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의 주말농장]
▣ 글 · 사진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벼 이삭이 고개를 내밀었다. 참새들이 기다리던 계절이다. 농사꾼에게 참새는 여간 얄미운 녀석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메뚜기떼만큼은 피해가 크지 않지만, 참새에게 마냥 인심을 쓴 논은 벼 수확이 크게 줄어든다. 게으른 허수아비에게 맡겨서는 별 소용이 없다. 곳곳에 장대를 세우고 금빛으로 반짝이는 비닐테이프를 꼬아 쳐놓고 바람이 불 때마다 테이프가 출렁이는 것처럼 하여 참새를 쫓아내본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것도 사라졌다. 참새가 그렇게 머리 나쁜 새가 아님을 확인한 까닭이다. 최선의 방법은 역시 사람이 직접 논에 지키고 서서 참새를 쫓는 것이다.

초가을이 오면 농촌 아이들은 ‘새를 보러’ 들판으로 나가야 했다. 논두렁에서 ‘훠~이, 훠~이’ 소리를 질러 참새를 쫓는 일이다. 참새를 많이 쫓아본 어른들의 새 쫓는 소리엔 멋드러진 가락마저 실려 있다. 아이들이야 논을 가로질러 세운 장대에 새끼줄을 잇고 자갈 넣은 깡통을 매달아, 그 줄을 흔드는 게 고작이다. 참새는 곧 돌아오고, 애타는 마음에 흙덩이를 던져보기도 했다.
새 보러 가는 아이들이 기나긴 오후를 견뎌내려면 챙겨야 할 필수품이 단수수다. 단수수는 열대지방의 사탕수수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퇴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별도의 종이다. 사탕수수는 결정체의 포도당(수크로오스)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설탕 원료로 쓰이고, 단수수는 비결정의 포도당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시럽 원료로 쓰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통해 아주 오래전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겉모습이 거의 똑같아서, 단수수를 수수와 구별하기는 아주 어렵다. 단수수는 줄기에 하얀 분이 앉는 게 차이점이다. 껍질을 벗겨내고 그 안의 속살을 씹어 단물만 삼키고는 남은 찌꺼기는 뱉어낸다. 뱉어낸 찌꺼기엔 개미떼가 곧 까맣게 몰려들게 마련이다. 단수수 껍질은 칼날처럼 날카롭다. 그래서 아이들은 혀나 손가락을 곧잘 베이곤 하지만, 그 단맛의 유혹 앞에 아픔은 금세 잊혀진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단수수는 뒤뜰이나 텃밭에 심는 농촌의 필수작물이었다. 2m 이상 자라 이삭이 팬 것을 낫으로 베어 마디를 뚝뚝 자른 단수수는 설탕이 부족한 시절 사탕을 대신했다. 특히 초가을이 가장 단맛이 드는 때여서 단수수는 새 보러 가는 아이들의 군입거리로 안성맞춤이었다. 챙겨간 단수수도 다 떨어지고, 새를 보다 지루해진 아이들은 단수수 껍질을 엮어 방석을 만들면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이제 더는 농촌에도 새 보는 아이가 없다. 몇분 간격으로 쿵, 하는 소리를 내는 화약대포가 아이 대신 참새를 쫓는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대포 소리에 참새들이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데, 처음 듣는 사람은 참새보다 더 놀란다. 과자와 사탕이 흔해져 이제 단수수를 심는 심는 이도 드물다. 나는 그 맛을 잊지 못해 지난봄 어렵게 씨앗을 구해 주말농장에 열댓 그루를 키웠다. 아들녀석은 몇번 씹어보고는 찌꺼기로 입 안이 텁텁해지자 그만 내려놓고 만다. 당도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아들이 씹은 단수수엔 추억의 맛이 빠져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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