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 고리마을에서 집단 이주한 1세대 주민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이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처럼 포구에 나와 고리마을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세상을 떠날 때 이들은 “고리에 가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이제 우리도 일본 후쿠시마처럼 핵발전소 건설로 인해 ‘고향을 잃은 상실감’에 대한 집단 위자료를 청구해야 하지 않을까.
골매마을 유민의 역사는 한국 원자력발전소 잔혹사와 함께한다.
1969년, 부산 기장군 고리마을 주민들은 마을에 전기 공장이 하나 세워지는 것쯤으로 생각했다. 원자력발전소가 세워진다는 것을 안 뒤 몸부림치며 저항했다. 고리마을 철거 당시 148호수, 162가구 주민 1250명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1969년 4월부터 사실상 강제로 집단 이주를 당했다.
그해 초겨울 골매마을은 집도 절도 없는 들판이었다. 이주민들은 공동으로 땅을 구입하고 집과 방파제를 지었다. 30년 세월을 피눈물로 버틴 주민들에게 믿기 힘든 소식이 다시 날아들었다. 최근 고리 원자력발전소가 신고리발전소 1·2호기에 이어 3~6호기까지 확대되며 그 부지에 골매마을이 포함된 것이다. 국가는 주민들에게 또 떠나라고 강제했다. 모질고 질긴 국가폭력에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골매마을 사람들을 삶의 벼랑 끝으로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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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매마을 주민들은 한수원의 회유와 협박에 지쳐갔다. 2016년 7월 마을 천도재를 지내고 골매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신암마을 해변가에서 골매마을 주민들이 집단 이주할 토목공사 기공식이 열렸다. 골매마을 주민들은 원자력발전소가 만든 ‘두 차례 슬픈 유민사’를 안고 애써 정붙인 제2의 고향을 다시 떠나게 됐다.
고리에서 골매마을로 이주한 주민들은 보상비를 받아 방파제를 만들었다. 보통 방파제는 해양수산부 관할인데, 이 방파제는 태풍 때문에 망가져도 해수부 지원 없이 마을공동체에서 보수해야 한다.
최근 ‘한·일 탈핵 천주교 생명·평화순례단’이 골매마을을 찾았다. 순례단은 주민들의 기구한 운명을 듣고 먹먹한 마음으로 마을을 순례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신고리핵발전소 5·6호기 건설 승인이 나기 전부터 공사를 시작하면서, 주민들에게 경작 중인 작물을 수확하라고 겁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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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매마을 사람들은 다시 집단 이주를 하기에 앞서 ‘천도재’를 지냈다. 천도재가 끝난 후 조상을 모신 당집을 철거하고 수호신 관련 모든 도구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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