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여성 국극 개성 공연 앞둔 홍성덕 단장… “개성공단 성공 비는 굿도 하겠다” </font>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개성이 눈앞에 성큼 다가오면서 ‘서경덕’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렸던 ‘황진이’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황진이는 조선 중종 때 개성에서 빼어난 미모와 출중한 기예로 한 시대를 풍미한 기생의 이름이자, 그의 사랑과 삶을 새롭게 조명한 한국 전통 오페라인 여성 국극의 이름이기도 하다. 30여명의 여성만으로 이뤄진 출연진이 판소리와 춤, 그리고 연기로 버무린 종합무대극으로, 웅장한 무대와 화려한 의상이 대중을 압도하는 걸로 유명하다.
그런 황진이가 이번에는 남북 화해의 가교 역활을 하겠다며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있다. 황진이는 개성공단 시범공단의 착공 시기에 맞춰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땅에서 화려한 부활의 날갯짓을 하기 위해 마지막 몸을 풀고 있는 것이다. “개성 공연 때는 국내에서 굿을 제일 잘하는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려고 해요. 황진이의 영혼을 달래고, 개성공단 사업이 만사형통하기를 바래서죠.”
노벨평화상 수상식 공연 하기도
황진이는 홍성덕(58) 서라벌 국악예술단 단장의 분신과 다름없다. 그는 1993년 한국 여성국극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세계 구석구석을 돌며 해외공연 활동을 벌였으며, 2000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르웨이 노벨평화상 수상식에 초청돼 황진이 공연이 세계 언론인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그는 이제 식을 줄 모르는 정열로 북한 땅에 황진이를 들여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실 그는 이미 북한 공연을 두 차례나 성사시켰다. 2003년 10월 평양 정주영 체육관 개관 기념공연과 2001년 금강산 온정리 문화예술회관 개관 때 황진이를 무대에 올린 것이다. 하지만 홍 단장은 황진이 단독 공연을 성사시키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그래서 그는 황진이의 영혼과 숨결이 그대로 배어 있는 개성 공연에 남다른 기대를 걸고 있는지 모른다. “가능하다면 황진이 묘 앞에서 무속 굿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타깝게도 실제로 황진이 묘소가 개성에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박연폭포에는 황진이의 글이 선명하게 새겨진 바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 ‘동짓달 기나긴 밤을’ ‘산은 옛 산이로되’ ‘어져 내일이여’ 6수는 (靑丘永言)에 전해지고 있다. 기발한 이미지와 세련된 언어 구사 등으로 조선 시조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글들이다.
홍 단장은 국악계에서 ‘여성국극계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여성국극은 창극을 일컫는 말로서, 출연진이 모두 여성들로 이뤄졌으며, 여성이 남장을 하고 출연하며 화려한 의상과 무대가 등장하는 점 등이 큰 매력으로 꼽힌다. 그는 전주 출신으로 강도근·오정숙 명창으로부터 를 사사하고, 1980년 남원 명창대회 판소리부 장원을 수상했다. 그는 1986년 서라벌국악예술단을 창단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축하공연으로 을 무대에 올려 뜨거운 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 뒤 1994년 한국방송 국악대상과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대통령상)을 수상했고,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부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후학 양성에도 남다른 열정을 불살랐다. 2002년 서울 월드컵 때는 과 을 축하공연으로 선보였다. 홍 단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려웠던 야당 시절, 장구와 꽹과리를 직접 가르친 장본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북에 그냥 이상하게 마음 끌려요”
홍 단장이 내내 가장 아꼈던 이는 역시 황진이다. 황진이 공연은 기생 계급과 신분을 뛰어넘는 자유분방한 예술혼과 뛰어난 시 속에 내재한 한국 여인의 한을 현대적 관점에서 휼륭하게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예술인으로는 처음으로 1996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대극장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빛나는 예술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잘 보여준다. 다행히 북한 당국의 황진이에 대한 평가도 남쪽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들린다. 그가 봉건제도에 도전하고, 양반을 골탕먹였으며, 절개를 지킨 지조 있는 여성이었다는 점이 후한 점수를 딴 듯하다.
북쪽과 그의 인연은 지난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이징 희극 극장에서 황진이를 열연하고 있었는데, 북한 관계자가 우연히 황진이 공연을 보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더라고요. 그 뒤 북한 공연을 꼭 성사시키겠다고 결심하게 됐지요. 이때부터 북쪽과의 질긴 인연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토록 북한 공연에 집착하는 걸까. 그는 실향민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북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나도 모르겠어요. 이상하게 마음이 끌려요. 북쪽으로 막 달려가고 싶어요. 북에 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고, 그냥 머물고 싶을 때도 있어요.” 이런 이유 탓으로 북한 관계자들도 그를 보면 “선생님만큼 북에 애정을 가진 남쪽 예술인이 없다”고 말하곤 한단다.
홍 단장은 3월10일 통일문화예술인협회를 출범시키고, 초대 이사장에 추대됐다. “문화예술로 통일에 대한 모든 국민의 합의를 도출하고, 민간 차원의 실천적인 통일운동을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란다. 그는 “앞으로 공연 수익 가운데 상당액을 남북 문화교류 기금과 북한 어린이 예술 꿈나무를 육성하는 데 쓰겠다”고 밝혔다.
그의 북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어릴 적 찢어지게 가난했던 기억과 30대 초반에 장암으로 4여년의 투병 생활을 하며 생사의 갈림길에서 이겨냈던 모진 시련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그의 어머니 역시 유명한 국악인인 김옥진이었다. 홍 단장은 “어머니가 공연장소를 옮겨 다닐 때마다 소달구지를 탔다”면서 매서운 추위 속에서 달구지로 이동하면서도 어머니가 치마를 벗어 자신의 몸을 감싸주던 기억을 아련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유난히 가난한 국악인 후배들의 양성에 정성을 쏟고 전국에 흩어진 농아복지회를 찾아 기금을 수시로 전달해온 배경이기도 하다. 지금도 어려운 시절 그의 도움을 받았던 제자들이 잊지 못하고 전화를 걸어오는 모양이다. “선생님 보고 싶다며 우는 아이들도 있어요. 시집까지 간 어른들이 말이에요, 허 참.”
개성 공연 시작으로 북한 전역 돌기를
그는 그간 꾹꾹 눌러왔던 북과의 묘한 인연도 틀어놓는다. “부모님이 갖은 정성을 들였으나 자식이 안 생겨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대요. 그런데 외삼촌이 어디서 죽은 사람의 영정을 태운 뒤 남은 재를 먹고 부부가 합방을 하면 자식이 생긴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에요. 자식이 없어 고민하는 여동생을 지켜보다 딱했는지 외삼촌이 죽은 사람의 영정을 훔쳐왔어요. 부모님은 그 영정을 태워 먹고 잠자리를 함께했는데, 신기하게도 어머니는 바로 임신을 했고 아이를 낳았는데, 그게 바로 나예요. 그 뒤 외삼촌은 도망을 다녔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한동안 친오빠인 외삼촌을 보지 못한 거죠. 나중에 외삼촌이 이북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를 들었답니다.” 알고 보니 그도 이산가족인 셈이다. 물론 홍 단장은 그 외삼촌이 실제로 북한에 생존해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뛰어난 시·서(書)·가창 재능과 출중한 용모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황진이. 그는 이제 홍 단장을 통해 자신의 못다 푼 한을 풀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홍 단장은 개성 공연을 시작으로 황진이가 북한 전역을 돌며 남북 분단에 따른 묵은 원한과 증오들을 녹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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