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꽝남성 반꾸엇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씨와 쯔엉떤트엉이 2025년 4월28일 당시 숨진 가족들의 이름이 새겨진 위령비 앞에서 두 손을 모아 추모하고 있다.
세상 빛을 본 지 하루 반나절 만에 아기가 만난 건 콩 볶는 총성과 폭발의 굉음이었다. 이 아기를 살리려 엄마는 한껏 몸을 웅크려 품속의 응우옌티씨를 온몸으로 감쌌다. 이제 99살이 된 어머니는 무차별 살육의 현장이었던 바로 그 집에서 56살이 된 막내딸 곁에 앉아 “당시 숨진 남편과 세 아이가 너무나 보고 싶다”고 말한다.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 청룡부대는 1969년 2월6일 아침 남베트남인민해방전선 인민해방군 수색을 위한 ‘주민 소개’ 작전을 명목으로 꽝남성 주이쑤옌현 반꾸엇 마을에 들이닥쳤다. 한국군은 겁에 질려 방공호로 피신한 주민들을 끌어내 응우옌티씨의 집 마당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수류탄을 던졌다. 28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응우옌티씨(가운데)가 가족들이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하는 동안 어머니 쯔엉티쑤옌(왼쪽)과 언니 응우옌티호아가 이를 듣고 있다.
12남매의 막내인 응우옌티씨는 이날 아버지와 두 언니 그리고 두 살 터울의 오빠를 잃었다. 어머니 쯔엉티쑤옌(당시 42살)과 다른 언니들은 마당에 모인 사람들 뒤쪽에 있어 총탄과 파편을 피해 살아남았다. 이들은 지금도 학살이 벌어졌던 그 집에 살고 있다.
이웃에 살던 쯔엉떤트엉(당시 4살) 가족들도 방공호로 피했다가 한국군에 발각돼 응우옌티씨네 마당으로 끌려나왔다. 이 자리에서 어머니와 누나, 남동생, 여동생이 총격으로 숨졌다. 쯔엉떤트엉은 두 다리를 심하게 다쳐 푸투언 마을 보건소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이날 일찍 시장에 나가 있어 횡액을 피한 쯔엉떤트엉의 할머니가 오후에 돌아와 가족의 주검을 들판에 묻었다. 마을 밖으로 도망쳤다가 이틀 뒤 돌아온 아버지는 가족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유격대 활동을 벌이다 1974년 전사했다.

응우옌티씨 남매가 학살이 벌어졌던 마당을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가족들이 총에 맞아 쓰러졌던 곳에 검은콩이 펼쳐져 있다.
열 살에 고아가 된 쯔엉떤트엉은 할머니를 도와 논농사와 옥수수 농사를 지으며 이 마을에 살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물려받은 집에서 딸 셋과 아들 하나를 키웠다.
이들은 한국군에 학살당한 베트남 중부 17개 마을의 유가족 및 피해자 103명과 함께 2019년 4월4일 청와대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청원서에는 “여러 번의 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여전히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 역시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진상조사, 공식사과, 명예회복 조치 등의 요구를 담았다.

쯔엉떤트엉이 자신의 집에서 출가한 딸들의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하지만 청원에 대한 답은 받지 못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학살 사실이 확인되지 않고 베트남 정부와 공동 조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진상조사가 어렵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자신의 집 마당에서 가족과 이웃을 잃은 응우옌티씨 가족은 이런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혈육을 잃은 고통에 하루하루를 가슴 아파하며 살아온 이들은 “한국 정부의 냉담함이 무섭다”고 말한다.
단지 학살 현장인 집 마당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 시설을 만들고 싶고 이에 한국이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응우옌티씨는 “가족을 잃은 애통한 현장에 추모 공간이 생기면 엄마가 늘 기도하며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랠 것 같다”고 말했다.
쯔엉떤트엉도 “당시 희생자들이 묻힌 들판에 세워진 위령비가 낡고 초라해 사건이 있었던 곳에 제대로 세웠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되면 “한국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도 누그러질 것”이라 말했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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