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참사를 지켜보며 많은 사람들이 ‘안전불감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이가 보고 싶어한다는 이유로 연령제한 드라마의 시청을 허락하는 부모들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나는 그들을 ‘안전불감증 부모’라 말하고 싶다.
요즘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시청 가능한 연령을 표시한다. 하지만 그것을 잘 지키는 집은 얼마나 될까
초등학교 3학년 아이도 ‘15세 미만의 아이는 시청이 부적절하다’는 는 꼭 본다. 아이 엄마는 이렇게 걱정을 한다.
“만날 저런 것만 보니 애가 어찌나 거칠어지는지. 저걸 안 보면 친구들과 대화가 안 된다니 말릴 수도 없고.”
“잔인하지도 않은데 왜 못 봐요”
열다섯, 여덟살의 두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기 어려워 특별한 경우말고는 우리 집에서 주중에는 텔레비전을 켜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를 보지 않는 남자는 대한민국에 자기뿐”이라며 엄살을 떤다. 우리 부부가 꼭 보아야 할 프로그램에 ‘15’ 라는 숫자가 뜨면 큰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동생을 데리고 방으로 간다.
얼마 전 큰아이와 동갑내기가 있는 집에 갔을 때 일이다.
두 아이가 함께 재미있게 노는 것 같더니 그 집 아이가 혼자 거실로 나와 텔레비전을 켜는 것이었다. 를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 아이는 주인 없는 방에서 혼자 놀고.
친구 혼자 두고 이러면 되느냐고 아이 엄마가 아이를 나무라도 아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가 연령제한이 화면에 나오지 않느냐고 했더니 아이의 대답이 이랬다.
“야한 것도 없고 잔인한 것도 아닌데 왜 못 본다는 거예요”
얼른 들어가라고 다그치는 아이 엄마의 눈은 텔레비전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폭력적인 것이나 선정적인 것만 연령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야. 드라마 중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참 드물어. 가족 형태가 정상적이지 않거나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이 극단적으로 대립하거나…. 사실 나는 를 보지 않으니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비정상적이고 극단적인 상황들이 많은 것 같아. 지금 화면에 나오는 저 두 사람,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도 그렇잖아.
어른들은 가치관이 완성되었으니 단순한 픽션, 즉 허구로 받아들이지만 아직 미성숙상태의 아이들에게는 그런 것들을 걸러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그것으로 인해 인간관계나 사회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질 수 있어.
사람의 가치관이라는 것은 한순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영향을 받으며 아주 서서히 스며들듯 완성되거든. 드라마 속의 복잡하고 비정상적인, 극한 상황의 인간관계가 너희에게 ‘재미’는 주겠지만 바른 가치관 형성에는 도움이, 아니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을 너희가 보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규칙이나 법규는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 당장 별일 없다고 해서, 내 생각에 불합리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어기면 안 되는 거야. 지키면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의견을 제시해 고쳐나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해.”
나의 긴 설명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규칙 무시부터 배우는 아이들
대구지하철 참사를 지켜보며 많은 사람들이 ‘안전불감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이가 보고 싶어한다는 이유로 연령제한 드라마의 시청을 허락하는 부모들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나는 그들을 ‘안전불감증 부모’라 말하고 싶다.
그 프로그램들을 본다고 해도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위험해보이지도 않고 우리 아이만 보는 것도 아니다. 무슨 처벌이 따르는 것도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봐도 재미있다. 아이에게 보지 말라면서 나는 본다. 그러면 아이는 슬그머니 어른 옆에서 함께 본다. 그런 아이를 보며 스스로에게 변명한다. 애 안 보게 하려고 어른인 나까지 안 봐야 한다는 건 말도 안 돼. 어차피 크면 다 알게 될 거 조금 빨리 본다고 별일 있겠어 아이도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이걸 꼭 봐야 한다잖아.
‘15’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15세 미만의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저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무시해도 되는 거라고. 엄마도 아무 말 안 하잖아. 아빠는 같이 보자고까지 하는 걸 뭐.’
어쩌면 그런 생각조차 없이 무관심하게 화면을 바라보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자라 우리 사회의 주축이 되고, 지하철공사도 하고, 백화점도 지을 것이다.
‘괜찮아. 이런 것쯤은 무시해도 돼. 당장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닌데 뭘.’
이런 사람이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은 나의 지나친 기우일까
이영미/ 대구 경상여중 과학교사·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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