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업계 종사자 대변하는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 김민석 회장… 규모 100배로 키우고 ‘게임산업 조폭 이양법’만든 건 정부 아닌가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도박 공화국’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온 나라를 사행성 게임 중독에 빠뜨린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성인오락실 업주들의 모임인 사단법인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이하 한컴산) 김민석 회장을 7월28일 만났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 있는 사무실에는 ‘신의·성실·화합’이라고 한자로 쓰인 회훈 액자가 걸려 있었다. 김 회장은 “성인게임이 사행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책임이 업계에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비현실적인 정책과 제도를 만든 정부에 있다”며 문화관광부에 화살을 돌렸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사행성 근절 대책에 대해서는 “우리도 사행성을 버릴 자세는 되어 있는데 그 대책대로라면 업계 종사자 30만 명의 생계가 막힌다”며 반대했다. 20조원대의 사상 최대 액수의 소송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2002년 3천억원이 28조원 규모로
한컴산은 언제 생겼고, 어떤 조직인가.
=전국 1만5천 업소를 대변하는 단체다. 한컴산은 라는 아케이드 게임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후부터 25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김 회장도 게임장을 운영하고 있나.
=난 원래 한국방송 개그맨 공채 6기 출신이다. 뜨지 못했고 일찌감치 아케이드 게임산업에 뛰어들었다. 현재는 지방에서 몇 군데 게임장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사행성 근절 대책을 발표했는데.
=오늘 전국 지회장들이 모여 이사회를 열었다. 게임장은 태동부터 규제의 대상이었다. 애들 공부에 방해된다고. 단속을 피해 먹고 사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사회 결정 사항은 뭔가.
=문화관광부의 정책 실패를 왜 인정하지 않나. 상품권을 폐지하면 모든 게임장을 일시에 문 닫게 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도 사행성은 버리겠다. 문제가 있으면 우선 고칠 방안을 논의하는 게 순서 아니냐. 30만 명 종사자들의 생계를 막아버리나. 우리는 국민이 아닌가.
성인오락실이 갑자기 늘어난 원인은 뭔가.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컴퓨터의 보급으로 아케이드 게임산업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대체가 필요했다. 예전엔 게임을 즐기기만 했지만 게임의 결과물을 취득하도록 바꾼 것이다. 전문 용어로는 ‘AWP’(Amusement With Prize)라고 한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에 성인 놀이문화가 없다. 휴식과 재충전을 할 수 있는 놀이문화가 없다. 문화사적으로 보면 가장 역사가 오래된 성인 놀이는 술, 도박, 섹스 아닌가. 술과 섹스를 규제하는 법은 없지 않나.
현재의 게임장이 휴식과 재충전의 놀이공간 구실을 하고 있다고 보나. 오히려 도박장화하지 않았나.
=사행성 여부에 따라 게임장과 카지노가 갈린다. 게임제공업용 게임물 등급분류 기준 세부 규정에 따라 현재 게임장의 게임기들은 ‘사행성 간주 게임물’이 아니다. 게임기는 적은 돈으로 몇 시간 즐겁게 놀 수 있도록 엄격한 규제를 받게 돼 있다. 카지노의 기계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거기서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들은 뭔가. 결국 사행성과 중독성이 짙어서 문제가 커진 것 아닌가.
=2002년 도입된 상품권 제도 때문이다. 그전에는 인형이나 라이터 같은 조잡한 공산품을 경품으로 줬다. 주로 중국제였다. 그때는 전체 경품 규모가 3천억원 정도였다. 그런데 상품권으로 바뀌면서 28조원대 시장으로 커져버렸다. 처음엔 문화산업에 재투자되는 문화상품권을 경품으로 한다니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거의 쓸 수 없는 게임장 전용 문화상품권으로 변질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한 손에 지폐, 한 손에 상품권…
경품이 바뀌면서 시장 규모가 100배가량 커져버렸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
=게임을 해보면 안다. 돈을 넣고 게임을 하다 당첨이 되면 그 점수를 이용해 게임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게임기들은 게임을 위한 돈은 돈대로 넣고, 당첨이 되면 그 점수만큼 상품권으로 바로 뽑도록 돼 있다. 상품권 자판기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게임을 하면서 한 손엔 지폐를 잔뜩 쥐고, 다른 한 손엔 상품권을 잔뜩 들고 있는 우스운 꼴이 된다. 그런 구조로 만들어놓으니 기계에 투입하는 돈의 액수가 커진다. 쉽게 말해 판돈이 커지는 것이다. 판돈이 커지면서 문화상품권 발행 규모도 커지고…. 결국 불법 환전소 문제도 모두 거기에서 비롯됐다.
상품권 제도를 문화관광부가 강제로 도입했는가?
