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 대북 붕괴유도 작전계획 실행에 나서… 일상적 전쟁에 골몰하는 네오콘을 누가 막을 건가
“그곳에는 대북 관계개선 로드맵은 없었지만, 대북 붕괴유도 시나리오는 넘쳐나더라.” 설 연휴를 앞두고 워싱턴의 대북정책 결정자들을 두루 만나고 돌아온 정부의 한 관계자는 심상치 않은 워싱턴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꺼림칙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 내부에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하는 데 필요한 보상책을 입에 담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어떻게 하면 북한을 효과적으로 압박하고 고사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관료들은 많았다는 전언이었다. 정작 이 정부 관계자가 전하는 섬뜩한 내용은 따로 있었다. ‘작전계획 5030’에 담긴 내용과 흡사한 대북 강경정책의 유용성을 거론하는 관계자들이 있다는 얘기였다.
섬뜩한 전쟁 시나리오 ‘작전계획 5030’
미 언론을 통해 처음 알려진 ‘작전계획 5030’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미군 사령관들에게 북한의 한정된 자원을 고갈시키고, 북한 군부를 긴장시키는 작전수행권을 부여하고 있다. 가령 RC-135 미 정찰기를 북한 영공에 바짝 다가가도록 비행시킴으로써 북한의 잦은 대응 출격을 유도해 연료를 고갈시킨다. 수시로 기습 군사훈련을 해 북한군을 장기간 벙커에 몰아넣어 군비물자를 다 써서 없어지게 만든다. 더불어 군 내부 갈등을 부추기고, 군부가 김정일 등 지도부에 반기를 들도록 혼란을 유도하는 작전도 포함돼 있다.
2003년 초·중반 북한의 핵 폐연료봉 재처리 완료 주장으로 북핵 위기가 고조된 때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지시로 만든 새 작전계획 초안은 전쟁을 촉발할 정도로 매우 공격적이라는 점에서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일부 미 행정부 관료와 군사전문가들은 “북한 군부가 RC-135 정찰기를 먼저 격추하거나, 남한에 포격을 날리면 어떻게 되느냐”고 반문한 바 있다. 실제 지난해 3월2일 북한 전투기가 공해상에서 미 정찰기를 20분간이나 따라붙어 일촉즉발의 긴장이 불거진 적이 있다.
이런 위험천만한 ‘작전계획 5030’이 승인되었는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 작전계획의 상당 부분은 이미 실천에 옮겨지고 있는 듯하다.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제거할 때처럼 전격적으로 군사공격을 감행하지는 않지만, 군사적 봉쇄와 압력을 지속적으로 가하면서 긴장을 초래해 취약한 북한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소진시키고, 북한의 내부 붕괴를 유도하자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부시 대통령이 1월20일 발표한 새해 국정연설에서 북한과 이란 등을 겨냥해 “다른 위협들은 다른 전략들을 요구한다”고 압축적으로 밝힌 대목이 눈길을 끈다.
사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북한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전략은 서서히 진행돼왔다. 특히 ‘작전계획 5030’에 언급된 RC-135 정찰기의 한반도 주변 배치와 근접 비행시간도 크게 늘어났다. 부시 행정부는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진 뒤 2003년 2월 RC-135 전략정찰기 3대를 가데나 기지 주둔 미 공군 제390 정보중대에 배속시킨 데 이어 공중조기경보통제기(E-3), U-2 고공전략정찰기를, 최근에는 EP-3, WC-135W 등 전자 및 특수정찰기를 더 배치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월19일 을 통해 “최근 2년 동안 (일본) 가데나 주둔 미 공군은 우리나라와 주변 지역에 대한 정탐을 노리고 각종 정찰기들의 출격률을 늘렸다”며 “특히 지난해 1월 우리나라가 핵무기전파방지조약(NPT)에서의 탈퇴를 선포한 후부터는 주로 대낮에 출동하던 가데나 기지 안의 정찰기들이 하루 24시간 이어달리기식으로 대조선 공중정탐비행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문은 이어 “이것은 매우 심상치 않은 군사적 조치로서 미국의 대조선 무력침공이 시간 문제가 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군사력 · 경제력 약화를 위한 무력 시위
미군의 전력증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전 테스트를 거친 첨단 무기들이 비무장지대 남쪽에 집중 배치되고 있다. 는 지난해 12월21일치에서 미 육군의 최신형 경장갑차량 ‘스트라이커’(Stryker), 지하시설 파괴 무기인 ‘벙커 버스터’, 무인 공중정찰기 ‘섀도-200’ 등이 지난해 여름 이후 은밀하게 남한 내로 이동 배치돼왔다고 보도했다. 이런 탓인지 북한이 최근 느끼는 전쟁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 보인다. 남쪽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북한은 지금 정권 수립 이후 가장 벗어나기 힘든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 같다”면서 “북한 지도부는 준전시 상태에 준하는 대비를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북한은 올 초부터 ‘정부·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 등을 열어 군부를 앞세운 선군정치를 지지하며, 민족공조로 미국에 맞서자고 거의 절규에 가까운 호소를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는 미국의 점진적인 군사적 압박이 노리는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은 이처럼 시간이 갈수록 초조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으나, 부시 행정부는 느긋하다. 존 루이스 스탠퍼드대 교수와 지그프리드 헤커 로스앨러모스 국립핵연구소 수석연구원 등이 북한 영변 핵시설을 둘러보고 온 뒤 “북한은 핵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연간 약 6kg의 플루토늄을 만드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경고해도 부시 행정부는 애써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는 북한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미국의 민간 핵전문가들을 영변에 불러들인 것도 그간 주장해온 ‘핵 억제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의도가 녹아 있었다. 북핵 문제의 시급성과 조기 해결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자 한 셈이다. 