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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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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으로 아름다워진 세상

등록 2004-07-16 00:00 수정 2020-05-03 04:23

[풀뿌리 대안운동을 찾아서]

녹색 아시아를 위한 만원계, 환경 재앙으로 고통받는 아시아인들과 야생동물을 돕다

▣ 글 · 사진 김타균/ 녹색연합 국장 greenpower@greenkorea.org

환경 재앙으로 고통받는 아시아인들과 멸종 위기에 놓인 야생동물을 위해 곗돈을 붓는 이들이 있다. 다달이 1만원씩 기부하는 시민들이 모여 만든 ‘녹색 아시아를 위한 만원계’(이하 녹색만원계·www.greenkorea.org/greenasia)가 그것이다. 현재 녹색만원계는 ‘인도 보팔 사고 희생자들을 돕는 만원계’ ‘네팔 낭기마을을 돕는 만원계’ ‘멸종 위기 아무르 표범 보호를 위한 만원계’ ‘필리핀 수빅·클라크 만원계’ ‘멸종 위기 귀신고래 보호를 위한 만원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밖에도 ‘인도네시아의 멸종 위기에 처한 오랑우탄을 돕기 위한 모임’과 ‘두만강 유역에 있는 조선족 학교의 환경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만원계’가 제안돼 아시아 6개국 7개 지역에 걸쳐 있다. 녹색만원계 홈페이지에 가면 곗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지원받는 아시아인들의 반응은 어떤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주제 정하고 계원 10명이면 가능

7월8일 저녁 서울 대학로의 한 식당에서 녹색만원계에 참여하는 계주들의 첫 모임이 열렸다. 모임이 시작되자마자 ‘아무르 표범계’ 계주인 김동현(41)씨가 명함과 스티커를 돌린다. 함께 참여한 계주들의 부러움과 격려가 이어지고, 이내 다른 만원계의 상황을 묻는 등 질문이 쏟아졌다. “한달에 1만원씩 내는 것 말고 별도의 수익사업을 하세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는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으세요?”…. 계주들의 가장 큰 바람은 ‘계원’들을 좀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발적으로 명함과 스티커를 만들고 홍보용 티셔츠까지 제작하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벼룩시장에 참여하는 등 거리홍보 활동도 계획 중이다.

녹색만원계에 참여하려면 먼저 계원 10명을 조직해야 한다. 지역이나 주제는 계원들과 자율적으로 정한다. 구체적인 연대 대상을 찾기가 막막할 때는 국제연대 활동가나 현지 활동가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할 수 있다. 물론 개인 자격으로 이미 존재하는 계에 가입해도 된다. 또 주제는 있지만 10명이 모이지 않았을 때는 일단 녹색만원계에 주제를 올려놓고 함께할 이들을 모으면 된다.

10명이 모은 10만원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에 대한 대답을 ‘낭기마을계’ 계주인 작가 심산(43)씨가 들려줬다. 매달 2500원이면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한 네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고, 매달 1만2천원이면 한 학생에게 1년 동안 필요한 교과서·교재·악기를 줄 수 있고, 매달 17만원이면 봉급 없이 일하는 교사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다고 한다. 필리핀 수빅·클락 만원계의 계주를 맡고 있는 박경화씨는 “해당 국가의 시민사회 활동가들에 주는 도움도 상당하다”며 “10만원이면 지역운동가의 활동비나 단체 유지비, 소나 다른 가축을 살 수 있는 종자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에 ‘녹색 희망’을 심는 계원은 모두 132명으로, 이들은 지금까지 650여만원의 기금을 모았다.

성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네팔 중서부 히말라야 산기슭 700여명의 주민이 사는 ‘낭기마을’을 돕는 낭기마을계가 대표적이다. 두번 보낸 곗돈은 마을 탁아소를 수리하고 동네 우물을 파는 데 쓰였다. 6월4일부터 탁아소에서는 다시 수업이 시작됐다.

‘아무르 표범계’는 개발과 밀렵으로 현재 30여 마리도 채 남지 않은 아무르 표범을 멸종 위기에서 구하는 모임이다. 한국 표범의 ‘고모’뻘인 아무르 표범은 러시아 극동지역과 중국 경계 지역에 30여 마리만 살고 있다. 계주 김동현(42)씨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살려 아무르 표범 보호 포스터를 만드는 등 ‘녹색만원계 폐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들이 모은 기금은 러시아 극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Tigris foundation’에 지원돼 밀렵방지 활동에 쓰인다.

필리핀 수빅·클라크 미군기지 만원계는 미군이 떠나면서 방치한 오염물질에 노출돼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모임이다. 한국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은 주제여서 이들과의 연대는 더욱 절실하다. 계주 박경화씨는 “피해자들은 대부분 약 한번, 치료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다”며 “우리보다 먼저 아픈 희생을 치른 그들이 일러준 경고는 우리에게 값비싼 교훈이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 초 한국에서 모아 보낸 옷가지로 현지에서 바자회가 열려 그 수익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대안무역’ 방식도 고민

녹색만원계는 구호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그래서 ‘자선’보다 ‘경제적 자립’을 도울 방안을 찾는다. 자칫 곗돈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계주들은 현지 공예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판 뒤 그 수익금을 해당 지역에 돌려주는 ‘대안무역’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보팔만원계는 ‘인도 보팔 사고 희생자들’ 대표로부터 “보팔 여성들이 만든 공예품을 사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고, 표범계는 현지 주민의 안정적 생계 확보를 위해 표범 서식지의 임산물 직거래를 모색하고 있다.

녹색만원계를 처음 제안한 이유진 녹색연합 간사는 “미군기지 환경오염 문제를 다루면서 국제회의에 여러 번 참석했지만, 회의에 드는 비용과 시간에 비해 실질적인 결과가 초라한 게 늘 안타까웠다”며 “실천적인 활동과 연계되지 않으면 국제회의에서 얻은 깨달음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또 “현재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성폭력, 욕설, 구타, 임금체불 등에서 ‘최고’인 해외 한국 기업과 한국인들은 아시아 민중들의 증오와 원성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녹색만원계가 어쩌면 화해와 희망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유와 실천, 연대의 정신을 소박한 커뮤니티를 통해 이뤄가는 녹색만원계는 앞으로 학교 동아리, 아파트 부녀회, 기업 내 동호회 등 다양한 단위로 퍼져나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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