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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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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통일을 맛보세요”

등록 2004-02-20 00:00 수정 2020-05-03 04:23

중국 다롄에 진출한 북쪽 식당 봉사원 림솔매씨가 남쪽 동포에 전하는 ‘평양관’의 하루

다롄= 정리 · 사진 김보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사업국장 tree21@hani.co.kr

“만일 미국놈이 조선(북한)을 공격한다면, 내가 중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을 공격하고 죽을 겁니다. 벌써 집사람에게 아이 둘을 잘 키워달라고 얘기까지 했습니다.”

중국 다롄 푸리화(富麗華)호텔 옆에 위치한 ‘평양관’이 갑자기 시끄러워졌습니다. 45살쯤 돼 보이는 조선족 동포 사업가 한분이 남쪽 사람들과 얘기하다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입니다. 순간 평양관의 모든 손님들이 그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다른 탁자에 있는 남쪽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선족 동포에게 다가간 뒤 악수를 청했습니다. “선생님, 정말 멋있습니다. 여기서 새삼 ‘우리 민족’을 느꼈습니다.”

‘북핵 위기’니 뭐니 하는 조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생각나서 제 눈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저 역시 한달 넘게 이국 땅에 나와 있지만, 벌써 여러 번 ‘우리 민족’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누구냐고요? 제 이름은 림솔매. 올해 23살이고 평양관 봉사원입니다. 저를 포함해 최유정(24) 언니, 정현(24) 언니, 그리고 저와 동갑내기인 채소연 동무는 지난해 12월31일 신의주 교두를 넘어 이곳 다롄 평양관에 왔습니다.

이전에 봉사원으로 있던 동무들이 3년의 시간을 채우고 고국으로 돌아간 뒤 새로 평양관 봉사를 위해 나온 것입니다. 우리들은 고국에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는 김영희(27) 조장 언니의 지도와 보살핌 속에서 참된 ‘봉사일꾼’으로 커가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실수도 많지만요. 남쪽 동포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궁금하시죠. 제가 2004년 2월6일 오늘 하루 일어났던 일들을 말씀드릴게요.

봉사활동은 체력전… 구역 청소로 시작

평양관의 아침: 벌써 아침 7시30분.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간입니다. 평양관 2층에 마련된 숙소에서 우리 5명은 또 하루를 눈떴습니다. 이부자리에서 오늘은 어떤 손님들이 평양관을 찾을까, 잠깐 생각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평양관 앞 공원으로 운동을 나갑니다. 지배인 동무는 아무리 힘들어도 운동은 빼먹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정말이지 아침 일찍 시작해 밤 12시가 넘기 일쑤인 평양관 봉사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중요합니다.

8시30분은 즐거운 아침식사 시간입니다. 아침식사는 저희 봉사원 5명 외에 지배인 동지 부부, 주방 식구 등 모두 11명이 둘러앉아서 먹습니다. 그런데 조장인 영희 언니는 식사시간도 교육에 활용합니다. “솔매 동무, 이럴 땐 어떻게 하니.” 주방 동무가 식탁에 물을 조금 쏟자 영희 언니는 곧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사실 이렇게 식사 중에 받는 교육이 정말 머리에 쏙 들어옵니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들은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하는 등 손님 맞을 준비를 합니다. 5명은 각각 밀대 당번, 탁(식탁)걸레 당번, 조미료 만들기 당번, 초고추장·와사비 만들기 당번 등을 정한 뒤 돌아가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술 말고’와 ‘독한 술 말고’ 사이

점심시간: 오늘은 어떤 남쪽 손님이 올까요. 1월1일 처음으로 봉사원 생활을 시작할 때는 남쪽 손님을 맞이한다는 게 어색하고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겪어보니 영 우리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술을 쏟았을 때 있지 않습니까. “아니 피 같을 술을…” 하고 아까워하는 데 꼭 평양에 계신 아버지와 오빠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오전 11시30분. 다롄에서 사업을 하시는 남쪽 김 선생님이 동료들과 함께 평양관 문을 밀고 들어오셨습니다. 탁자에 앉은 김 선생님이 “독한 술 말고…”라며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제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왜냐고요? 보름 전쯤 저녁에 김 선생님이 찾아와 “북한 술 말고…”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좀 뽀로통하게 대꾸했죠. “북한 술 말고 조선 술이라고 해주십시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남쪽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있고, 우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어엿한 국호가 있는데, 간혹 남쪽 분들 중에 ‘북한’이라고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김 선생님은 “아니 ‘북한 술’이 아니고 ‘독한 술’ 말이야. 아하, 동무는 내가 그 정도의 예의도 없는 사람으로 보여”라며 웃는 게 아닙니까. 그 뒤에 김 선생님은 “독한 술”로 절 놀리곤 하십니다.

