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경제개혁 이후 상거래 가속화되는 북한…인플레이션과 환율 상승으로 도시 근로자의 삶은 더 어려워</font>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북한 사람들 사이에 돈에 대한 욕심이 커지고 있다. 요즘은 돈만 있으면 원하는 것을 뭐든지 살 수 있다. 다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돈을 갖지 못했을 뿐이다.”
요즘 북한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흔하게 내뱉는 말이다. 핵 문제의 그늘에 가려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북한의 변화상은 따라잡기도 힘들 정도다. 북한의 변화는 몇 마디로 압축되어 표현되곤 한다. 이른바 북한 사회의 상인화, 상업화다. 북한은 경제난 타개를 위해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인식 아래 지난 2002년 7월 경제관리 개선조처로 물가·임금·환율을 현실화하고, 기업 경영의 자율권을 확대하는 한편, 인센티브 제도의 강화, 배급제 폐지 등 획기적인 정책들을 내놓았다. 이런 개혁 조처가 3년째에 접어들면서 북한 사회 내 부업·장사 등 영리활동이 합법화됨에 따라 사적 경제활동이 생존뿐 아니라 이윤 추구 차원으로 급진전되고 있는 셈이다.
농민들이 더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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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돈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 거래하는 분위기다. 지난 몇년간의 혹독한 식량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우와 승냥이만 살아남았다’는 자조적인 평가를 내릴 정도다. 최근에는 그간 금지됐던 노동당 간부 가족들의 상행위까지 허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한 인사는 “사실 지금까지 당 간부들이나 개인들의 상행위는 최소한의 품위 유지 차원에서 중앙당국에서 막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도 공식 근무시간 외에는 개인적인 상행위를 하는 것이 묵인 내지 허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사회에서 돈의 힘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옌볜에서 떡집을 운영하면서 나름대로 돈을 벌었다는 평가를 받는 한 조선족 동포는 평양까지 진출해 비슷한 떡집을 차려 재미를 보는 바람에 애초 말렸던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기도 하다. 이는 당·정·군 고위 간부들이 주로 살고 있는 평양에서는 어느 정도 구매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스>도 3월28일치에서 “가장 폐쇄되고 통제가 심한 국가 가운데 한 곳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는 북한의 경제생활이 2002년 경제관리 개선조처 이후 크게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최근 중국에 도착한 북한 주민과 북한 사정에 밝은 중국 기업인들의 말을 따 2002년 시작되어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이런 변화는 민간 상거래가 금지되고, 사유재산의 보유가 제한돼 있으며, 국가가 사용자이자 공급자인 북한 공산주의의 근간을 상당 부분 흔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도시 지역에서 변화가 두드러져 평양을 포함해 38곳에 신설된 공공 시장에서 상거래를 통해 이익을 남기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시골 주민들은 농민들이 경제개혁 이후 상대적으로 도시 주민들보다 나아졌다고 말한다. “원하는 물건들이 시장에 나와 있으나, 너무 비싸 살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직접 논밭을 일구면 도시 사람들보다 낫다. 적어도 먹을 것은 넉넉하기 때문이다.” 옌볜에서 온 한 교수가 전하는 북한 친척의 말이다. 북한 인구 2300여만명 가운데 협동농장 농민은 전체의 30% 수준인 700만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진다. 이종무 우리민족서로돕기 평화나눔센터 정책실장의 진단도 엇비슷하다. “우선 농민은 공공배급 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협동농장에서 1인당 연간 219kg(한 사람당 하루 600g)의 식량을 분배받는다. 이와 같이 농민은 식량 배급량이 상대적으로 많고, 텃밭이나 경사지 밭을 개간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다. 더구나 목표량을 초과 달성한 식량은 정부나 지방 시장에 판매해 추가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어서 공공배급 제도에 의해 식량을 배급받는 가구에 견줘 식량 사정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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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으로 구매력 반으로 줄어
문제는 도시 빈민들이다. 주곡의 대부분을 공공배급 제도에 의존하는 전국의 70%에 달하는 근로자 가구는 시장에서 직접 식량을 구입하거나 여러 가지 임기응변적 방법으로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가격이 만만치 않다. 경제개혁 이후 삶이 더 팍팍해졌다고 하소연하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9월 평양을 다녀온 전영일 미국 국제전략화해연구소 소장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북한·통일 공부모임’에서 “평양에도 시장이 형성되고 있지만 지금 성장통을 겪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매우 높고 실제 일하는 사람들과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차이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월급이 50원, 100원에서 2천원으로 올랐지만 인플레이션 탓에 구매력은 반 이하로 줄어들었다”면서 “인플레이션은 북한의 지도자들이 개혁에 대해 주춤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2년 7월 경제관리 개선조처 이후 저임금 근로자는 한달에 1700~2500원의 월급을 받는다. 