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구본준
나는 건축에 ‘문외한’(門外漢)이다. 하지만 집에 대해서는 문외한이 아니다. 문 안에서 벗고 생활하는 ‘문내한’(門內閑)이기 때문이다. 사실 집을 말하고 싶다. 어떤 대상에 호기심이 들면 먼저 그걸 책 삼고 싶은 병이다. 집이 그렇다. 빛이 고이는 집을 보면 침이 고인다. 그 안에 흘러들어 밥 짓고 싶고 책을 펴들고 누워 있고 싶다. 그렇게 오랜 휴식 끝에 한 사람의 인생이 바람처럼 소멸되는 집. 아는 건 없어도 상상할 수 있는 건 풍성하다.
스리랑카에 있는, 제프리 바와(1919~2003)의 집(사진)을 인터넷에서 보고 놀랐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건축가가 오랜 세월 다듬고 수정한 자택은 빼어난 미학으로 관광명소가 되어 있었다. 내가 놀란 건 집 안에 정원이 들어와 있어서다. 소파 옆에 화분이 아니라 화단이 있다. 이걸 본 순간 내가 상상했던 ‘미래의 집’이 떠올랐다.
흙냄새가 나는 집이다. 집에 흙을 끌어들여 집 안에 흙의 향기가 나고 흙가슴을 베고 잠들 수 있는 집. 나의 로망이다. 옛날 사람들의 집엔 항상 마당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우리 삶에서는 마당이 사라졌다. 흙도 배제되었다. 후원이 없는 집은 배수진이 없는 전투와 같아 어느 한 집 안녕하지 못했다.
나는 흙냄새가 너무 좋고 맨발로 산책하기를 즐기기도 한다. 만약 집 안에 흙이 지나는 길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그러려면 집이 거미처럼 생겨야 한다. 거미의 발처럼 둥글고 속이 비어 있는 거대한 목재(혹은 금속)가 집에서 뻗어나와 땅에 깊숙이 박힌다. 땅의 흙이 그 관으로 들어가 집 안으로 이어진다. 폭은 1m 정도? 흙은 마루 밑을 지나 반대편 벽을 뚫고 나가 다시 땅에 박힌다. 흙의 미생물들이 그 관을 통해 오갈 수 있게 만든다. 거미의 다리가 여덟 개이니 네 번 가로지르면 이 괴물 같은 거미집이 완성된다. 집 밖으로 드러난 발목부터 무릎까지는 구멍을 뽕뽕 뚫어 공기와 빗물이 스며들게 하고 뾰족한 식물을 심는다. 멀리서 보면 털 같을 것이다. 거미흙집의 습격이다. 마루로 지나가는 부위는 군데군데 뚜껑을 열어 식물을 심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이 흙을 다시 빨아올려 집의 기둥을 세운다. 기둥 속에는 대나무를 심어볼까? 아무튼 외벽이 두꺼운 구멍 뚫린 콘크리트 속을 나무와 흙이 고공비행해 2층에 도달한다. 도달해서 다시 흙은 2층 구석구석으로 퍼진다. 둥글게 흙의 오아시스를 만들고 일본 정원의 미니어처를 꾸며본다.
이런 생각을 말하자 사람들은 집 안에 벌레가 끓을 거라느니 흙이 죽을 거라느니 했다. 하지만 바와의 집에는 흙이 살아 있었다. 나무가 흙을 잡아주고 있었고, 땅 밑의 기운이 계속 흙에 에너지를 보내주고 있었다.
이 사치스러운 생각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 건축가와 식물학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글은 직접 쓰면 되지만 사진은 배워야 한다. 땅의 도움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와이프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베스트셀러가 한 권 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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