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롄= 글 · 사진 김보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사업국장 tree21@hani.co.kr
“저 약혼자 있습니다.”
저는 다롄 ‘평양관’ 봉사원 최유정입니다. 글쎄 제가 이곳 평양관에 나온 지 이제 한달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약혼자 있다”는 말을 수십번도 더 한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남쪽 손님들이 술 한잔 하시면 꼭 저에게 “남쪽으로 시집오라”는 말을 잊지 않으십니다. “안 된다”고 말하면 “북쪽으로 장가가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제가 ‘약혼자’ 얘기를 꺼냅니다. 그러면 뭐라시는지 아세요.
백이면 백분 모두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갑니까”라고 하십니다. 이제는 제가 좀 정색을 해야 할 순간입니다. “동방예의지국의 조선 처녀는 한 남자와 약속했으면 ‘비교할 남자가 없다’는 마음으로 평생을 지냅니다. 약속은 곧 법입니다.”
그제서야 남쪽 손님들은 “멋있다”면서 박수를 보내주십니다. 남쪽 손님들은 “남쪽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를 계속 바꾼다”며 “역시 북쪽 처녀들은 ‘주체’가 서 있다”고 칭찬을 하십니다. 그런데 정말 남쪽 처녀들은 “이 사람하고 연애하고 저 사람하고 연애하고” 그럽니까.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애인 있다는 말이 정말이냐고요? 여태까지 말씀드렸는데도 못 믿으시다니 섭섭합니다. 저희 오빠는 컴퓨터를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평양을 떠날 때 오빠가 얼마나 섭섭해하던지….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오빠, 우리 3년 뒤에 더욱 큰 모습으로 만나요. 오빠는 오빠대로 또 저는 저대로 말이에요.” 에이, 선생님이 괜히 오빠 얘기는 물어서 또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사실 여기에 나와 있으면 3년 동안 거의 고국에 들어가보지 못한단 말입니다.
가끔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남쪽 손님들은 호텔방에서 전화를 하십니다. “유정 동무가 보고 싶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평양관을 생각해주시는 데 고마움을 느끼지만, 호텔방에서 전화를 하시는 건 좀 너무하신다 싶기도 합니다.
제가 3년 뒤 돌아가 오빠와 결혼식을 할 때 정말 잘해주시는 남쪽 손님들 몇분은 꼭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때는 ‘우리 민족끼리’ 교류가 활발해져서 그런 내왕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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