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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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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포 협동농장의 작은 기적

등록 2005-05-05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남쪽 벼 품종으로 함께 농사 지으며 다수확 가능성 확인… 북한 ‘먹는 문제’ 해결하는 단서 될까</font>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삼일포 협동농장’이 남북간 농업 교류협력의 전초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통일부는 4월28일 청와대 업무보고 자리에서 “남북관계 상황과 파급효과 등을 감안해 농업분야 남북협력을 위한 종합적인 방안을 수립,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해 눈길을 끌었다. 통일부는 올해 삼일포 협동농장과 금강산 관광특구 내 협동농장을 대상으로 북쪽과 공동 영농사업을 추진하는 통일농수산사업단(공동대표 이길재·이우재)에 20억원을 지원키로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결정이 앞으로 남북 농업협력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간 비료와 식량, 각종 농자재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지원해왔으나, 앞으로 이에 그치지 않고 북한이 길게 자생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농업개발 지원이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주체농법’으로도 남쪽 벼 재배?

삼일포 협동농장은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있다. 이 농장은 금강산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협동농장으로 삼일포에서 해금강에 이르는 넓은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약 500ha에 이른다. 통일농수산사업단은 2002년부터 금강산 남새(채소)온실농장에 필요한 영농자재와 생활물자을 넣어오다, 2004년 4월부터 영농자재뿐 아니라 공동 시험재배에 나섰다. 통일농수산사업단과 함께 농촌진흥청이 기술지원과 시범재배를 통한 남한 품종의 적응성 검토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도 우수성을 인정받는 소백, 오대, 운봉, 진부, 화동벼 등이 주요 재배 품종이다. 지난해 4월25일부터 씨앗을 뿌리고, 6월10일 모를 심어 9월에 첫 수확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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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재배 결과는 좋았고, 북쪽의 반응도 뜨거웠다. 통일농수산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북쪽은 남쪽 우량 품종이 조기 다수확 식량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다, 이모작 품종을 확보하게 돼 식량 증산을 도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북쪽은 남쪽 품종을 재배할 시범포 면적을 확대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이른 시간 안에 더 넓은 지역에 남쪽 품종을 심고자 하는 속내를 드러낸 셈이다. 북쪽 관계자들은 또 이앙기 등 영농 기계와 시험재배용으로 가져간 농자재의 추가 지원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북쪽의 관심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남쪽 영농기술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도 컸다. 북한의 ‘주체농법’이 시작된 평남 청산리 협동농장에서도 남쪽 품종을 갖고 시험재배하는 문제를 북쪽과 추진 중이라고 한다. 북쪽에서는 금강산관광총회사와 고성군 농업경영위원회, 삼일포협동농장관리위원회가 팔을 걷어붙이고 힘을 모았다. 북쪽은 땅과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간 삼일포 협동농장에서 일어났던 작은 기적들은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다. 통일농수산사업단은 내실을 다지면서 조용하게 사업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초 북한 당국이 농업을 ‘주공전선’으로 삼겠다고 신년사에서 밝히면서 삼일포에서 이뤄졌던 남북 시험재배는 점차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북한 농업의 중심이자 개선의 시험장인 북쪽 협동농장에서 이뤄지는 협력사업인데다, 물적·기술적·인적 교류가 더불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렇다면 통일농수산사업단이 남들이 쉽게 하지 못했던 성과를 일군 배경은 무엇일까. “우리는 처음부터 농업협력을 학술적 혹은 관념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철저하게 현상 중심적으로 사고하고, 상호 이익을 보는 공생의 차원에서 사업을 기획한 거죠.” 한 실무자의 진단이다. 기존 대북 농업지원 단체들이 농업기술이나 농자재 등을 단순히 전달하는 방식에 그쳤다면, 사업단은 처음부터 현장 중심으로 북쪽 관계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그들 스스로 남북한 농업 체계를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만들었다. 북쪽 농민이나 기술자들이 눈으로 직접 살펴보고, 실제 농사를 같이 지어보면서 양쪽 영농 방식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개선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는 게 사업단 관계자의 진단이다.

