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없다. 우리가 계산해봤더니 종합편성채널(종편) 1곳이 생존하려면 광고수입이 한 해 3천억원은 돼야 한다. 종편이 4곳이니 한 해 광고비만 1조2천억원이 필요하다. 대기업들이 기존 매체 광고를 조절하더라도 그걸 맞추기란 불가능하다. 몇 년 안에 최소한 두어 곳의 종편사는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실에서 언론사가 그냥 망하는 거 봤나? 더구나 종편 4사는 영향력이 막강한 신문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대기업들을 얼마나 어르고 겁박하겠나. 요즘은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최근 대기업 홍보 담당 임원에게서 들은 얘기다.
한국의 재벌 대기업은 민주주의를 불편해한다. 전근대적 지배구조와 반노동자적 기업문화 탓이다. 종편 4사의 모기업인 ‘조·중·동·매’는 한국의 대표적 친재벌 언론사다. 재벌의 ‘동지’다. 그러므로 종편 방송의 대거 출현은 재벌 대기업에 좋은 일이다. 결국 대기업 홍보 담당 임원의 고민은 ‘돈’ 문제다. 한국 방송광고 시장의 규모와 추세에 비춰 ‘조·중·동 방송’이 원하는 만큼, 생존이 가능한 만큼, 대기업이 광고비를 집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광고를 주면 (홍보성) 기획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뉴스에서도 다뤄주겠다’는 낯뜨거운 제안을 공개적으로 하는 종편사도 벌써 출현했다. 대기업의 홍보 담당 간부가 “대기업의 광고집행력은 언론을 컨트롤하는 힘이었는데, 이젠 부담이 될 것 같다”고 할 지경이다. 종편 4사나 대기업의 안중에 언론의 금도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은 없다.
여론 다양성을 보호하려는 신문·방송 겸영 금지 원칙을 허문 종편 4사의 등장은 ‘보수세력 영구집권’을 꿈꿔온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사회의 공기인 언론을 사익 추구의 흉기로 사용해온 ‘조·중·동·매’의 정치적 야합 산물이다. 그 야합이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일지는 내년 총선·대선 과정을 거치며 여실히 드러날 것이다. 종편 4사 출현 과정의 불법·무법·막장 특혜 스토리는, 종편사들이 정권교체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리라 예상케 하는 중요한 근거다. 민주적 법치가 그들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중·동·매’는 그동안에도 ‘토건족의 잔칫상’에 불과한 4대강 죽이기, 사법주권과 공공정책의 근간을 훼손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날치기 처리를 ‘MB의 구국의 결단’으로 치켜세워왔다. 반대 시민들을 ‘무책임한 괴담 선동자’ ‘시대착오적 쇄국주의자’ ‘친북좌빨’이라고 매도해왔다. 종편 개국일인 12월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전담 심의팀을 만들겠다는 방통심의위 결정을 두고 시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표현의 자유는 신체의 자유와 함께 자유민주주의의 고갱이다. 그런데 한국의 자칭 ‘자유민주주의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싫어한다. 그들에게 다른 의견은 여론 다양성의 증좌가 아니라 배제와 말살의 대상이다.
‘조·중·동’은 종편 첫 방송일인 12월1일을 ‘역사적인 날’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냉엄한 역사가 훗날 그들의 ‘감격’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그렇지 않아도 보수 편향이 심각한 한국 언론 생태계에 난입한 ‘종편 괴물’의 처절한 생존 몸부림이 한국 민주주의에 드리울 어둡고 긴 그림자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MB 정부가 무책임하게 싸질러놓은 ×을 뒤처리해야 할 대한민국의 팔자가 기구하다.
이제훈 편집장
*의 일부 기자가 바뀌었습니다. 김보협 기자가 정치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대신 이지은 기자가 정치팀장, 정인환 기자가 국제·한반도 담당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출신의 송호균 기자도 새 식구로 합류해 정치·문화 보도를 맡습니다. 오고 가는 모든 기자에게 따뜻한 작별 인사와 환영의 박수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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