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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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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민생스런 질문 하나

등록 2013-11-02 07:37 수정 2020-05-02 19:27

지난 대선을 자꾸 떠올리게 하는 작금의 시국 때문인지 몰라도, 필자는 지난해 대선 토론 방송에서 ‘시민 질문’을 사칭하고 나온 질문들을 떠올리며 그 식상함과 무의미함에 뒤늦은 분개 새삼스레 터뜨리는 통에 주위의 빈축을 사고 있다만, 그래도 기어이 하련다. “요즘 시장에 1만원 들고 가면 도무지 살 게 없는데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그냥 물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냐는 얘기다) 등등의 두루뭉술한 질문에 ‘시민 질문’ 같은 타이틀을 다는 행위는, 작금 각급 마트들의 1만원 랍스터질에 준하는 기초상거래질서 교란 행위라는 얘기만큼은.
이에 필자는 사과나무 한 그루 심는 심정으로 4년여 뒤에 던지고픈 ‘시민 질문’ 하나 이 자리에 남기고자 하니, 이하 그 질문.

인도 거침 주행 오토바이 해결책은

『 현재 ‘서민’ 또는 ‘민생’이라는 용어는 뭔가 시국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때마다 ‘돌아가자’라고 외치며 일제히 몸을 피하는 정치적 참호 및 벙커 된바, 언제 거기 있어보기는 했냐 돌아가자고 하게, 라는 서민들의 준열한 질타로 인한 오명 씻을 수 있도록 매우 간단하고도 민생스러운 문제 한 가지 드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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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오토바이 관련 문제들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을 다음 토론 때까지 제출해주시기 바란다. ① 지금 이 시간에도 인도를 거침없이 주행하고 있는 오토바이들에 대한 해결책은? 단, 휠체어나 유모차 등의 통로는 확보해줘야 한다는 조건과 주로 배달이나 소화물 운송 등 생활·생계에 직결된 오토바이의 기능성을 최대한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 이 대목에서 ‘지속적인 단속을 더욱 강화하겠다’라거나 ‘그러지 맙시다, 플래카드를 더 많이 걸겠다’ 등의 답변 내놓으시면 바로 실격임을 알려드리겠고. ② 폭음 오토바이에 대한 해결책은? 거의 헬리콥터 이륙음에 준하는 사운드 뿜는 폭음 오토바이(및 자동차)들은 대도시의 주거조건을 도륙하는 주요인으로 자리매김된바, 이는 여름철이나 심야시간대에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안다. 머플러 불법 개조가 너무 많아 단속 같은 거 일일이 하기 힘들고 더구나 강압적 단속은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거. 그러니까 이렇게 문제로 드리는 거잖어. 』

그런데 여기까지 적고 보니 지난 정권 말기, 웬일인지 도로 곳곳에 ‘오토바이 인도 주행을 집중 단속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던 기억이 난다. 안 그래도 별로 없는 인기, 공공질서 캠페인 따위로 까먹을 일 할 리 없었던 그 정권이 대체 웬일로, 싶어 봤더니, 그 옆에 ‘경축 G20 정상회담’ 플래카드가 줄줄 붙어 있었다. 그럼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접대 마친 뒤 플래카드는 깨끗이 걷혔고, 그 성공적 접대를 축하하듯 오토바이들은 호쾌하게 플래카드 걸렸던 인도를 주행하고 있었더랬다. 또한 지금 정권에선 얼마 전 ②번 문제 해결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것 같더라만, “갑자기 이럴 때만 (단속)하는 게 웃기잖아요. 평상시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라는 그들의 말처럼 집중 단속 계속해서 이어간다던 10월 현재까지 HD모 오토바이 매장 주변은 여전히 헬기 이착륙장이다. 기왕 이럴 거면 그 앞에 큼직한 H자라도 하나 그려주지 싶다.

‘시민 질문’ 문제은행 구축해본들?

이렇듯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간단한 생활 문제 하나에도 이리 DNA 뚜렷이 드러내시니들, 이참에 4년 뒤를 대비해 지금부터 ‘시민 질문’ 문제은행이라도 구축해 간편하고도 확실히 간을 보자. 아아, 또 속았네, 이럴 수가, 같은 얘기 이젠 정말이지 그만 나오도록.

근데 그런 거 생겨봐야 유관기관 합동으로 구축한 알바은행이 나서 궤멸시키지 않겠냐고? 하긴 그렇겠다. 충분히 가능하다. 알바천국 대한민국에선.

한동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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