오늘은 제가 조금 쉬운 날입니다. 구석에 있는 장탁(긴 탁자)과 작은 탁자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저희 봉사원들은 하루에 장탁 하나에 작은 탁자 하나씩을 기본적으로 맡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은 가운데에 많이 앉습니다. 가운데에 앉으면 저희 봉사원들이 식사 중에 들려드리는 노래를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일 바쁜 장탁은 정현 언니가 맡았습니다. 구석 장탁을 맡았으니 오늘은 제가 노래를 많이 해야겠죠. 제 18번은 입니다. 그럼 시작해보죠. “사~랑~을 팔고 사는….”

저희는 점심 손님이 다 가고 한가해진 오후 3시에야 점심을 챙겨 먹습니다. 저녁은 언제냐고요? 영업이 끝나는 10시쯤인데, 그마저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손님들이 흥이 나면 밤 12시를 넘기는 것도 흔합니다. 그러면 손님이 가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처음에는 적응이 안 돼 무척 힘들었는데, 이제 일없습니다.

“통일 체험의 현장에 초대합니다”

저녁시간: 저녁 때야말로 평양관에 가장 활기가 도는 시간입니다. 오늘 저녁 첫 손님들은 역시 남쪽 분들입니다. 첫 손님들은 “봉사를 잘 했다”며 20원을 주십니다. 처음에는 안 받겠다고 그랬는데, 이제는 성의를 외면하는 것 같기도 해서 다섯 사람이 받은 것을 모두 모읍니다. 그리고 주방 동무들을 포함해 생일이 돌아온 사람들의 생일파티를 이 돈으로 해주고 있습니다. 1월 말에는 소연 동무의 생일이었는데, 그때 ‘톨트’(축하탑·케이크의 소련 단어)도 세우고 즐겁게 보냈습니다.

아, 이런 한가한 얘기를 할 틈이 없네요. 오늘은 손님들이 정말 많습니다. 현재 평양관에는 남쪽 손님들이 가장 많습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에 그렇게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남쪽 손님 봉사에 가장 신경을 많이 씁니다. 남쪽 방식의 김치 썰기도 여러 남쪽 손님들에게 물어봐서 이제 그 비법을 터득했습니다.

평양관에는 남쪽 분들뿐만 아니라 조선족 동포들도 찾아주시고, 중국 사람들도 간혹 들립니다. 또 조국 분들도 출장을 나오시면 평양관을 잊지 않고 찾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서 ‘작은 통일’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저녁 9시가 조금 넘어 ‘대안전기련합기업소’에서 출장 나온 조국 분들 6명이 가운데 장탁에 앉았습니다. “미국 대사관을 공격하겠다”는 조선족 아저씨가 떠난 바로 그 자리죠. 아까 조선족 아저씨에게 명함을 건넨 남쪽 손님이 조국 분들에게 “못 부르지만 노래를 하나 하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 남쪽 손님이 부른 는 화면에 ‘96점’을 표시했습니다.

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조국 분도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남쪽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불렀다는 가 한점 못 미쳐 ‘95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주거니받거니 몇곡을 더 부르더니 두 사람은 을 함께 부릅니다. 점수는 97점. “아직 통일까지 3점이 모자랍니다.” 남쪽 손님의 농에 “6·15 공동선언으로 큰 길이 열렸으니 조만간 100점이 될 겁니다.” 조국 사람의 답입니다.

노래 이 끝나자 벌써 시각은 밤 10시를 훌쩍 넘었습니다. 오늘도 제시간(?)에 저녁을 먹기는 틀렸습니다. 하지만 일없습니다. 이렇게 서로 형제임을 확인하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릅니다. 남쪽에 계시는 손님 여러분도 한번 다롄 평양관에 오셔서 이런 통일을 경험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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