올해는 ‘농업협력’의 해

이들은 남쪽의 씨앗, 농기계와 기초 농자재의 지원으로 북쪽의 농법 개선을 이끌 수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지금 북쪽은 물 못자리 육묘 방식을 쓰고 있으나 적기 이앙을 가능케 하는 난방식 못자리로 바꿔야 증산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사업단은 남쪽 육성 조생종 품종의 북한 지역 적응성을 검토하고, 북한의 다수확 재배기술 지도와 현장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시험재배를 통해 우선 북쪽이 선호하는 오대벼 등의 지원을 넓힐 생각이다. 해마다 새 품종을 별도로 보급해 지원한다는 것이다. 북쪽은 남쪽의 벼 육묘와 기계이앙 기술 이전을 강하게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사업단은 오대벼 시험재배 등을 통해 친환경 유기농업 기술지원과 정착에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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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먹는 문제’의 해결은 절박한 과제다. 곡물 생산량은 2001년 395만톤에서 2002년 413만톤, 2003년 425만톤, 2004년 431만톤으로 다소 늘었다. 그동안의 농업개선 조처로 곡물 생산량이 늘고, 주민들 사이에 경쟁 의식이 확산된 탓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의 식량이 해마다 80~100만톤이 모자란다고 말한다. 특히 올해 2월10일 북한이 핵 보유 선언을 한 뒤 국제사회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식량 사정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식량이 바닥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곡물 가격도 쌀값이 40% 오르는 등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노인과 도시 저소득층, 특히 어린이의 영양 상태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

따라서 남북한 모두 올해의 최대 화두는 ‘농업 협력’이다. 북한의 먹는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한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지난 1월1일 신년사에서 농업을 ‘주공전선’으로 삼겠다고 밝힌 뒤 식량증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북한의 농업개선 속도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영농 인센티브를 확대하고, 가족 단위의 영농을 허용하는 등 거센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노무현 정부도 북쪽의 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인도적 차원과 남북경협 차원에서 뒷심을 대고 있다. 통일부도 4월28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북 교류협력 기반 확충을 위해 농림부를 비롯한 유관 부처와의 종합적인 협의·검토를 통해 남북 농업협력을 위한 종합적인 방안을 수립,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월3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핵 포기 과정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대규모 경제지원을 의미하는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대북 지원’을 할 계획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우선적으로 남북 대화가 재개되면 북한이 올해 중점 추진사업으로 설정한 농업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이 필요로 하는 식량, 비료, 농기구 등 포괄적 농업 협력을 추진할 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핵 문제가 걸림돌… 비료지원 어쩌나

그러나 핵 문제는 남북 농업협력에도 큰 걸림돌로 버티고 있다. 북한은 올 초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봄철 파종기에 쓸 비료 50만톤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정부는 국내외 여론 동향을 살피고 있다. 이 정도 양이라면 북한의 한해 비료 필요량의 40%에 해당되며, 당장 수확량을 배로 늘릴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이후 상황의 악화와 이로 인한 미국 부시 행정부의 불편한 심기는 노무현 정부의 비료 지원을 머뭇거리게 만들고 있다. 남북 영농사업의 중장기적 성공 여부도 결국 비료의 힘에 적지 않게 기댈 수밖에 없다. 통일농수산사업단은 지난해 남북한 벼 품종 비교시험에 이어 올해에는 남쪽의 시비 방식을 적용해, 그 결과를 지켜볼 예정이다. 사업단은 북한 지역의 쌀 생산성을 높여 91만톤까지 증산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삼일포 협동농장에서의 남북 공동영농 사업 성과가 다른 지역에도 골고루 확산돼나간다면 북한이 해마다 맞부딪치는 만성적 식량난에서 벗어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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