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기념관 제공
왜 조선 건국의 기초를 닦은 삼봉 정도전(鄭道傳·영정)은 글도 수억 남겼고 매우 중요한 인물인데 쉽게 잡고 읽을 수 있는 책이 없을까? 사실 (三峰集)은 옛날에 번역돼 한국고전번역원 웹사이트에 실려 있다. 정도전만 그런 게 아니라 많은 문집이 이미 국역돼 있다. 문제는 읽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가? 그렇다. 지금까지 우린 손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조선이 어떤 나라인가. 무려 500년을 버틴 왕조다. 중국에도 이런 탄탄한 왕조는 없었다. 그 조선의 정치적 기초를 세운 이가 정도전인데 우린 그를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신화화는 못할망정 이럴 수 있는가? 조상에게 죄짓는 기분도 들지 않는가? 원전이 읽혀야 저변이 생겨 그 흔한 평전 같은 것도 나와 더욱 드라마틱한 탐구가 일어나고, 그를 통해 조선 건국의 콘텍스트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순환 노선의 중요한 변곡점에 있는 철로가 왕창 통으로 끊어져 열차가 더 이상 달릴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오늘 민통선 안에 있는 매운탕집에 가서 메기매운탕을 먹고 나와 북한 쪽 오성산을 바라보다가 또 갑자기 정도전 생각이 났다. 끊어진 우리의 정신적 38선을 다시 이어야 한다. 정도전의 글 중엔 국가의 제도나 궁궐 건물의 용도를 최초로 규정하는 기념비적인 문장이 많다. 전 왕조인 고려 불교의 논리를 철저하게 봉쇄하는 조선 유학의 논리를 (佛氏雜辨)이라는 문장의 성채로 방어해냈다. 왕(王)이라는 바지사장을 내세워 조선이라는 사업체를 운영하고자 한 ‘서생의 복심(腹心)’이 어떠한 문장과 논리로 표현돼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은가?
지금은 카논(canon)화의 지적 노력이 필요할 때다. 도서관에 매장한 우리 고전을 다시 살려서 안방으로 모셔야 할 시점이다. 형해화돼 있는 옛글들에 새로운 질서와 체계를 부여해서 그것을 ‘정전’(正典)화해야 한다. 제자들이 묶어낸 가 오늘날 공자를 대변하듯이 정도전을 대변할 수 있는 도플갱어 같은 책을 후대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작업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한 ‘선집’(選集)이 아니라 ‘정전화 작업’이다. 정선(精選)이되 재탄생에 가까운 정선이어야 한다. 긴 글은 과감하게 쳐내고, 문장 깊숙이 숨겨진 본의는 문면에 뽑아올려 강조해야 한다. 제목이 없는 글에는 제목을 붙이고 문집의 목차와는 달리 기승전결이 있는 목차를 새로 짜야 한다. 그리고 책 제목을 붙인다. ‘국가를 상상하다’의 의미를 담은 ‘상국’(想國)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상국’이 정도전을 대변하도록 해야 한다.
어찌 삼봉만의 문제이겠는가. 퇴계도 마찬가지고 율곡도 마찬가지다. 다산 정약용은 아마 이런 카논화의 작업을 거치면 1천 쪽 짜리 책이 나올 것이다. 이 한 권만 읽으면 다산은 ‘다 뗐다’는 말이 나올 수 있게 글을 정선해내야 한다. 그렇게 한국 고전을 쌓아가야 한다. 중국 고전 옆에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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