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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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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에 ‘민간의 힘’을 보여주다

등록 2005-02-24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95년의 참상에서 시작된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10년…단체들끼리 연대하며 정부와의 협력 강화 </font>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1995년 북한’을 기억하시는가.

북한의 한 시골 재래시장에서 굶주림으로 동물처럼 신음하며 식량을 구걸하던 북한 어린이들의 참상은 아직 뇌리에 선명하다. 중국 국경 두만강 너머로 보이는 북한 마을 뒤 민둥산에는 기아로 죽어간 수많은 아이들과 노인들의 주검을 아무렇게나 묻은 무덤들이 눈덩이처럼 생겨났고, 강물에 그냥 떠내려가는 주검들도 수두룩했다. 95년과 97년 사이 굶어 죽은 주민들만 200만~3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한 북한 정권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쓰러져가는 주민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그 이전에는 식량난을 무던히도 인정하기를 꺼렸으나 북한 당국은 1995년 봄 마침내 국제사회에 공식적인 긴급구호 요청을 했다.

북한 식량난으로 교류 활성화

북한 식량난의 참상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국제구호 단체들은 제한적인 현지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만일 적절한 시기에 국제적인 대규모 식량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북한의 한 세대 전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 모른다”고 섬뜩한 경고를 내놓기도 했다. 올해는 국내외 비정부기구(NGO)들이 북한의 식량난에 따른 긴급구호 활동을 편 지 10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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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난은 역설적으로 당시 꿈쩍도 하지 않던 남북 관계를 한 발짝 진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선 대북 식량지원을 계기로 남북한 사이의 접촉면은 크게 넓어졌다. 대북지원 관계자들의 방북 인원은 1998년 34명에 머물렀으나 2003년에는 1670명으로 불어났다. 대북지원 NGO 활동은 남북 교류의 확대뿐 아니라 내실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기범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사무총장은 “특히 민간이 대북지원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분단 이후 처음으로 시민사회가 남북한 관계에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이 공식적으로 열렸다”며 “대북지원을 계기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사회 활동은 재야의 정치운동 일변도에서 벗어나 시민사회 운동의 성격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의 신호탄이었던 1998년 3월의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활성화 조치’는 이런 변화의 지렛대로 끼어든다. 기존 이념을 지향하는 운동에 견줘 훨씬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들의 참여가 대북지원이라는 구체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뛰어든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대북지원 단체들은 이때부터 직접 북한을 방문해 사업을 협의하고 진행하게 되면서 ‘대북지원 NGO’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시민사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통일운동으로서 정당성과 대중성을 얻게 된다.

대북 구호를 매개로 한 민간교류는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급물살을 탄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심각한 역풍에도 맞닥뜨린다. 북한에 대한 지원과 협력을 둘러싼 이른바 ‘퍼주기 논란’이 대북지원 분위기를 급속하게 냉각시킨 셈이다. 이런 정세의 변화와 더불어 국내 경제의 추락은 더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에만 기댈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적잖은 대북지원 단체들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스러져갔다.

2004년 정부와 손잡고 민관협 결성

그러면서 민간단체들이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 나타난 현상이 민간단체끼리 뭉치고 정부와의 협력을 강화해나간 것이다. 1999년에는 효과적인 대북지원을 위해 ‘대북협력 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가 꾸려졌고, 현재 34개 민간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같은 해 10월21일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 사업 처리에 관한 규정을 마련해 이를 근거로 민간단체들에게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에 대해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해주었다. 이는 물론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사업의 효율성을 나름대로 인정하고, 민간의 대북지원이 안정적으로 지속되도록 도와주기 위한 조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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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지원 NGO들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결정적 사례는 2004년 4월에 열차 폭발사고로 발생한 용천 재해에 정부와 별도로 ‘용천돕기추진본부’를 결성해 신속하게 대처한 것이다. 이때 지원 규모는 280억여원에 이르렀고, ‘용천소학교건립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을 벌였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2004년부터는 정부가 단순 측면 지원 역할에서 벗어나 민간단체와 손잡고 직접 대북지원에 발벗고 나서기 시작한다. 바로 용천역 폭발사고 때 민간단체들과 팀워크를 맞췄던 경험을 계기로 ‘대북지원민관정책협의회’(민관협)가 생겨난 것이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그간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이 안팎의 여러 문제점으로 동력을 상실하거나 아니면 과당경쟁식으로 대북지원을 추진하는 바람에 중복 지원 등이 이뤄지는 등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다”며 “그러나 이제 용천 사고 복구와 민관협의 결성을 계기로 대북지원 사업의 효율성이 크게 나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과 강문규 북민협 회장이 공동 의장을 맡고 있는 민관협에는 남북어린이어깨동무(이사장 권근술), 남북나눔운동(회장 홍정길), 굿네이버스인터내셔널(회장 이일하) 등 굵직굵직한 민간단체들이, 정부쪽에서도 통일부를 비롯해 농림부,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 실장급이 참여해 손발을 맞추고 있다. 민관협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대북지원 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 개별 단체들의 지원사업과 더불어 여러 지원단체들이 공동으로 파급 효과가 크면서 중장기적인 성격의 프로젝트성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어려움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북지원 사업이 개별적, 긴급 구호적 성격에서 탈피해 좀더 체계적, 장기적인 계획에 중점을 두고 있는 개발 지원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에서 비롯됐다.

