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물들고 찬바람이 불면 그때가 떠올라 가슴이 미어진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김의현씨의 엄마 김호경씨가 말한다.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보름여 앞둔 2024년 10월12일 유가족과 시민들이 서울 도심 속 청계천 둔치를 함께 걷는다. 커다란 왜가리 하나가 길을 인도하려는 듯 이들 앞으로 날아오른다.
앞서 이들은 2022년 10월29일을 상징하는 오전 10시29분 서울 중구 을지로1가 ‘별들의 집’에 모였다. 10월26일 오후 6시34분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시민추모대회를 알리려 나선 길이다. 6시34분은 당시 현장에서 압사 위험을 알리는 첫 신고가 112에 접수된 시간이다. 이미현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별들의 집에 들어온 뒤 유가족들이 시민 후원을 받아 여름 내내 매듭 팔찌를 만들었다”고 소개하며 이 ‘기억팔찌’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길 출발에 앞서 당부했다.
참가자들은 걸으며 ‘진실을 향한 걸음, 함께하겠다는 약속’이란 글귀가 적힌 벽보를 거리 곳곳에 붙였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물가에서 쉬고 있던 시민들은 이들의 등장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깃발에 새겨진 ‘이태원 참사’란 글귀를 보고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시민도 있었다. 산책하는 시민들에게 길을 내어주려 청계천 양쪽 둔치로 나뉘어 걸은 참가자들은 전태일다리를 건너 한쪽으로 합쳤다. 그리고 오간수교 아래 계단에 앉아 김밥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김호경씨가 울음을 삼키고 말을 잇는다. “스스로 웃어도 울어도 밥을 먹어도 안 되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살았다. 함께한 시민들 덕분에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어 고맙다.” 성북구에서 온 시민은 “세 아이의 엄마다. 참사 소식을 들은 날 아이들이 안전한지 확인할 때까지 숨이 막혔다. 바로 다음날 이태원에 가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이 아이들의 희생이 역사의 교훈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친구 결혼식 참석 뒤 이태원에 들렀다 돌아오지 못한 김의진씨의 엄마 임현주씨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책 제목을 보고, 우리 엄마들은 결코 아이들과 헤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광주 5·18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의 아픔을 다룬 한 작가가 이태원 참사 이야기도 작품에 담아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별들의 집에서 청계6가 종착지까지 함께 걸은 이고우나(31)씨는 시종일관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이태원 참사 관련 행사에 처음 참가했다는 이씨는 “희생된 분들의 사진을 보니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란 실감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주영씨 아버지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주말을 즐기는 이들을 보니 ‘내 딸과 걸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죽을 때까지 이 허전함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함께한 시민들 덕에 외롭진 않다. 유가족이 아닌 어른으로서 청년의 힘든 삶을 고치려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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