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영공장 ‘평양대마방직’ 끌어낸 안동대마방직 김정태 회장… 경작부터 임가공까지 팍팍한 경제에 단비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북한이 대마에 중독됐다.
<노동신문> 등은 “전 군중적 운동으로 온 나라를 대마숲으로 뒤덮자”며 집집마다 대마 재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전 국토의 대마 단지화를 꿈꾸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북한에 난데없이 대마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셈이다. 왜 갑자기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대마는 ‘삼’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마 줄기의 섬유는 삼베를 짜거나 로프·그물·모기장·천막 등의 원료로 쓰이고, 열매는 향신료의 원료로 쓰인다. 씨앗은 조미용이나 기름을 짜는 데 쓰인다. 북한은 주로 섬유를 얻기 위해 대마 재배를 장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대마를 ‘민족 섬유’라 부른다. 그만큼 대마를 애지중지하고 있다.
<노동신문> “전국을 대마숲으로 뒤덮자"
이런 북한이 최근 남쪽의 한 기업인과 손을 잡으면서 ‘날개’를 날았다. 안동대마방직 김정태(63) 회장은 25년 동안 대마를 연구해 기계화·실용화에 성공한 기업인이다. 그는 대마를 통해 북한에서 삼베는 물론, 종이에다 비닐까지 생산할 야무진 계획을 품고 있다. “북한은 대마 생산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 60이 넘은 나이에 무슨 큰 욕심이 있겠습니까. 이 사업이 잘돼 남북한 모두에 경협에 대한 자신감을 주고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대마로 만들 물건들은 모두가 북한이 절실히 원하는 것들이다. 대마를 원료로 삼아 이들 제품을 대량 생산만 할 수 있다면 북한의 팍팍한 경제 사정에 단비 같은 구실을 할 수도 있다. 대마는 의류와 제지뿐 아니라 의약품까지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심각한 생필품, 원자재난을 더는 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는 보물이다. 대마를 키우는 농민들의 소득이 향상될 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 그만큼 대마는 용도가 다양하다. 꼬일 대로 꼬인 남북 관계의 와중에서도 유독 북한 지도부가 김 회장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는 까닭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 회장이 그간 임가공을 해온 평양 대마 농장까지 직접 방문해 큰 관심을 쏟은 것으로 알려진다. 김 회장은 2002년부터 씨앗과 비료 등을 북한에 보내 시험재배를 하다가,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대마 임가공을 해왔다. 주로 삼베로 짠 수의를 생산해 국내 주요 병원에 팔아왔다. “당시 반자동 직기 100여대를 보내주었는데, 북한 근로자들의 손재주가 엿보였습니다. 이들은 나중에 직기가 모자랐던지 나무로 베틀을 직접 짜서 제품을 만들더라구요. 당시 코끝이 찡했습니다. 한푼이라도 더 벌어 잘살아보려는 오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 회장은 직접 기술인력을 데리고 북한으로 들어가 실 뽑는 방법 등 핵심 기술을 1주일 동안 직접 가르치는 성의를 보였다. 그는 이 사업을 잘만 하면 남북한이 상생하는 좋은 모범사례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임가공보다 훨씬 협력 강도가 센 합영사업을 제안했고, 북쪽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다만, 김 회장은 새로운 제안을 하나 내놓았다. 북한이 노동력뿐 아니라 합영공장을 직접 지어주면 더 바람직한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다고 말했는데, 북한이 고민 끝에 이를 수용한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경협 방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으로, 본받을 남북경협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북한은 그간 땅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나머지는 모두 남쪽 기업의 몫이었던 것이다. “남북경협은 기본적으로 너무 일방적이면 안 된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이는 북한의 자생력을 기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대마재배→ 대마 섬유→ 대마원단→ 원제품’에 이르는 전 과정이 남북협력사업으로 추진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직접 기술 지도… 도별 6천만평 단지 박차
지난 4월8일 처음으로 경의선 육로를 통해 직기 36대가 평양 공장으로 날라졌다. 김 회장이 이사장을 맡게 되는 남북합영공장 ‘평양대마방직’으로 공장설비가 직행한 것이다. 안동대마방직은 현재 평양에 탈수·섬유·마방적 등 3개 공장설비를 갖추고 있으며 직조시설 운송에 이어 공장 건축이 진전되는 대로 곧 편물, 양말, 타올, 자카드 직물, 염색가공 등 5개 공장설비를 육로로 추가 운송한다. 이 회사는 북쪽의 새별총회사, 화성합작회사를 사업 파트너로 삼아 황해도 해주와 사리원, 벽성 등지에서 대마를 재배해 평양 공장에서 삼베를 원단으로 한 벽지, 양말, 타월, 속옷, 병원복, 골프웨어, 캐주얼 바지, 위생행주 등을 골고루 생산해 국내와 북한 내수용으로 팔 예정이다. 남북 정상회담 5주년을 맞는 오는 6월15일 준공을 앞두고 있는 이 공장이 모두 세워지면 무려 1만명가량의 근로자가 일하게 된다. 김 회장은 남쪽의 주요 병원들의 도움을 받아 북쪽 근로자들의 정기적인 건강진단을 실시하고, 나아가 근로자들에게 식사도 제공하는 등 복지도 꼼꼼하게 챙겨줄 작정이다.