하지만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은 미국 민간 대표단의 방북으로 6자회담에 영향을 주려 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기존 정책에서 궤도를 수정할 뜻이 없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칼럼니스트가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무기를 확산시키기 전에 붕괴하기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고 지적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에 따르면 2002년 여름 “김정일 정권이 조만간 축출될 것”이라는 북한 출신 망명자의 보고서가 부시 행정부 매파들의 손을 거쳐 부시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 이 보고서가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크리스토프는 주장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 내 네오콘들이 북한 붕괴에 집착하는 배경에는 이처럼 북한 관련 ‘정보 편식’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은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하는 탓에 북한이 최근 보이고 있는 긍정적 변화들은 조금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네오콘의 리더인 리처드 펄 미 국방정책위원은 최근 펴낸 에서 “북한과의 어떤 새로운 협정도, 북한은 신뢰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시작되어야 한다”고 강한 불신감을 표시한 바 있다. “김정일은 서명하고 나서 속이며, 속이다 잡히면 패를 내놓지 않고 있다가 또 다른 협정에 서명하고 다시 속인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이는 북한이 리비아 사례를 따라 핵 포기를 선언하고, 사찰을 전격적으로 수용한다 해도 네오콘들이 쉽게 대북 강경정책 고삐의 끈을 늦추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북한이 핵 포기 밝혀도 강경책 유지할 듯
리처드 펄 국방정책위원은 북한을 이 정도면 믿을 수 있겠다는 기준으로 3가지를 제안한다.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모든 핵 물질의 즉각적이고 완전한 포기 △북한 미사일 기지의 폐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팀의 상주 허용과 활동 보장 등이다. 하지만 펄 국방정책위원은 북한이 이런 조건들을 받아들이리라고 보지 않는다. 결국 미국의 선택은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느냐, 아니면 저지하느냐’는 양자택일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부시 대통령의 올 연두 국정연설 속에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은 세계의 가장 위험한 무기들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들이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보유 불용의 뜻을 명확히 밝힌 셈이다.
펄 국방정책위원은 부시 행정부 내 네오콘들의 입장을 대변해 비교적 솔직하게 대북정책의 궁극적 목표를 털어놓고 있다. “수십년간 이어져온 한반도 위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는 북핵 저지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대북 공중·해상 봉쇄와 남한과의 교류 중단 △북한 대포와 단거리 미사일 사정권 밖으로의 주한미군 재배치 가속화 △북핵 시설 선제공격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수립 등을 행정부에 주문하고 있다.
네오콘의 최종 목표는 김정일 정권 붕괴
현재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는 대북정책의 방향과 매우 닮았다는 점에서 놀랍다. 존 볼턴 미 국무차관은 “올해 3월 말까지 핵 문제에서 진전이 보이지 않으면 북한에 대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의 전면 발동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등 강경하게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PSI는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 11개국이 참여해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등을 해상과 공중 그리고 육지를 통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특히 대북 공중·해상 봉쇄를 겨냥하고 있다. 한-미 연합사령부와 유엔군 사령부를 포함해 용산기지 내 미군부대들이 이르면 오는 2007년 말쯤까지 한강 이남으로 모두 이전하기로 한-미간 합의하는 등 주한미군 재배치도 속도를 내고 있다. 북핵 시설 선제공격이라는 군사적 옵션도 부시 행정부의 손을 완전히 떠났다고 믿는 이는 거의 없다. 이는 딕 체니 부통령이 1월24일 다보스포럼에 나가 “테러 척결과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외교적 노력이 여의치 않을 경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무력을 사용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 데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네오콘들이 그들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들이 적지 않다. 특히 한국의 노무현 정부를 설득하는 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핵 개발을 반대한다는 원칙론을 빼면 나머지 방법론에서 일치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다. 노무현 정부는 민감한 시기에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PSI 참여에 주저하고 있다.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중단할 생각은 더더구나 없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로 보아 북한 붕괴 전략에 동참한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마커스 놀런드 미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최근 펴낸 에서 “북한 정권 붕괴로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이 이뤄지면 남한은 향후 10년간 6천억달러 규모의 통일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동·서독 통일과 마찬가지로 남한의 흡수통일은 북한의 빈곤을 크게 줄이지만, 남한의 경제성장 속도를 줄이는 등 정치·경제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북한 회생’ 정책과 충돌
노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 회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새해 업무계획을 통해 “올해 북한은 핵 문제로 인한 위기감에서 체제안전에 주력하면서도 주민생활의 안정과 경제회생을 위한 변화를 지속해나갈 것”이라며 “북한이 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도록 지속적이고 일관된 평화번영 정책을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붕괴전략을 고수하고 있는 네오콘들의 허망한 욕심과는 거리가 먼 셈이다. 결국 네오콘들에게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는 데 최대 난제는 노무현 정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인 것 같다. 펄 국방정책위원은 “현 남한 정부의 최우선 정책은 김정일을 달래는 데 미국과 일본이 동참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한-미간 대북 인식 차이를 인정하면서 “남한은 1962년 쿠바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봉쇄가 전쟁에 대한 최선의 대안’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네오콘 사이의 좁히기 힘든 견해 차이는 앞으로의 험난한 한-미 관계를 잘 보여준다. 북핵 문제는 물론 주한미군 재배치 등 각종 현안을 놓고 회유와 협박 등 네오콘들의 파상적 공세가 집요하게 이어질 수 있음을 예고한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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