평균 월급은 2100원 정도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농산물 가격은 임금 인상폭보다 더 높은 비율로 인상되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의 평양사무소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2004년 6월 쌀 가격이 1kg당 270원으로 올랐고, 나중에는 500~600원까지 훌쩍 뛴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주민들의 주식인 옥수수 가격도 마찬가지다. 결국 일반 주민들에게 시장에 나오는 곡물은 그림의 떡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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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유로 및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최근 크게 상승하고 있는 점도 우려를 자아내는 요인이다. 이는 북한 원화 가치가 크게 추락하고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의 평양특파원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3월29일 거래된 암시장 환율이 1유로당 3천원, 1달러당 2600원으로 북한의 공식 환율인 유로당 170원, 달러당 140~150원보다 10배 이상 높게 거래됐다. 이같은 환율은 2004년 4월의 유로 대비 원화 환율이 1400원, 달러 대비 환율이 1200원이었던 것에 견주어도 최근 1년 사이 북한 원화 가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환율은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고, 같은 지역이라 해도 수시로 바뀌고 있으나,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 위안화의 경우도 1위안에 2004년 9월 초 무산 220원, 혜산 190원, 평양 200원이었으나, 2005년 2월에는 신의주가 250원, 온성과 종성은 240~250원, 회령은 250원, 청진은 250~260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있는 자와 없는 자’ 고용관계까지
북한은 2002년 7월 경제개혁 조치 이후 기존의 단일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면서도 환율 현실화 조처를 내놓았다. 2002년 8월 1달러당 1~2원으로 매겨지던 국정환율 제도를 폐지하고, 지금의 공식 환율인 무역환율로 단일화하면서 환율을 미화 1달러당 2.2원에서 153원으로 70배 올린 바 있다. 2003년 이후 공식 환율과 암시장 환율 사이의 심각한 괴리가 재연되자, 북한은 종합시장 등에 ‘외화교환소’를 설치하고 내국인들에게 암시장 환율로 바꿔주는 등 실질적으로 ‘이중환율제’를 운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악성 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상품가격 상승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에서 근로자들의 평균임금이 약 2천원(일반 노동자)에서 6천원(중노동자) 선인 것을 감안하면 이같은 통화가치의 하락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좋은 벗들’의 노옥재 사무국장은 ‘7·1 경제관리 조치 이후 북한 사회 및 주민생활 변화’를 이렇게 전한다. “(주민들이) 장사나 다른 부업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생계 유지가 불가능하며, 실제로 월급을 제대로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가 재정능력이 열악해 한두 차례 월급을 주고 난 뒤에는 돈이 없어서 월급을 못 주고 있다.” 주민들이 너나 없이 장사에 뛰어들다 보니 ‘돈주’(전주에 해당되는 상인)와 중간상인이 출현하고,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고용관계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노 실장은 지적한다. 시장화의 진전으로 많은 돈을 가진 돈주들은 직접 나서지 않고 약 5~6명의 대리인 격인 중간상인을 두어 밖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단다. 그러나 “돈주가 있어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인식이 팽배해 당국에서는 단속의 손길을 거의 놓고 있다. 중간상인들은 또 각자 5~6명의 소매상인들과 연결돼 물건을 넘겨준다. 중간상인들은 이윤을 덧붙여 오른 가격에 물건을 팔고, 소매상인들은 여기에 다시 가격을 더 붙여 시장에 내다판다. 대체로 중간상인들은 이윤의 60%를, 소매상인들은 40%씩 나눠먹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밖에 가난한 사람들이 남의 어장에서 수확을 도와주는 ‘머슴조개’, 짐을 운반해주고 수레 주인에게서 수고비를 받는 ‘짐꾼’, 남의 땅에서 일을 해주고 가을에 일한 대가를 받는 ‘소작인’ 등이 등장한 것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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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품이 변화의 바람 불어넣다
북한의 시장화와 상거래를 촉진하고 갖가지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요인으로는 중국 상품의 범람이 꼽힌다. 요즈음은 북한 상인들이 주로 중국에서 수입한 의류를 비롯해 자전거, 텔레비전, 냉장고 등 온갖 물건을 내다팔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 시장에 나와 있는 중국산 제품은 90%를 웃도는 것으로 파악된다.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중국에서 돈벌이를 하거나, 상품들을 사서 북한에서 되파는 북한 주민들도 비슷하게 늘어났다. 중국 기업들은 1990년대 저가의 저질 상품으로 러시아 시장을 공략하던 과정을 밟지 않고 북한 초기 진출 때 고품질 일류상품을 만들어 ‘중국제’ 고급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 사회의 상업화가 진전되면서 부정부패의 독버섯도 여기저기서 자라나고 있다. 북한을 자주 들락거리는 한 기업인은 부패의 심각성을 서슴없이 지적한다. “어느 한 곳에서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퍼지면 힘있는 권력 부서에서 파리떼처럼 몰려든다”면서 권력 부서가 너나 없이 달려들어 한푼씩 뜯어가는 현실을 개탄했다. 북한 당국은 사회 기강을 다잡기 위해 지난해 4월 개인 소유권 보호 등을 위한 형법을 크게 고쳤다. 북한은 중간에 쉽게 내릴 수도 없는 호랑이 등에 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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