김 회장은 북한 지도부의 의지와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 지도부는 평양 동대원구역 ‘평양 제1방직 공장’ 옆 노른자위 땅 수천만평을 선뜻 내놓았다. 올해 400만평, 내년에는 3천만평의 넓이에 대마 씨앗을 생산하고, 다양한 의류 제품을 만들 계획이다. 앞으로 북한의 각 도마다 6천만평씩 대마 영농단지를 조성할 생각이다. 이제 대마는 남북 화합과 번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섬유식물로 우뚝 서게 됐다.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는 다만 북한 땅이 지난치게 산성화돼 있는 게 걱정이다. 튼튼한 대마를 키우려면 거름과 비료를 제때제때 공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또 농사에 필수적인 트랙터와 경유 등도 덩달아 넣어줘야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마를 심고도 농사가 잘된다는 것을 (북쪽 주민들에게) 보여줘야 해요. 그런데 땅의 힘을 회복하는 게 가장 큰 관건이지 뭐예요. 북에서는 퇴비도 턱없이 모자라 걱정이에요. 그렇지만 반드시 성공사례를 만들어 남북 상생의 길을 열어나가겠습니다.”
북한에서는 김 회장을 ‘대마 박사 선생’이라고 부른다. 북한 내 주요 연구소 박사들을 불러놓고 그들에게 대마 개발과 육성 재배와 관련된 신지식을 전수하고, 실용화하는 데 꼭 필요한 노하우들을 몽땅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인정을 받기까지에는 몇년이 걸렸다. 그는 1999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의 여러 부서에 사업제안서를 보냈다. 대마 사업의 중요성과 효용성을 설득하고 직접 보여주는 데만 2∼3년이 걸렸다. 그는 2003년 초에야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았다. 부인과 함께다. 그는 그 뒤 평양을 갈 때마다 늘 부인을 데리고 다녔다. “어쩌면 가장 든든한 동업자가 내 마누라죠. 사업자금이 모자랄 때는 집사람이 돈을 빌려 투자할 때도 있었으니까요.” 두만강가에서 시험재배를 하기도 하고, 임가공을 통해서도 ‘대마의 힘’을 북한 지도부나 실무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도록 만든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뿐 아니라 군 장성들, 무역성 등 내각의 주요 부처 책임자들이 현장을 다녀갔다. 그 뒤 북한 전역에 대마 재배 붐이 일기 시작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남쪽에서 오히려 인정받기 어려워"
정작 초기에 그를 지치게 만든 곳은 남쪽이었다. “대마 원료로 섬유와 제지 등을 만드는 대북사업을 한다고 관련 기관에 지원을 요청했더니 다들 사업성을 인정하지도 않더라고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던 거지요. 다만, 중소기업진흥공단 남북협력센터(소장 동명환)에서 사업성을 인정하고 기술적·물적 지원을 해줘 간신히 물꼬를 트게 됐지요.” 그동안의 대북사업들이 애초의 기대와 의욕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북에서 나를 더 걱정하고 있더라”면서 성공 가능성을 강하게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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