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마치 대단한 범죄를 지은 것처럼 갇혀 있다. 부릅뜬 눈과 으르렁거리는 듯한 이빨은 너의 혐의를 더욱 짙게 한다. 그런데도 철창을 움켜쥔 채 억울함을 호소하는구나. 너는 그저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거운 형벌을 짊어지고 있다. 너희가 만약 말을 하고, 영화를 만든다면 무엇보다 먼저 ‘사람은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를 찍어야 할 거야. 2010년 경기도 고양시의 한 사설 동물원.
자신이 신문을 읽는다며 자랑할 정도로 똑똑한 원숭이가 있었다. 심지어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가져온 종업원에게 잔돈은 됐다며 인심을 쓸 줄도 안다. 하지만 아내는 그를 들들 볶을 뿐이었다. 작고 건강하지도 않은 그는 아내의 바가지를 6년이나 참고 견딘다. ‘죽음의 요정’이 아내를 데려간 뒤에야 비로소 해방감을 만끽한다. 그때, 운명처럼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 원숭이의 이름은 잭 크루즈.
잭은 지금 살해 혐의를 쓰고 허름한 기차역 카페에서 형사의 심문을 받고 있다. 잭의 영리함을 아는 늙은 형사는 단도직입적으로 심문하지 않고, 빙빙 에둘러가며 용의자가 자신도 모르게 단서를 흘릴 것을 기대한다. 잭은 동문서답과 엉뚱한 반문을 뒤섞어가며 살해 혐의를 부인한다. 아내의 돌연한 죽음도 의심스럽긴 하나, 형사가 지금 추궁하는 건 맥스 클레그에게 총을 쏜 혐의다. 형사는 오랑우탄 샐리의 증언을 내밀어보지만, 잭은 누가 오랑우탄따위의 말을 믿겠느냐며 비웃는다.
형사는 투토타본의 이름을 꺼낸다. 오, 투토타본! 그녀는 잭을 운명과 같은 사랑에 빠뜨린 존재가 아닌가. 부조리한 세상이 금지한 위험한 사랑, 그러하기에 더욱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 투토타본은 흰색 암탉이다. 형사는 현장에서 습득한 깃털을 들먹이며 잭의 심기를 건드린다. 잭과 투토타본과 맥스는 삼각관계였던 걸까. 물고 물리는 잭과 형사의 심리 대결이 고조되어가던 순간, 어디선가 암탉이 나타나고 원숭이 잭은 “내 사랑 투토타본!”을 부르며 뛰쳐나간다. 형사가 호루라기를 불며 총을 들고 쫓아간다. 마침내 붙잡힌 잭에게 형사가 외친다. “잭, 당신을 맥스 클레그 살해 혐의로 체포한다!” 끌려가면서도 잭은 투토타본을 애타게 부른다.
‘이레이저 헤드’로 잘 알려진 초현실주의 영화의 거장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생의 마지막에 내놓은 작품 ‘잭은 무슨 짓을 했는가?’는 17분짜리 짧은 흑백영화다. 주요 등장인물은 말하는 원숭이 잭과 형사 둘이다. 늙은 형사는 린치 자신이 연기했다. 커피를 갖다 주기 위해 잠시 등장하는 종업원은 린치 감독의 아내다. 막바지에 나오는 암탉 투토타본은 ‘꼬꼬’ 울음소리를 짧게 낼 뿐 대사가 따로 없다. 영화는 2016년에 촬영을 시작해 2017년에 완성됐다. 감독의 의도인지 알 도리가 없지만, 원숭이의 해에 촬영되어 닭의 해에 완성됐다는 사실을 알면 기분이 묘해진다. ‘종의 벽’을 뛰어넘는 위험한 사랑과 범죄, 사람의 입술을 가진 동물의 등장은 짧은 영화에 긴 생각을 남긴다. 린치는 관객에게 무슨 린치를 가한 걸까. 그는 자신의 작품이 “영화로 찍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이상한 세계에 관한 것”이라고 말해왔다. 1946년생 개띠 감독은 이 영화를 끝으로 2025년 눈을 감았다.
동물이 말을 하는 순간, 인간의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린치가 1980년에 만든 영화 ‘엘리펀트맨’은 다발성 신경섬유종증 때문에 코끼리와 닮은 얼굴을 갖게 된 사람의 아픈 고백을 들려준다. 정상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비열함을 거울처럼 비춘다.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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