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나비넥타이에 반짝이 조끼를 입은 최명천(87) 선수와 물방울무늬 치마를 입은 천명수(71) 선수가 사뿐사뿐 발을 옮기며 몸을 뒤튼다. 한 손을 맞잡은 채 다른 손으로 리듬에 맞춰 허공을 찌르며 몸을 돌린다. 두 선수가 댄스스포츠 라틴댄스 종목 중 가장 빠르고 경쾌한 ‘차차차’를 한 몸처럼 펼쳐 보였다. 이들과 함께 프리스타일 단체전에 경기 용인 대표로 출전한 남자 선수들은 모두 칠십 대 후반부터 팔십 대의 고령이다. 파트너인 여자 선수들은 육칠십 대의 나이다.
이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플로어를 누빈 곳은 제17회 경기도장애인생활체육대회가 2023년 9월22일부터 이틀간 펼쳐진 고양시 어울림누리 체육관. 댄스스포츠를 비롯해 농구·배드민턴·수영 등 13개 생활체육 종목과, 단체줄넘기·휠체어경주·윷놀이 등 11개 명랑운동회 종목에 참가한 장애인들이 종목별 경기장에서 그간 갈고닦은 기량을 펼쳤다.
1959년 해군 장교로 임관해 1986년 대령으로 전역한 최명천씨는 20년 전 허리 수술을 받았다. 청력도 크게 떨어져 청각장애를 겪고 있다. 이런 불편 속에 꾸준히 재활운동을 하며 기흥노인복지관에서 1년여 동안 댄스스포츠를 익혔다. 그는 이날 단체전에서 우승의 영예를 누렸고, 비장애인 파트너와 출전한 개인종목에서도 입상했다.
이날 대회에는 시설을 벗어나 자립생활을 하는 서성준(34) 선수도 참가했다. 발달장애를 겪어 일곱 살 때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한 그는 27년 만인 2022년 10월 이른바 ‘탈시설’을 했다. 장애인 참여형 일자리를 얻어 환경미화를 하며, 오산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생활체험홈에 살고 있다.
평소 텔레비전에서 춤추는 장면이 나오면 거울을 보고 따라 하기를 즐기는 그를 주변에선 ‘끼쟁이’라 부른다. 대회를 앞둔 2023년 3월부터 오산성인장애인씨앗야학의 발랄댄스 수업에 참여해, 지적장애인 6명과 맹연습했다. 자유장르 삼사십 대 종목에서 관중의 환호와 탄성을 자아내며 우승한 서 선수는 “좋아요”라고 목청껏 외쳤다.
생물의 종은 진화하지만 개별 생명체는 노화한다. 진화하기 위해 노화한다는 가설도 있지만, 아직 주류 학설로 인정받진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노화 과정에서 장애를 겪게 된다. 성장기에 사고로 숨이 멎지 않는 한, 노화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겪는 건 모두에게 필연이다.
막다른 삶의 시간 속에 장애인과 뚜렷하게 구분 지으려는 비장애인이란 이름은 ‘미장애인’이 더 걸맞은 것일 수 있다. 이미 우리 곁에 다가온 장애도 그 정도가 다를 뿐 점차 깊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구분 짓는 일보다 나누고 함께하는 것에 품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주거공간, 교통수단,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까지… 최명천, 서성준 그리고 장차의 나를 위한 일이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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