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14일 저녁 제주 서귀포시 이중섭거리 중턱에 있는 서귀포관광극장의 낡은 외벽에 이중섭 작품으로 이루어진 미디어파사드 주제 ‘마지막 여정’이 투사되고 있다. 보존과 철거의 갈림길에 선 건물의 ‘마지막 상영회’처럼, 어두운 밤에 빛나는 강렬한 빛이 운명을 알 수 없는 극장의 존재감을 더욱 드러낸다.
주위가 어두워지자 제주 서귀포시 도심의 낡은 건물 외벽이 화려한 색으로 변신했다. 1963년 서귀포 최초의 극장으로 문을 연 ‘서귀포관광극장’이다. 건물을 감싼 어둠 위로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 이중섭의 그림이 미디어파사드(건축물 벽에 영상·이미지를 투사해 시각적 효과와 정보를 전달하는 기술)로 투사된다. 붉은 꽃문양과 푸른 잎이 피어나고 ‘조선의 들소’가 돌담을 스칠 때, 빛이 닿지 않은 벽면은 세월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드리운다. 찬란한 빛이 낡은 건물의 해체와 뒤섞여 ‘최후의 상영회’를 준비하고 있다.
서귀포시는 2023년 12월 이 극장을 27억원에 매입한 뒤, 건물 외벽에 이중섭 작가의 작품을 상영하며 홍보해왔다. 그러나 화려한 빛 아래 극장의 현실은 ‘E등급’(불량) 안전 진단을 받고 철거 논란에 휩싸여 있다. 현재 입구는 노란색 ‘위험! 접근금지’ 통제선으로 봉쇄됐다.
철거는 논란의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서귀포시는 2025년 10월11일 건물 붕괴 방지를 이유로 철거를 결정한 뒤, 건축계 및 전문가와의 협의 없이 10월19일 9m 높이의 야외공연장 벽체 일부(ㄴ자 형태)를 기습적으로 허물었다. 이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1960년대 건축물’을 파괴하는 행정 폭거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건축계는 공유재산 심의 절차와 전문가 논의를 배제하고 주말을 이용해 공사를 강행하려 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다.
가림막에 가려진 극장은 외벽 일부만 남고 내부가 뜯겨나간 채 빽빽한 도심 빌딩 숲 사이에 깊은 흉터처럼 자리하고 있다. 초록색 방수포로 덮인 빈터는, 서귀포 최초의 극장이자 지역에 있는 문화적 공공재의 실체를 보여준다. 극장은 화재로 지붕을 잃은 뒤 노천극장으로 쓰였으나, 이제는 내부가 사라진 채 외벽만이 비극적인 유산으로 남았다.
서귀포관광극장의 운명은 한국 도시가 근대 유산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60년 세월을 견딘 건물이 ‘효율’과 ‘안전’의 잣대로 손쉬운 ‘철거’라는 선택지 앞에 놓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건물은 2021년 ‘제주다운 건축상’을 받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당시 심사평은 “오래된 외장타일과 일부 덮어버린 넝쿨식물은 건축물이 지내온 시간의 흔적을 잘 보여준다. 2층에서 외벽 너머로 고층 빌딩 모습이 보인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성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는 다층적 시간의 층위를 구성한다”고 평가했다. 현재의 철거 논란은 이처럼 시간의 층위를 보존할지, 단층적인 효율성으로 제거할지에 대한 물음이다.
논란 끝에 서귀포시는 철거를 보류하고, 건축가들에게 60일 동안 건물을 안전하게 보강하고 리모델링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시간을 부여했다. 그렇다고 철거 계획이 백지화된 것은 아니다. 건물 외벽을 둘러싼 비계와 가림막은 상황의 긴급성을 대변할 뿐이다.
서귀포(제주)=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드론으로 찍은 서귀포관광극장의 모습. 극장 관람석 주변 현무암을 쌓아 만든 ㄷ 모양의 외벽에서, ㄴ 모양 벽은 허물어지고 빈터에 방수포가 덮여 있다.

서귀포관광극장 건너편 골목에 이중섭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느낄 수 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철거 공사가 일시 멈춘 극장을 둘러싸고 가림막과 접근금지 표지판이 시민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극장 주변에 철거 공사를 위한 비계가 설치돼 있다.

화재로 지붕이 소실된 뒤 노천극장으로 활용되던 서귀포관광극장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다. 철거 직전까지도 시민들은 담쟁이덩굴이 덮인 낡은 외벽 너머로 푸른 하늘이 보이는 극장을 찾았다. (서귀포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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