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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썸’의 완성도!

‘19금 로맨스’ 열풍에 기댄 책
등록 2014-06-07 13:00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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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가, 번역가, 편집자들과 로맨스 소설에 대한 잡담을 나누었다. 주로 19금 로맨스에 테마가 집중됐다. 나는 장르소설 출판에 도전장을 내미는 출판사 대표 자격으로 이야기를 경청했다. 거기엔 필명으로 로맨스 소설을 두 권이나 펴낸 작가분도 있었다. 그는 옆 편집자 손에 들린 를 보더니 “저건 내 소설에 비하면 19금 축에 들지도 못한다”고 했다. 그 분홍색 표지의 소설을 그날 선물로 받았는데 아직 떨려서 못 읽고 있다.

혹자는 나에게 인문 출판이나 지긋하게 할 것이지 별 시답잖은 데 눈길을 돌린다고 할지 모른다. 나는 인문과 장르가 상호 모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전력이 분산될 수는 있겠지. 작금의 로맨스 선풍은 전자책 패러다임 시프트와 연동돼 돌아가는 것이다. 종이책 매출 감소로 전자책을 생각하다보면 지금의 인문서로는 답이 안 나온다. 인문서는 전자책으로 읽기엔 너무 길고 진지하다. 전자책 시장은 당분간 문학과 실용지식으로 양분될 것이다. 문학도 장르가 대세일 것이다. 새로운 매체에 진입하고 자신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고 본다.

그렇다면 왜 추리, 스릴러, 무협 다 놔두고 로맨스인가. 로맨스가 미개척 영역이기 때문이다. 무협, 판타지, 추리는 연달아 한국 시장에서 르네상스기를 맞았던 종목이다. 그런데 하이틴이 아닌 성인을 대상으로 한 로맨스 소설은 아직 절정을 맞지 않았다. 10대 초·중반을 상대하던 하이틴 소설에 10~20년을 더 플러스시킨 연령대의 시장을 열어볼 만하다. 로맨스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집요하고 끝도 없으며 공통의 문제다. 로맨스는 음양이고 사랑이다. 사랑은 감정이고 심리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로맨스의 핵심이 ‘고도의 썸타기’라고 생각한다. 추리와 서스펜스에 밀실이 존재하듯, 로맨스엔 썸이 존재한다. 썸을 제대로 못 타는 로맨스는 로맨스도 아니다. 온갖 미디어들이 로맨스를 요리하고 있지만 텍스트의 마술만큼 더 저렴하면서도 섬세하게 썸을 묘사할 영역이 있을까? 그래서 로맨스는 매력 있는 출판 종목이다.

요즘 ‘엄마 포르노’라는 말이 운위된다. 19금 로맨스를 안 좋게 부르는 미디어 용어다. 과연 그 많은 엄마들이 포르노그래피에 매료됐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썸’에 매료된 것이다. 에로틱은 썸의 종착지이며 후희(後戱)에 불과하다. 무엇이 본질인지를 읽어내야 한다.

그래서 완성도가 중요하다. 순문학과 달리 장르엔 공식이 있다. 물론 공식은 중요하다. 지금은 이 썸이 남자의 물질적 후광(얼굴, 몸매, 돈)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하지만 공식을 넘어서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로맨스가 복제 기술이 아닌 창작과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집념의 공간이 될 수 있다. 연작 형태를 통해 떼돈을 벌어보겠다는 욕망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과도한 19금 요소에 집착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중요한 것은 썸의 완성도다. 썸의 창의성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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