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서는 도서정가제에서 제외시켜 과도한 할인을 허용한 현행법에 나는 좀 불만이다. 물론 개인적인 이유인데 내가 ‘실용’(實用)이라는 단어를 끔찍하게 아끼기 때문이다. 실용은 “앎과 실천을 분리하지 않고, 실지로 베풀어 유용한 것을 참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을 말한다. 단어의 원의를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실용을 싸구려 취급해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요즘 인문학의 실용화가 대세다. ‘인문학’ 제목을 달고 실용서로 등록해 할인 판매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먹고사니즘이라서 심하게 비판할 수도 없다. 나부터도 구간을 반값으로 파는 판국에 누굴 욕할 수 있겠는가. 경계를 넘지 않으려 할 뿐이다. 다만 실용나라로 파견 보낸 인문 대감의 스캔들이 ‘인문의 굴욕’이냐 ‘실용의 굴욕’이냐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는 실용의 굴욕이라고 본다.
실생활에 유용한 책들이어야 할 실용 분야에 곰방대로 뜬구름 피우는 책이 난무한다면 그러잖아도 팬시화된 실용시장의 물이 더 흐려질 것 아닌가. 실용의 명운을 염려하며 판세를 지켜보던 어느 날 내 안에서 독수리오형제 같은 의협심이 치솟았다. “실용의 이름에 어울리는 ‘실용 그 자체의 실용’을 내보자.” 그래서 공글리기 시작한 것이 ‘실용의 재발견’ 시리즈다.
무엇을 담는가. 바로 궁리를 담는다. 생활의 이치를 담는 실용서의 재발견이다. 주변에 널린 게 탐구 대상이다. 요즘 매일 마시는 ‘홍차’만 놓고 봐도 제대로 된 홍차 입문서가 없다. 홍차와 다른 차의 차이가 무엇인지, 찻잎을 산화시킨다는 게 무엇인지, 다르즐링·스리랑카·네팔·중국 등 산지마다 특징은 무엇인지, 홍차 가공법에는 어떤 게 있는지, 맛의 차이, 첫맛과 끝맛, 우려내는 시간, 빛깔 등을 궁리하고 싶은 것이다. 이쯤 되면 홍차 탐구다. 산지를 돌아다녀야 하고, 공장을 견학해야 한다. 외국 책도 많이 읽어야 한다. 책도 500쪽이 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게 실용인가? 실용이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젊을수록 음식의 식재료에 대해 잘 모른다. 나부터 그렇다. 수많은 동식물의 생태, 시기와 가공법, 저장법 등을 말이다. 음식이 먼저인가 식재료가 먼저인가. 당연히 식재료가 먼저다. 식재료를 몰라도 음식을 요리하고 먹을 수 있지만, 알아야 더 풍성해진다. 삶이 더 진보한다. 이것도 실용이다. 생각 같아선 어떤 ‘미친 저자’만 구해진다면 한 해 동안 자연에서 나는 식재료(인간의 손이 닿은 작물은 제외)만으로 요리해서 먹고 사는 프로젝트를 한 뒤 그 결과를 일기 형식의 책으로 내고 싶다. 책 제목은 ‘와일드 맨’이다(‘와일드 우먼’도 가능할까?).
제대로 된 실용 궁리는 반드시 인문을 자극한다. 인문(人紋)을 자극해 인문(人文)을 뱉어내도록 되어 있다. 지난해에 나와 주목을 모은 (사진) 같은 책이 정석에 가깝다. 물론 이 책을 보고 ‘실용의 재발견’ 시리즈를 구상한 것은 절대 아니다. 강호의 실용 달인들이 글항아리의 문을 열심히 두드려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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