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존재는 컴퓨터와 펜 태블릿이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디지털화돼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데서 벗어나 컴퓨터에 직접 그림을 그리려고 고안된 도구가 펜 태블릿이다. 펜 태블릿 앞의 연필심같이 생긴 플라스틱 심이 매끄러운 태블릿 바닥에 문질러져 그 플라스틱 심이 다 닳아 없어질 때쯤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탄생한다.
이 제작에 들어간 2010년 9월부터 2011년 4월까지 나는 이라는 이야기에 생명력을 넣으려고 매일 펜 태블릿으로 컴퓨터에 그림을 그렸다. 애니메이션 제작이란 캐릭터들의 감정이 관객과 만나게 하려고 컴퓨터의 빈 백지 위에 선으로 된 그림을 조금씩 그려가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애니메이션 산업을 아이디어로 승부해 적게 일하고 떼돈을 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양 생각하지만 사실 애니메이션 작업은 90%가 노동이다. 애니메이션은 뜨개질이나 십자수와 같다. 매일 조금씩 그려나가다 보면 영화 한 편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 지루한 작업엔 딱히 이렇다 할 꼼수가 없다. 내가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루하루 그림을 그리면 꼭 그만큼 영화가 완성된다. 영화 속 시간 1초에 12장씩 그리다 보면 그림 안에 있는 무언가가 움직이고 생각하고 기뻐하고 고통받기도 하며 생명을 얻는다. 다시 말하지만 애니메이션의 90%는 노동이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얽어내는 작업은 기획 초반에 끝나고 이후부터는 지루한 시간 동안 뚝심 있게 노동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뚝심으로 버텨가는 90% 손노동의 가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마치 애니메이션 한 편이 10%도 안 되는 아이디어만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에겐 효율적으로 큰 효과를 거두는 산업이라서 애니메이션이 구미가 당기겠지만 대부분의 애니메이터들은 어찌 보면 지루한 그 작업의 순간들에서 만족을 얻는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환희를 느끼는 순간은 시나리오를 처음 쓸 때도 아니고 콘티를 완성했을 때도 아니다. 한땀 한땀 그려가며 생각했던 무언가가 눈앞에서 조금씩 살아날 때, 펜 태블릿을 쥐고 하루 종일 부지런히 노동한 덕분에 손목이 저려 펴기도 힘든 그런 하루를 보낸 뒤 그만큼 모양새를 갖춰가는 영화를 바라볼 때, 환희는 그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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