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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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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과 몸

등록 2014-08-26 18:14 수정 2020-05-03 04:27

마르크스가 사상사에 공헌한 바를, 거창하지만 사실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유물론’이란 개념으로 과연 요약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도 너무 익숙하지만 종종 잊고 살기 십상인 ‘몸’이란 개념이 아니고? 마르크스가 기존 경제학들을 깡그리 비판하면서 가치의 기원으로 ‘노동’을 제시한 것도, 가치는 수요·공급 같은 추상적인 숫자가 아니라 오직 몸의 움직임으로만 생성됨을 그는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잉여가치’도 생산된 총가치에서 ‘노동력 소유자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산수단의 가치’(‘필요노동’)를 제한 값, 즉 총가치에서 ‘몸뚱아리 유지비’를 제한 값으로 정의된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썩어가는 몸, 정신만 똑바로 차리라? </font></font>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계급 구분은 또 어떤가. 계급은 단지 부자와 빈자의 구분이 아니다. 계급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자의 구분이다. 즉, 프롤레타리아트는 자기 몸뚱아리밖에 팔 것이 없는 사람들로 정의된다. 무엇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그리고 그에 봉사하는 관념철학)의 폐해를, 몸에 대한 정신의 기괴한 비대증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소외’와 ‘물신’을 이야기할 때 그랬다. 소외나 물신이, 노동의 창조물이 노동의 창조주인 것처럼 오인되는 환각 현상을 일컫는다면 말이다. 다른 사이비 철학자들과 달리 마르크스가 잊지 않은 것, 그것은 육신이다.

최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소한 육신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마르크시스트인 것 같다. 사실 물질과 말초적 쾌락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정신적 성숙만을 강조하는 상투적인 설교는, 정작 육신을 도구화하고 육신을 착취하는 물질적 시스템에 대해서는 함구함으로써, 그 시스템을 방관하거나 묵인한다. 그런 상투적 설교에는, 썩어가는 몸에서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라는 전제가 숨어 있는 게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는 그와는 정반대다. 그가 ‘물질주의’와 ‘무한경쟁’ 시스템, 나아가 ‘새로운 형태의 가난과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 경제모델’에 저항하라고 종용할 때, 더 정확히는- 지금은 실패가 확실해져서 허울만 남아버린 신자유주의식의- ‘물신숭배’ 자본주의에 저항하라고 종용할 때, 그는 분명히 썩어가는 정신만큼이나 썩어가는 육신을 걱정하고 있다. 그는, 물질이 잘못됐으니 정신이라도 챙기라는 기존의 구태의연한 메시지가 아니라, 잘못된 정신은 잘못된 물질에 기인하고, 고로 올바른 정신만으로 잘못된 물질을 구제할 수는 없으니, 거꾸로 올바른 물질로 올바른 정신까지 복원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 역시 “의식이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을 간파한 까닭이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혀 말고</font></font>

프란치스코 교황이 ‘실천’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천이란 다름 아닌 몸의 움직임인 거다. 단지 혀의 움직임, 즉 말뿐이 아니다. 또 그것이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이 ‘몸소’, 차에서 내려 군중 속으로 걸어 들어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손을 잡은 이유일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몸을 움직인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위정자들이 못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낮은 곳을 향하겠노라고, 땅으로 내려가겠노라고 말만 하지, 그들의 몸은 아직도 저 위에, 구름 위에 있다. 그들은 한국의 포이어바흐들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외계인설도, 말씀만 땅에 내려와 있지 몸뚱아리는 여전히 천상을 향하는 기괴한 유체이탈 덕분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끝내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는 땅으로 ‘몸소’ 내려오지 못했고, 끝내 대지를 물들인 노란리본을 ‘몸소’ 달지 못했다. 그녀는 대지와 하늘을 연결하는 탯줄이자 생명선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 육신을 천상에 두고 왔기 때문이다. 반면 교황은 그것을 ‘몸소’ 했다. 교황은 아는데 정치인들은 모르는 것, 그것은 “진리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라는 사실이다. 육신을 움직여라, 혀 말고.

김곡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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