=그건 아니다. 문화관광부와 업계가 공동으로 추진한 것이다. 손님과 업자 모두에게 좋고 문화산업 진흥에 쓰인다니 명분도 있지 않나. 하지만 업계 다수의 뜻은 아니었다. 상품권 발행업에 관련된 이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상품권 발행업자들만 신나도록 그렇게 만들어놨다. 그러다 보니 상품권 유통 마진에 눈독을 들이고 조직폭력배들이 들어오고, 번 돈으로 조폭들이 직접 게임장을 운영하는 곳도 생겨난 것이다.
게임을 즐기기보다는 돈을 따기 위해 사람이 몰린다는 것은 게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3천억원대의 시장이 28조원대로 커지는 동안 게임 내용이 변한 것은 없다. 손님들이 쏟아낸 돈을 모두 업자들이 먹는 건 아니다. 평균 환수율이 95%다. 1만원을 넣고 게임을 하다 9500원은 손님이 다시 가져가게 설계돼 있다. 카지노는 환수율이 80~90% 수준이다. 다시 상품권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게임기에서 돈을 잃는 게 아니라 상품권을 환전하면서 10% 떼는 수수료 때문에, 돈을 많이 내놓고 상품권을 다시 돈으로 바꾸면서 돈이 나가는 거다.
환수율은 누가 결정하는가. 환수율을 낮추면 업자들이 돈을 벌지 않나.
=환수율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너무 낮추면 당첨이 안 되니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 너무 높으면 너도나도 당첨이 되니 손님들이 늘어난다. 적절한 수준이 95% 정도여서 기계를 그 정도 수준에 맞춰 주문해왔다. 그런데 상품권 제도가 업소의 수익 구조도 바꿔놓았다. 원래는 게임장 안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게임장 바깥에서 환전 수수료로 장사를 한다. 그러다 보니 환수율을 100% 이상으로 하는 곳도 생겼다. 게임기에서 손해보더라도 바깥에서 벌충한다. 그러면서 사행성이 더 심해졌다.
모든 문제가 상품권 제도에서 비롯됐으니 상품권을 다른 경품으로 대체하면 되지 않은가.
=상품권이 문제가 아니라 당첨된 점수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길을 사실상 막아놨다는 게 문제다. 마구 돈을 넣고 상품권을 쏟아놓게 만든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이제 와서 상품권을 폐지한다면 다시 조잡한 중국제 공산품 시대로 돌아가라는 말인가.
한 사람이 여러 기계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면, 김 회장의 말처럼 건전한 게임을 즐긴다기보다는 도박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할 말이 많다. ‘게임제공업용 게임물 등급분류 기준 세부규정’을 보면 “게임의 자동 진행 기능은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그러면 담배나 라이터를 단추 위에 올려놓으면 게임이 자동으로 진행되는 그런 기계가 심의를 통과할 수 없고 나오면 안 되는 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버젓이 심의를 통과해 나온다. 누구 잘못인가.
어쨌든 정부 입장에서는 사행성이 짙은 현재의 성인오락실을 두고 볼 수 없지 않은가.
=상품권이 쏟아져나오게 만든 현재의 방식을 바꾸면 부정적 측면이 상당 부분 해소된다. 기계에 2만~3만원을 넣으면 몇 시간 재미있게 놀면서 딸 수도 잃을 수도 있다. 당장 상품권 발행 규모가 대폭 줄고, 유통 마진이 없으면 조폭들도 자연스럽게 떠날 것이다. 우리는 지난해부터 자정 노력의 일환으로 이런 내용을 건의해왔는데 그때는 귀를 막고 있더니 이번에 철퇴를 내렸다.
새벽 2시까지만 영업하겠다?
한컴산의 주장대로 바꿔도 여전히 중독성 문제는 남지 않은가.
=자정 방안에는 영업시간 단축도 포함돼 있다. 밤새워 게임하는 일이 없도록 새벽 2시까지만 영업하겠다는 것이다. 모든 놀이에 어느 정도 있는 중독성 문제는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정부의 사행성 근절 대책을 따를 수 없다면 대안은 있나.
=우리도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돈 벌고 싶지는 않다. 떳떳하게 일하고 세금도 잘 내겠다. 일단 우리 주장대로 해보고 그래도 사행성 문제가 심각하다면 그때는 스스로 폐업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대책은 모두 문을 닫으라는 수준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 양지로 나와 있던 게임장들이 골목길로 숨어들 것이고, 불법 게임장들은 조직폭력배들이나 운영할 수 있지 않겠나. 노무현 대통령은 왜 게임강국을 만들겠다, 게임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했나. 게임산업진흥법은 뭐하러 만들었나. 게임산업진흥법이 아니라 게임산업 조폭 이양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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