자립 생존의 토대를 마련하라

사실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의 최초 목표는 인도적 지원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간의 활동을 보면 인도적 지원의 양은 눈에 띄게 늘어났으나,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얼마나 나아지게 만들었는지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민간단체들은 유엔아동기금(UNICEF), 세계식량계획(WFP) 등의 국제기구는 주기적 모니터링을 통해 변화를 파악해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만들고 있으나, 북한 당국은 남한 NGO가 지원은 하되 북한 사회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고 아쉬워한다. 그러나 민간단체들의 지원은 북한 주민들의 희생과 고통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자립 생존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는 게 자체적인 평가다. 북한 지원에 나선 민간단체들의 힘은 지원 규모를 보면 금방 드러난다. 1995년 6월부터 2004년 7월 말까지 NGO의 지원 규모는 정부의 7270억원(미국달러 6억7829만달러)에 못 미치는 4538억원(3억7452만달러)이나 적지 않은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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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여전히 매년 국제사회의 지원 없이는 스스로 생존하기가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북한의 식량난이 ‘복합적 위기’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은 한계가 명백한데다, 식량난은 전력 지원 등 종합적인 처방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사실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 사업은 일회성 긴급구호에서 벗어나 구호와 함께 지속적 개발사업으로 점차 바뀌어왔다. 어린이 등의 취약계층과 보건의료 및 농업생산성 향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원 품목도 농자재·농기구, 전문의약품, 의료기기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핵 문제 향방에 촉각 곤두세워

그렇지만 핵 문제가 순조롭게 풀리지 않는 한 대북지원에 따른 북한 주민들의 삶의 획기적 개선은 어려워 보인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부와 민간의 대북 지원 물꼬를 넓히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민관협은 지난 1월20일 올해 첫 회의를 열어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 극복과 의료환경 개선 등을 위해 장기 계획을 바탕으로 조직적, 계획적인 대북지원 방안을 모색해나가기로 했다”고 통일부는 밝혔다. 북한의 식량 문제와 농업기반 복구지원 사업 지역과 대상을 다변화하면서 종자 개발사업 등 연구사업을 지원하고, 지원 뒤 재투자를 통해 확대 재생산이 가능한 분야로 지원 영역을 넓히기로 했다. 또 농수산물 수급 상황을 감안해 우리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농수산물 지원사업도 고려하고 있다.

민간지원 단체들은 무엇보다 올해 핵 문제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성적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을 돕는 인도적 차원의 일이 너무 정치적으로 변질된 게 안타까울 뿐이다. 더구나 지난해 7월 이후 대규모 탈북자들의 입국 등의 문제로 불거진 남북 관계 경색은 대북지원 사업에도 불똥을 튀겨 실무자들의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고 있다. 최근 북쪽 인사를 만나고 온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할 일은 많은데 정치 문제 등으로 일이 자꾸 꼬이니까 북쪽 실무자들은 절박한 심정을 표출하더라”며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 일이 중단될까봐 조마조마해하고 있다”고 북쪽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다행히 따뜻한 봄 햇살이 비추듯 남북간 다시 활발한 대북지원 사업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7월 김일성 주석에 대한 조문 불허나 탈북자 대거 입국 등으로 막힌 민간 관계자들의 현지 방문 물꼬도 트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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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size="4" color="#216B9C">남북한 신뢰 형성의 모델이 되다</font>


[인터뷰 | 이기범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사무총장(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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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어린이어깨동무(이사장 권근술)는 대북지원 단체들 가운데 특히 북한의 어린이 돕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다. 지난 2002년 2월 평양에 어깨동무 어린이병원을 세우기로 북쪽과 합의한 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과 함께 평양에 어린이어깨동무병원을 세웠으며, 병원 건축자재와 의료장비, 콩우유 공장 설비, 기술 이전 등 모두 350억원을 지원했다. 이 단체의 사무총장을 줄곧 맡아온 이기범 숙명여대 교수는 “NGO 활동은 남북한 신뢰와 협력관계 형성의 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NGO 지원은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관계의 변화에 그나마 크게 동요되지 않고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연결점”이라고 지적했다.
<font color="663300">북쪽이 남쪽 NGO들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나.</font>
그동안 대부분의 남쪽 NGO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비교적 순수한 목적, 일관된 방향, 장기적 안목을 견지하며 사업을 진행했다. 많은 오해와 갈등이 당연히 있었지만 북쪽 담당자들은 NGO와 사업을 하면서 정치 선전을 자제하고, 실리를 추구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또 지원사업은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font color="663300">아쉬운 대목이 있다면.</font>
북쪽의 담당자가 1~2년을 주기로 바뀌면서 협력관계를 다시 다져야 하는 노력이 되풀이되기도 한다. 또 지원의 수혜자인 일반 주민들과의 만남이 여전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 아쉽다.
<font color="663300">대북지원 활동이 남쪽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면.</font>
대북지원 혹은 협력 NGO의 고유한 목표는 통일 문제에 접근하는 시민사회의 역량 신장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간의 NGO 활동은 더 많은 남쪽 시민들이 일상에서 남북 교류와 통일 과정에 참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NGO들은 비교적 공정한 시각을 갖고 북한을 체험할 기회를 지속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정부가 독점했던 북한 정보와 인식과 다른 관점을 제공하는 구실도 한다. 우리 단체의 ‘어린이평화교육’은 사회문화적 통합과 남한 사회의 자기성찰을 증진하려는 시도다.
<font color="663300">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font>
대북지원 및 협력 효과의 제고, NGO의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한 도덕적 지도력 확보, 대북지원 사업의 근거와 지향의 뚜렷한 설정, 스스로의 의제 설정 능력 개발, 자율성 확보 등이 당면 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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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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