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현씨가 2025년 2월27일 서울 중구 소공동 지하 자신의 시계수리점에서 시계를 고치고 있다.
서울 중구 소공동 한화빌딩 앞에서 지하 어귀로 들어서면 첫눈에 만나는 모습이 있다. ‘시계와 함께한 외길 60년’이란 팻말 뒤편에서 돋보기가 달린 안경을 쓴 채 골똘히 일하고 있는 수리기사를 창 너머로 만난다.
그 모습 아래 ‘숙명’이란 시구가 적혀 있다. “일터에 오면/ 키다리 시계가, 뻐꾸기가/ 일곱 번씩 아침 인사를 하고/ 멈춰진 시계는 나를 반긴다.” 이곳에서 일하며 2025년 2월 팔순을 맞은 김주현 시계장인이 지은 시다.
한국전쟁 당시 남북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경기 연천군 백학면 출신인 김씨는 고등학교 2학년인 1963년 방학 때 지인이 운영하는 시계방에 놀러 갔다가 시계에 반했다. 전방 지역 군부대 앞 시계업소에 가득한 시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롱한 빛과 오묘하고도 정교한 움직임에 그만 푹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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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시계 수리 일을 배운 김씨는 병역을 마치고 1973년 서울 명동에 자신의 점포를 내기까지 수리기사로 일했다. 8만원 받던 월급이 기술이 늘어감에 따라 1만원씩 올라 개업 전에는 32만원까지 올랐다. 자장면 한 그릇이 150원 하던 시절이니 상당한 거액이다.

김주현씨가 시계를 고치는 모습은 이곳을 지나는 행인들이 창을 통해 볼 수 있다.
실전에서 어깨너머 익힌 기술이라 늘 시계 관련 서적을 보며 독학을 이어간 김씨는 1979년 ‘시계수리 기능사 1급’ 시험에 합격한다. 관련 서류 제출이 늦어 수리점에 걸린 자격증은 1980년에 발행된 것이다.
현재의 소공동 지하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이다. 이곳을 운영하던 업주가 함께 일하자고 제안해 창문 앞 공간과 복층 위 공간을 나눠 김씨가 수리를 도맡았다. 김씨보다 6살이 많은 동업자가 2005년 암 투병 끝에 작고한 뒤 아래 공간으로 내려와 홀로 ‘소공명품시계수리센타’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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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숙련도를 정점까지 끌어올리고 싶었던 김씨는 ‘대한민국 명장’에 도전하려고 ‘시계 드라이버 연마기계’를 개발해 특허출원을 준비했다. 명장 부여 조건에 해당 분야 특허출원 이력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데 아쉽게도 2012년 시계수리 직종은 열차조작, 중장비운전, 조경, 사진, 세탁 등 15개 직종과 함께 명장이 폐지됐다. 김씨는 자신이 개발한 2종의 기계를 시계공구제작업소에 기술이전 했다.

김씨가 특허를 출원하려고 개발한 시계 드라이버 연마기.
이곳은 관광객이 많은 지역 특성상 외국인 손님이 많이 찾는다. 미국, 일본, 중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여러 가지 시계를 가져온다. 김씨는 이들이 맡긴 시계를 고칠 때 특히 공을 들인다. 고작 3~4일뿐인 수리 기간에 완벽하게 손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돌아가서 문제가 생기면 다시 올 수도 없는 상황이라 고친 뒤에도 시간이 정확히 맞는지 수시로 살펴본다.
60년 경력의 장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후배들도 이따금 있다. 그럴 땐 문제가 있는 부분의 사진을 찍어 보내라 한다. 기술을 익힌 세대가 달라 사용하는 부품 명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김씨는 일본식 명칭에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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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 5시20분에 수리점 문을 여는 김씨는 “일이 너무 재밌다. 일하는 동안 잡념이 전혀 들지 않아 좋다”고 말한다.

수리점 한쪽에 수리를 맡긴 뒤 찾아가지 않은 시계들이 걸려 있다.
스마트워치가 대중화해 수리점을 찾는 고객이 많이 줄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줄었던 손님이 최근 들어 다시 늘고 있다. 진짜 멋쟁이는 바늘이 가는 기계식 시계를 찬다”며 자신의 손목을 들어 롤렉스 시계를 보여준다.
글쓰기도 즐기는 시계장인은 “시계에는 장인의 열정과 혼이 있고 기계학적 철학이 있으며 보석같이 아름다운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며 “이와 동행하는 나는 행복하다”고 적었다.

김주현씨가 자신의 수리점 앞에서 웃고 있다. 한때 두 명이 함께 일했던 이곳엔 창문 앞 외에도 복층으로 된 또 하나의 작업공간(김씨 머리 위)이 있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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