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개발이 진행 중인 서울 강서구 공항시장과 그 일대의 풍경.
김포공항 옆, 오래된 간판과 찢긴 천막이 바람에 흔들린다. 서울 강서구 공항시장의 골목은 낮에도 한산하다. 문을 닫은 점포들이 줄지어 서 있고, 몇 남지 않은 상인들이 가게 앞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본다.
1970~1980년대, 이곳은 공항 노동자와 여행객, 동네 주민으로 붐볐다. 김포공항이 서울의 하늘길을 책임지던 시절, 하루에도 수천 명이 이 골목을 오갔다. 먹거리와 생활용품이 뒤섞인 시장은 ‘공항 사람들’의 일상을 지탱하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2001년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하고 주변에 대형 유통시설이 들어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상권은 급속히 쇠락했고, ‘유령 시장’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20년 넘게 재개발 논의가 이어졌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2025년 3월, 국제민간항공기구가 김포공항 인근 고도제한 완화 개정안을 채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30년부터 국내법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공항 주변 개발 여건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지만, 주민들의 표정은 복잡하다. “희망 고문만 20년”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의 구체적 기준 마련이 남아 있고, 개발 시기와 방식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불과 2㎞ 떨어진 방화동 방신전통시장은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시장 입구에는 초록빛 아케이드가 길게 이어지고 골목마다 제철 과일과 채소, 갓 튀겨낸 전과 어묵 냄새가 뒤섞인다. 명절을 앞둔 주말이면 손님들로 북적이며, 상인들의 목소리가 활기를 띤다.
방신시장은 이미 몇 해 전부터 변화를 모색해왔다. 간판을 정비하고, 공동쿠폰 제도를 도입했으며, 카페와 휴게시설을 마련해 머물고 싶은 시장을 만들었다. 청년 상인과 오랜 터줏대감이 함께 장을 지키며, 이곳을 지역 생활문화의 중심지로 키워가고 있다.
2025년 9월에 찾아간 공항시장과 방신시장은 불과 몇 분 거리지만, 다른 길 위에 서 있었다. 하나는 긴 침묵 속에서 개발의 문을 두드리고 있고, 다른 하나는 변화 속에서 현재를 살아간다. 두 시장의 모습은 도시 변두리에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여준다. 재개발은 오래된 풍경과 이야기를 지우고 새로 쓰는 일일까, 아니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또 다른 형태의 ‘살아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일까. 공항과 하늘길을 품은 두 시장은 각자의 속도로 그 해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김흥구 사진가

폐점한 가게 앞으로 한 상인이 지나가고 있다. 현재 공항시장은 폐점·철거 준비 등으로 상권이 침체된 상태다.

한 상인이 가게 앞 평상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다.

시장 상인들이 걸어둔 구호가 여전히 공항시장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한때 활기찼던 시장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하다.

공항시장에서 약 2㎞ 떨어진 방화동 ‘방신시장’은 조선시대에 포목점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된 곳이다. 여러 변화를 거쳐 현재까지도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방신시장에서 수십 년간 과일가게를 하고 있는 ‘과일마켓’ 사장님이 명절 앞이라 장사가 잘된다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방신시장의 한 가게에 놓인 ‘발 마네킹’이 여러 보온용품을 신고 있다.
* 김흥구 사진가는 한국 근현대사의 뒤틀린 풍경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국가’ ‘사회’ ‘이념’ 같은 거대 담론이 그것을 살아낸 개인들의 목소리를 종종 지워버린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의 작업은 제도화된 역사 바깥에 놓인 삶과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대표작으로 제주4·3에 관한 연작 ‘트멍’(2012~)과 ‘좀녜’(2002~201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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