방송사를 소유·경영하게 되면 도대체 어떻게 해서 나라가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된다는 것인가. 그 흔한 숫자 제시조차 없다. 그저 자신들의 말을 따르면 경제가 살아나게 돼 있다는 억측뿐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뛰어난 저서 의 14장을 보면 아프리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클렙토크라시의 특징들이 나온다. 몇 가지만 보자면, 첫째 특정한 이념과 종교 등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획일화하려 든다. 둘째, 정치적 절차는 형식과 껍데기만 남고 지배자들의 의사가 일사천리로 관철된다. 셋째, 일체의 반항에 대한 폭력적 진압과 공포 분위기 조성이 이뤄진다. 역사 교과서를 바꾸고, 백골단을 부활시키고, 백 몇 개 법안의 일사천리 날치기가 이뤄지려는 가운데에 방송사와 은행은 특수 집단들에 넘어가기 직전이다. 지구온난화가 심해진다고 정치·문화까지 한반도와 아프리카가 동일해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예전에 미처 몰랐던 바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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